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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26일 주일[(녹)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26일 주일[(녹)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언하시며(2019년 9월 30일), 하느님 백성이 성경을 더욱더 경건하고 친숙하게 대하고, 하느님 말씀의 거행과 성찰과 전파를 위하여 이날을 봉헌하며 장엄하게 지내기를 권고하셨다.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은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2년 추계 정기 총회에서 전 세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이 주일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였다.

오늘은 연중 제3주일이고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며, 해외 원조 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한마음 한 몸이 되어, 질병과 기아, 전 지구적 기후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가진 것을 나누기로 다짐하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입당송

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레위인들은 율법서를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 느헤미야기의 말씀입니다.8,2-4ㄱ.5-6.8-10
그 무렵 2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3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4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5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6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레위인들은 8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9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9(18),8.9.10.15(◎ 요한 6,63ㄷ 참조)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이신 주님, 제 입으로 드리는 말씀, 제 마음속 생각,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

제2독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12-30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17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18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19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21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할 수도 없습니다.
22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23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24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25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루카 4,18
◎ 알렐루야.
○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 알렐루야.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1,1-4; 4,14-2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4,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이신 주님,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은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성경 말씀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공정하신 주님, 이 땅의 정치인들을 굽어살피시어, 이념과 정당의 이익을 떠나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정책을 세우고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3. 굶주리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온유하신 주님, 굶주리는 이들을 굽어보시어, 몸소 그들의 건강을 지켜 주시고, 저희는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것임을 깨닫고 나눔을 실천하게 하소서.?

4.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희망이신 주님, 저희 본당의 사도직 단체들을 살펴 주시어,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삶 안에서 실천하며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1 : 파스카 신비와 하느님 백성>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저희를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권능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되었나이다.
이는 파스카의 신비로 이루어진 주님의 위대한 업적이옵니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의 말대로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믿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합시다. 우리가 배운 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오늘은 해외원조주일입니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녹)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2002년 사목국에서 일할 때입니다. 사목국에는 여러 부서가 있었습니다. ‘선교 전례, 교육, 가정, 복음화, 직장, 레지오, 기획 행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교구의 사목국에서 일하였지만, 정확하게 우리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사목국장 신부님과 2 3일 연수를 가면서 우리는 부서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각 부서를 사람의 몸과 비교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기획 행정은 머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교구의 사목이 어떤 방향이었는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교육 담당이었습니다. 저는 교육은 심장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장이 신선한 를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공급할 때, 교구와 본당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레지오는 발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선교 전례는 뼈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뼈가 있어서 균형을 잡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가정과 선교 전례는 교회를 지탱하는 뼈와 같기 때문입니다. 복음화는 눈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음화를 통해서 교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 3일 동안 연수를 통해서 각 부서의 역할과 기능을 고민했고, 우리는 교구 사목국이라는 몸의 지체로 기쁘게 일하였습니다.

 

2025년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을 자동차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사제는 핸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구장으로부터 권한과 책무를 받은 사제는 교회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먼지와 빗물을 닦아내는 와이퍼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도자는 가난, 정결, 순종의 와이퍼로 교회의 유리에 붙어있는 권위, 욕망, 시기의 먼지를 닦아내기 때문입니다. 사목회는 엔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목회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재정평의회는 기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듯이, 재정평의회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실은 의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새로 온 신자들에게 구역과 반을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신심 단체는 바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신심 단체의 카리스마와 영성으로 복음을 실천하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쉬는 분들과 아픈 분들은 트렁크 아래 있는 스페어타이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본당에서 잘 볼 수는 없지만 그분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이 전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퀴에 문제가 생기면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듯이, 쉬는 분들과 아픈 분들이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공동체에서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성당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의 신앙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을 몸과 지체로 설명하곤 합니다. 우리의 몸은 인격과 정신이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몸은 많은 지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지체들이 원활한 활동을 하도록 산소, 영양분, 물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은 보고, 듣고, 말하고, 먹고, 느끼고, 만지고, 걸을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이 통합된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발, 예수님의 손, 예수님의 입, 예수님의 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받아야 할 영양분은 예수님의 말씀, , 표징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다운 통찰입니다. 중국의 한 대나무는 심으면 7년 동안은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8년째 되면 크게 자란다고 합니다. 7년의 세월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7년의 세월은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준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준비는 소홀하게 됩니다. ‘건강, 가족들의 사랑, 친절, 자선과 같은 것들의 성과는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정말 필요한 것들입니다.

 

균형 잡힌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말해주고 있고, 그런 균형 잡힌 삶은 말씀에 충실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고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읽으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해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3주일다해

복음루카 1,1-4; 4,14-21

 

짧고 간략하게 강론하시는 예수님!

 

사제가 된 후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본당에 가서 처음으로 강론할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참으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렵고 떨렸습니다.

 

나름 감동적인 강론을 한번 해보려고 얼마나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는지 모릅니다.

