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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1월 24일 금요일[(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1월 24일 금요일[(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심시켰고,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선임되었으며, 1602년에 교구장이 되었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 12월 28일 리옹에서 세상을 떠나 1623년 1월 24일 안시에 묻혔다.

입당송

에제 34,11.23-2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내 양 떼를 찾아서, 그들을 먹일 목자를 세우리라. 나 주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 주교가 목자의 사랑을 실천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형제들을 섬기며
언제나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그리스도는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8,6-13
형제 여러분, 6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7 저 첫째 계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8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9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10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1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5(84),8과 10.11-12.13-14(◎ 11ㄱ)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리라.
○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복음 환호송

2코린 5,19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3,8-12)와 복음(요한 15,9-17)을 봉독할 수 있다.>

예물기도

주님, 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며 비오니
복된 프란치스코의 온유한 마음을 성령의 불로 타오르게 하셨듯이
저희 마음에도 성령의 그 거룩한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요한 15,16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세상에서 복된 프란치스코의 사랑과 온유함을 본받아
하늘에서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본당에 복사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학생 복사단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 복사단입니다. 학생 복사단은 주일 12시 미사를 담당하고, 어른 복사단은 주일 10 미사를 담당했습니다. 복사단 중에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복사인 집이 있습니다. 아버지 중에는 자녀와 함께 미사 복사를 하고 싶어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평일 미사에 가족이 복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평일 미사에 복사가 있어서 좋았고, 가족이 함께 복사를 하니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버지가 딸에게 신앙의 기쁨을 전해주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아버지의 자리가 늘 따로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무얼 배운다는 생각도 잘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교육은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즘 아빠들은 자녀의 육아에 관심이 많고,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 길을 위해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 교육도 이렇게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공자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습니다. 3명이 같이 있으면 그중에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고 합니다. 후배 신부님의 사제관에서 지내면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식탁에 예쁜 식탁보를 깔았습니다. 벽에는 좋은 그림이 있었습니다. 식탁보와 그림이 있으니 사제관 주방이 밝아졌습니다. 이번에 갔더니 거실에 화초들이 가득 반겨주었습니다.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집에 있는데 시들어가는 화초가 있다면, 바빠서 물을 주기가 어려운 화초가 있다면 사제관으로 보내달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교우들이 하나둘 화초를 가져다주었답니다. 신부님은 늘어나는 화초를 보관하기 위해서 선반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거실 안 선반 위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화초를 보니 거실이 정원이 되었습니다. 쌀을 씻은 물을 화초에 주니 화초가 더욱 생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화초를 가꾸는 정성으로 교우들을 만나니 교우들도 신부님을 아끼고 존경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넷째 왕의 전설 이야기를 연극으로 했었습니다. 예수님께 경배 드리기 위해서 출발한 사람은 원래 4명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4번째 동방박사는 오는 길에 가난한 사람을 만났을 때 가지고 간 선물을 주었습니다. 굶주린 사람을 만났을 때도 가지고 간 선물을 드렸습니다. 병든 사람을 만났을 때는 여관에 데려다 주었고, 남은 돈을 여관 주인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네 번째 박사는 이제 가진 것이 없어서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30년 시간이 흐른 뒤에 네 번째 박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네 번째 박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내가 가난했을 때 나에게 경배하였다. 너는 내가 굶주렸을 때 나에게 경배하였다. 너는 내가 병들었을 때 나에게 경배하였다.” 네 번째 박사는 예수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갔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13번째 제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네 번째 동방박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초를 가꾸는 정성으로 교우들을 사랑하는 사제가 13번째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위해서 함께 복사서는 형제님이 네 번째 동방박사라고 생각합니다. 2025년이 시작되었고 어느덧 1달이 되어갑니다. 2025년에는 나의 이름이 13번째 제자의 이름으로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나의 이름이 네 번째 박사의 이름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주님께로 가는 이정표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르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마르 3,13-19

 

제네바의 주교님이 저렇게 선(善)하다면 하느님은 얼마나 더 선하실까?

 

많은 분들이 제게 묻습니다. 돈보스코 성인이 설립한 수도회인데, 왜 돈보스코 수도회가 아니라

살레시오회인가요?

 

돈보스코가 활동하던 1800년대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쪽 대세 성인이 한분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십니다.

 

살아 생전 돈보스코는 사랑의 박사, 친절과 온유의 성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행 중인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 사업의 주보 성인으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수도회를 설립하면서 이름조차 살레시오회로 명명한 것입니다.

