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11일 토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11일 토요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갈라 4,4-5 참조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셨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를 새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은총으로
저희가 그분의 모습을 지니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ㄱ과 9ㄴ(◎ 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복음 환호송

마태 4,16
◎ 알렐루야.
○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네.
◎ 알렐루야.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공현 감사송 :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나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인간으로 나타나게 하시어
그분께서 지니신 불사불멸의 힘으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1,16 참조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을 온갖 은혜로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에서도 위안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사목회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함께 했습니다. 모두 단정한 복장으로 모였습니다. 시작하면서 봉사자의 자세라는 동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능력있는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사람에게는 알맞은 능력을 주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영상은 한국에 있는 분이 보내 주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듯이 포도주와 곁들인 식사가 마련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재미있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8개의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당 팀장을 뽑았습니다. 첫 번째 게임은 각자가 자신을 나타내는 특징 5가지를 적어내는 거였습니다. 저는 하얀 머리, 로만 칼라, 검은 옷, 미소, 미사라고 적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을 소개하는 특징을 적어서 사회자에게 제출했습니다. 사회자는 그중에 하나를 뽑아서 불러주었습니다. 못 맞출 것 같았는데 사회자가 2가지나 3가지만 이야기해도 잘 맞추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못 맞출 것 같았는데 서로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다들 잘 맞추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남극에 있는 펭귄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새끼를 위해서 멀리 먹이를 찾으러 떠났던 엄마 펭귄은 반드시 자기의 새끼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성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인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결코 너희를 잊지 않는다.”

 

다음 게임은 음악의 첫 도입부를 듣고 제목을 맞추고, 팀원이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게임이었습니다. 음악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멜로디인데 손을 들고, 제목을 맞추었습니다. 진행자가 다른 노래라고 하니, 아니라고 하였고 결국 진행자가 잘못 알았던 노래도 있었습니다. 저는 아는 노래의 멜로디가 나왔는데 손을 늦게 드는 바람에 다른 팀에서 맞추었습니다. 모두가 집중하면서 노래의 첫 멜로디를 듣다 보니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몰랐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하느님께로 갈 때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눈빛만 보셔도, 우리의 옷차림만 보셔도, 우리의 발걸음만 보셔도 금세 알아보실 것 같습니다. 10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저도 그날 모인 분들의 세례명은 거의 다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숨소리만 들으셔도 우리를 알아보실 겁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백범 김구 선생님이 평생 삶의 길잡이로 삼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눈 덮인 길을 걸을 때는 발걸음을 신중하게 하여라,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아시니, 우리의 발걸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발걸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점수가 가장 높은 게임이 있었는데 진행자가 마음속으로 정한 숫자를 맞추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또한 저는 도저히 맞출 수 없었을 것 같았는데 감수성이 예리한 분들이 있어서 잘 맞추었습니다. 진행자는 본당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를 생각했고, 어찌 알았는지 그 숫자를 맞추는 분이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2025년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숫자를 생각했고, 어찌 알았는지 그 숫자를 맞추는 분이 있었습니다. 끝으로 수도자, 부제님, 성직자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만드는 게임을 했습니다. 각 팀에서 재치 있게, 재미있는 삼행시를 만들었습니다. 지나친 음주와 지루한 송년 모임도 있는데, 사목회에서 잘 준비해서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송년 모임이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2024년을 보냈으니,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2025년에도 크신 사랑과 은총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업적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이 오면 당연히 신부에게 자리를 내어주듯이 기뻐하며 예수님께 자리를 내어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귀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2025년을 지내는 우리의 발걸음이 겸손과 사랑의 발걸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2.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복음요한 3,22-30: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우리는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아름답고 겸손한 자세를 볼 수 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때 사람들이 예수께로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요한의 제자들은 자기 스승 요한에게 불평한다

그러나 요한의 답변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답변으로써 3가지를 설명한다.

 

우선은 세례자 요한은 사실상 자신의 위치가 하느님의 단순한 전달자며 앞으로 오실 더 크신 분을 위한 선구자요

예비자로 보냄을 받았을 뿐그 이상의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확신시킨다.

 

둘째로 그 누구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 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새로이 나타난 선생이 더 많은 제자와 더 많은 개심자들을 얻고 있다면그것은 요한에게서 사람들을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요한의 모습이며하느님 앞에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 대대로 자기들과 하느님은 너무나 밀접한 인연으로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 관계를 신랑 신부의 혼인 관계 인연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신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신부로 표현했고이러한 인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의 신을 따를 때는 마치 정혼한 여인이 혼인한 계약을 위반하여 부정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탈출 34,15; 신명 31,16; 시편 73,27 등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랑이요이스라엘 백성은 신부라는 것이며

세례자 요한은 신랑과 신부를 맺어주는 연결자이며 신랑과 신부를 함께 모시는 사람으로서

혼인 잔치를 주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기 자신이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하면서 그 신랑을 신부에게로 맞아들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임무는 끝났으니 기꺼이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무대 중심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즉 요한의 사명은 이스라엘과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그리고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이스라엘 사이에 혼인 준비를 하는 것으로서 그 사명이 끝났을 때 자신은 뒤로 사라지는 것이

그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더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는 것은 좌절과 질투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는 기쁨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들이 따르게 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오늘 복음에 나타난 요한의 참된 겸손의 자세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삶을 본받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3. 이영근 신부님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신부인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차지’임을 표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통해서 빛이신 예수님이 선포됩니다.

 

그가 자신을 증언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언한 것은 그 자신을 비운 까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절로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상대에게로 건너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요한으로 하여금 그토록 자신을 비울 수 있게 하였을까요?
자신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향하여 있지 않고 상대를 향하여 있었던 까닭일 것입니다. 