A4지 한 장 정도의 짧은 강론을 며칠에 걸쳐 준비했고, 그걸 또 거울을 보고 수십 번도 더

예행연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첫 강론을 하시는데,

아마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비슷하셨을 것입니다.

 

요즘 미사 때마다 강론 전에는 성경 말씀이 먼저 선포되듯이, 예수님께서도 강론을 하시기 전에

한 성경 구절을 찾으셔서 읽으셨는데, 정말이지 기가 막힌 성경 구절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은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 1-2)

 

한 문장 한 문장, 글자 한자 한자가 다 예수님 당신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을 봉독하심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공생활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명확히 밝혀주신 것입니다.

 

회당 안에 있던 청중들은 이제 성경 말씀이 선포되었으니, 길고도 장황한 강론이 이어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강론은 딱 한 마디였습니다. 3초밖에 안 걸렸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아마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 공생활을 하신다 해도, 절대로 강론 길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만, 촌철살인의 한 말씀만 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예언이 당신을 통해, 당신 안에서 성취됨을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성취는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물고 계심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종말론적인 예언자요 하느님으로부터 도유된 분 곧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래로 인해 이제 구원의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분을 구세주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은 이제부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해, 그분에게 흡족한 해,

주님의 은혜로운 해, 희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연중 제3주일다해

 

복음루카 1,1-4; 4,14-21: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오늘의 주제는 하느님 말씀을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삶 속에 실천하여 오늘이 자리에서 구원적 삶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항상 나에게 있어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느헤미야서는 에즈라가 바빌론 귀양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법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하느님의 말씀법은 공적으로 백성들 앞에서 이루어져야 하며일어서고손을 쳐들고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아멘!, 아멘하며 응답하는 백성들의 참여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일 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은 에즈라로부터 하느님의 법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느헤미야 8,9). 하느님의 법을 듣는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회개를 일으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후회와 괴로움을 느끼게 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게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들음으로써 공동체가 변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확실한 신앙으로 전달되지 못했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늘 복음은 복음의 서문(1,1-4)과 예수께서 공생활 초기에 나자렛 회당에서 있었던 일(4,14-21)로 되어있다

그러나 복음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신앙심을 생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예를 우리는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은총의 말씀”(4,22)에 놀라면서도

그분 앞에서 취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다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외적인 것예를 들면“요셉의 아들”(4,22)보다 그분 안에 있는

그 이상의 어떤 사실을 알아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음사가가 원하는 것은 어떤 사실을 전하고 해석하면서 독자들을 신앙의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어가고자 한다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 혹은 그 어머니를 아는 것으로

그분을 안다고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신앙이다

이것을 복음사가는 의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의 한 대목을 읽으신다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이사 61,1-2). 

 

이 내용은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양살이에서 돌아오게 되리라는 해방과 하느님 구원의 약속을 전한

내용으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성서를 읽으시고 자리에 앉으시어 그 내용을 설명하시는 말씀에서 제기된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이 말씀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터무니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우선은 그 예언의 말씀이 마리아의 아들이며 목수인 요셉의 아들인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고

예언자의 메시아 활동이 바로 그 순간 즉오늘 이루어진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하여간 예수께서는 말씀과 행동으로써 가르치시고 구원업적을 이루신다

예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해방이다그 해방은 모든 악으로부터의 해방육체적

영적 시력상실로부터의 해방가난으로부터의 해방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죄악으로부터의 해방 등이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져오신 분이다

그분은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구원자로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신앙으로서만 가능하다

 

나자렛의 한 목수라는 것 때문에 그것을 거부했던 나자렛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옛날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말씀이 규범법이 된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그 오늘은 매일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성경 말씀을 당신의 가르치심과 행동으로 이루셨다

 

그럼으로써 이사야를 만나신다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이룸으로써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삶도 예수님처럼 “이 성경 말씀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었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을 실천하고 이룸으로써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거니는여정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인체를 들어 설명하면서 각자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지체는 서로가 조화를 이루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몸은 올바로 성장할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몸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각 지체로서 제 일에 충실하며 

지체 간에 진정한 일치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우리 사이에 서로 불화를 야기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아집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옛날의 나자렛 사람들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다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그 형제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규범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항상 하느님의 말씀 앞에 그 말씀이 오늘여기서 나에게 구원이 이루어지는 말씀이 되게 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삶은 올바른 성사 생또 전례 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되도록 해야 하는 삶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규범인 삶은 진정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어

한 몸 그리스도로서 하느님의 생명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신앙생활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성찰해 보면서 주님께 은총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25.토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22,3-16 마르16,15-18

 

                                                               회심의 여정

                                                          “회심과 복음 선포”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시편117,2ㄱㄴ)

 

오늘은 성 바오로 회심 축일이자 일치 주간의 마지막날입니다.

또 오늘은 제가 1986년 1월25일 첫서원후, 서원 39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 일치 주간은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교회 일치를 위한 지향으로 기도하는 주간으로

매년 1월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오늘 1월25일까지 8일 동안 거행됩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치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아 1968년부터 한국기독교협의회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함께 일치기도주간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일치의 중심에 성 바오로 사도의 결정적 회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서 성 스테파노의 죽음시 순교상황을 그대로 목격했던 열렬한 박해자 사울이 결정적으로 회심하여

바오로로 전환된, 참으로 그리스도교 역사에 획기적인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 제 종파를 초월해 모든 갈린 그리스도교인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회심과 복음선포의 모범이,

일치의 중심이 성 바오로 사도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 없는 예수님의 그리스도교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제1독서에서 사울의 회심 장면이 너무 극적이요 생생합니다.

해마다 읽고 묵상하는 내용이지만 그때마다 신선한 충격입니다.

사울의 결정적 회심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은 한없이 기다리고 인내하며 그 때를 기다렸음이 분명합니다.

바오로가 친히 전해주는 회심 장면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입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바오로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지요! 아마도 평생 예수님과의 첫 만남과 더불어 이 회심 체험은

평생 늘 바오로의 신앙을 새로이 했을 것이며 회심의 여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박해받는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는 것입니다.

새삼 우리가 형제들을 박해하는 경우는 그대로 예수님을 박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대로 사울이 회심했음을 알리는 물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회심 직후 우리가 저절로 터져나오는 즉각적 질문입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답변입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줄 것이다.”

 

주님의 눈부신 빛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사울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하느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사울이요 즉시 하느님의 사람, 하나니아스에게 인계되니

그가 주님께 받아 전하는 충고도 감동적입니다.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참으로 사울의 감동적 회심 장면은 언제 읽어도 늘 새로운 영감이 됩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결정적 회심에 이른 사울은 옛 사울이 아닙니다.

주님의 증인으로 새로난 바오로 사도입니다.

하느님은 사울을 당신 복음 선포의 증인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사울의 비상한 회심은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사울이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사울을 선택했듯이 우리 믿는 이들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우연한 나의 선택이 아닌 주님의 필연적 선택으로 세례와 더불어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들의 복된 신원입니다.

사울에서 바오로가 된 것처럼 우리 각자도 새롭게 태어난 세례명도 지니게 된 우리들입니다.

육신의 탄생에 이은 영적탄생이요 복된 죽음은 천상탄생이 됩니다.

 

바오로의 극적인 회심 사건은 우리의 회심과 세례를 상기하게 하며, 우리의 계속될 회심의 여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바오로와 같은 비상한 회심 체험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평생 계속될 회심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한두번의 회심이 아니라 평생 날마다 하루하루 죽는 그날까지 회심의 여정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심의 여정과 더불어 주님을 닮아가면서 참나의 실현입니다. 

 

그러니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뿐임을 깨닫습니다.

문득 11년전 배밭에서 일하다 순직과도 같이 새상을 떠난 정훈만 세례자 요한 형제가

정자에 만들어 붙인 ‘회심정(回心亭)’이란 명패가 생각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회심의 중요성입니다.

 

회심이 끝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회심으로 끝나면 반쪽입니다.

완전한 회심은, 회심의 완성은 복음 선포를 통해 이뤄집니다.

회심은 끊임없이 복음 선포를 지향하며, 복음 선포는 부단한 회심을 요구합니다.

흡사 관상과 활동이 함께 가듯 회심과 복음선포의 선교는 함께 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최고의 애덕형태가 복음 선포요 그대로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사람들을 포함하여 주변의 모든 피조물이 복음 선포의 대상입니다.

새삼 내 삶의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자 복음선포의 현장임을 깨닫습니다.

정주(定住)의 삶을 사는 우리 요셉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삶자체가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삶’이겠습니다.

회심을 늘 새롭게 하는 복음선포의 활동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주님을 선포하는 것이요,

우리의 삶자체가 주님 파스카의 삶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파스카의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심의 여정에, 복음선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회심의 여정을 상징하는 제 좌우명 기도시 한 대목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원래 사랑의 강에 회심의 강, 복음선포의 강을 추가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회심의 강(江)'이, '복음선포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1/26(일) [(녹)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되새김 구절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해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조재형 신부)

 

2.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예언이 당신을 통해, 당신 안에서 성취됨을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성취는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물고 계심을 확증하신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각 지체로서 제 일에 충실하며 

지체 간에 진정한 일치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우리 사이에 서로 불화를 야기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아집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옛날의 나자렛 사람들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다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그 형제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조욱현 신부)

 

4. 주님의 눈부신 빛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사울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하느님께 완전히 사로잡힌 사울이요 즉시 하느님의 사람, 하나니아스에게 인계되니

그가 주님께 받아 전하는 충고도 감동적입니다.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이수철 신부)

 

1/26(일) [(녹)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제26일차 기도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해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물고 계심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과 하나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26일(일) 9시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