결코 자기 자신을 향하여 있는 한은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 까닭입니다. 

신랑을 향하여 있을 때라야 신랑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가 친구입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었습니다.(요한 3,29)

그렇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친구를 향한 까닭입니다. 

 

친구인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 할 때, 우리는 비어집니다.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친구의 소리를 들으려 할 때,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떠나와 우리를 ‘친구’(요한 15,15)라 부르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역시 그분을 ‘친구’라 부를 수 있으려면,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그분을 향하여 나아갈 때일 것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당신을 향하여 나아가는 바람에 자신에게서 빠져나오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누구를 ‘향하여’ 희망을 두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다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신랑’과 ‘신부’의 성경적 표상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상합니다(예레미아, 에제키엘, 호세아).

그리고 초대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았습니다(에페 5,21-33).

 

그러니 ‘신부인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차지’임을 표상합니다.

또한 <아가서>는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신자의 영혼과의 사랑을 아름답게 비유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신랑’으로 드러냅니다.

그러기에,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라는 말은 그분만이 ‘교회의 신랑’이시며, 민족들의 구원자임을 말해줍니다. 

한편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묘사합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29-30)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고, 신랑의 기쁨을 나누나 결코 신부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 친구들에게 ‘당신 신부인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깊은 우정과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토록 친구를 깊이 신뢰하고 존중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친구에 대한 그 사랑, 그 신의를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우리 또한 그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요한 3,29)

 

주님!

당신만이 저의 신랑입니다.

당신 마음을 듣게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 빛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당신을 다 내어주셨듯이 제 전부를 드리오니, 저를 차지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10.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1요한5,5-13 루카5,12-16

 

                                                                   치유의 구원

                                                              “주님과 만남의 여정”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로우시다.”(시편112,4)

 

오늘 옛 어른의 지혜도 신선합니다.

“회복이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확실하게 결별하는 것이다.”<다산>

이것은 회복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회개하여 새롭게 주님을 만나는 이들에게는 늘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군자는 바른 성정을 회복함으로써 뜻을 조화롭게 하고, 좋은 무리를 따라서 그 행실을 이룬다.”<예기>

주님을 따르는 좋은 도반들의 공동체에 속한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루카복음은 “나병환자를 고치시다”라는 주제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치유의 구원을 받은 나병환자가 상징하는바 우리 약하고 병든 우리들입니다.

‘온몸에 나병이 걸린 사람’이란 말마디가 그 병의 심각성을 알립니다.

중요한 사실은 나병환자가 절망하여 자포자기함이 없이 절박한 믿음으로 주님을 찾았고 만났다는 것입니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니, 그대로 예수님께 대한 전적 신뢰의 표현입니다. 일방적인 주님의 기적은 없습니다. 치유의 구원에 선행하는 병든 자의 간절한 믿음입니다. 

그대로 주님과의 만남인 미사장면을 상징합니다.

이런 절박한 자세로 미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똑같은 주님께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만나 치유의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시니 주님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곧 나병이 가십니다.

왜 오늘날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순전히 우리의 믿음 부족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 따뜻한 스킨쉽, 능력의 말씀이란 세요소가

나병환자의 믿음과 하나되어 일어난 치유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치유활동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늘 강조하시는 치유의 구원에 결정적인 하느님의 세 특징,

친근함(closeness), 연민(compassion), 부드러움(tenderness)이 잘 드러납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우리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

 

주님을 만나는 목적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는 것, 둘임을 깨닫습니다.

둘인 듯 하지만 실은 하나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치유의 구원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주님이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거나 유혹됨이 없이

즉시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우리에게는 참 귀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나병이 상징하는바 우리의 온갖 영육의 질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야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마음과 몸은, 영혼과 육신은 하나입니다. 길을 잃고, 희망을 잃고, 빛을 잃고, 기쁨을 잃고,

평화를 잃고 죄의 어둠 중에 방황함으로 마음이, 정신이, 영혼이 병들 때 뒤따르는 육신의 갖가지 병들입니다.

죄가 많으니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니 영육의 병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단 하나, 주님을 찾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길, 우리의 희망, 우리의 빛, 우리의 기쁨, 우리의 평화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했던, 늘 바쳐도 늘 새로운 행복기도문 한 대목입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전부입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사도 요한도 제1독서에서 영적승리의 삶에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설파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은 이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모실 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중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실 때, 그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모시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한 두 번 만남으로 치유의 구원이 아니라,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생명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 배우고 회개하고 치유받아야 합니다. 

 

그러니 주님과 만남의 여정은 배움의 여정이자 회개의 여정, 치유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만남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 주시며,

치유의 구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네.

 하느님이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1요한4,9). 아멘.


1/11(토)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아시니, 우리의 발걸음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발걸음이 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님은 더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는 것은 좌절과 질투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자기의 임무를 다했다는 기쁨에서 나온 말이다.(조욱현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요한 3,29)

 

주님!

당신만이 저의 신랑입니다.

당신 마음을 듣게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 빛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당신을 다 내어주셨듯이 제 전부를 드리오니, 저를 차지하소서.

아멘.

 

4. 예수님의 치유활동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늘 강조하시는 치유의 구원에 결정적인 하느님의 세 특징,

친근함(closeness), 연민(compassion), 부드러움(tenderness)이 잘 드러납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이 우리에게는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이수철 신부)

 

1/11(토)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11일차 기도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요한 3,29)

 

주님!

당신만이 저의 신랑입니다.

당신 마음을 듣게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 빛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당신을 다 내어주셨듯이 제 전부를 드리오니, 저를 차지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11일(토) 6시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