 

1593년 갓 서품된 순간부터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성소 여정은 범상치 않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서품과 동시에 제네바 교구 참사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서열상 교구장 다음가는 위치였습니다.

 

1594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샤블레라는 험한 산간 지방에 칼뱅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가톨릭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숨 건 선교를 자청했습니다.

그가 샤블레에 최초로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들의 냉대와 박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불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심자들의 수는 극히 미미했습니다.

칼뱅파 신자들의 집회가 끝난 예배당에서 홀로 쓸쓸히 미사를 봉헌해야만 했습니다.

도우미로 따라왔던 사촌은 2년 만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돌아갔습니다.

 

혹독한 시절이었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자, 칼뱅파로 넘어간 신자들을 위해 팔이 아프도록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복사기도 없던 시절이라, 같은 내용을 쓰고 또 썼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대문 밑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는 이른바 ‘미디어 선교’를 일찌감치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그의 부단한 노력에 더해 1598년 프랑스와 사보이아 간에 이루어진 평화 협정에 힘입어

샤블레 지역의 칼뱅파들이 서서히 가톨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4만여 명에 달하는 양들이 다시금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1602년 35세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제네바 교구장에 착좌하게 됩니다. 알프스산맥과 안시 호수가 멋지게 어우러진 안시에 거처를 정한 그는

600여 개의 본당을 두루 다니며 사목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부드럽고 달콤한 품성의 소유자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을 각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큰 환영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모습과 삶에 홀딱 반하고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 돌 정도였습니다.

 

“제네바의 주교님이 저렇게 선(善)하다면 하느님은 얼마나 더 선하실까?”

 

틈만 나면 분노하고, 여차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은

부드럽고 자상한 어투로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한 말의 식초보다는 꿀 한 방울로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참으로 설득력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고,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하느님을 갈망하며,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를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그가 남긴 불멸의 명저 신심 생활 입문을 통해 영성 생활에 대한 그의 선구자적 시각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창조하실 때, 초목들은 종류에 따라 각기 자기 열매를 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당신 교회의 살아있는 초목인 그리스도인이 각자 자신의 품위와 신분, 성소에 따라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신심은 귀족, 노동자, 왕족과 노예, 과부와 미혼녀, 기혼녀 등에 따라 각각 다른 방법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각자의 능력과 일, 직무에 알맞아야 합니다.

신심 생활은 군인들의 막사, 수공업자들의 점포, 왕족들의 궁정, 부부들의 가정에서도

활짝 꽃 피어나야 마땅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마르 3,13)
이는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처럼 그분께서는 먼저 부르시고, 제자들은 그분께 응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이토록 당신께서는 우리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성소는 당신이 원하신 것이요, 당신이 주신 선물이요, 은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 나아온' 이들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른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응답한 이의 삶이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하느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복음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마르 3,14-15)

이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열 두 부족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을 갱신하고, 신약의 새로운 백성을 선포하십니다. 

 

‘세우다’란 말의 원어의 뜻은 ‘만들다’, ‘창조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새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만들어지고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둘을 '사도'라 부르십니다.

그러니 결국 이 '열둘'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곧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제자’(μαθετεσ)라는 의미와 동시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고 다니는 '사도'(αποστολοσ)라는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제자요 사도인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가?

 

그것은 우선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 입니다.

그것은 마치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 ‘부부가 함께 지내는 것’처럼 한 몸을 이루며,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 안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스승이 계시는 곳에 제자도 있어야 하고, 스승이 파견한 일을 사도가 하게 됩니다.

곧 제자와 사도의 신원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이’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함께 지내되, 누구와 함께 지내느냐?’ 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지낸다’는 것은 ‘물들어 간다, 섞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곧 악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악에 물들고, 선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선에 물들어가듯,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 하느님이 되어갑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되어 간다는 것이요,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 나르는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와 함께 지내고 있는가? 

나 자신인가? 예수님인가?”

 

<오늘의 말 · 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마르 3,14)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분명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고, 당신 뜻 안에 살게 하소서.

당신 뜻의 실천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고,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23.연중 제2주간 목요일                                                           히브7,25-8,6 마르3,7-12

 

                                                          올바른 삶

                                                “분별의 지혜; 거리두기”

 

위대한 지도자는 당대보다도 후대에 평가받기 마련입니다.

그분들의 생애는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 됩니다.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이 결핍된 보는 눈을 잃은 지식인들이 필히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정말 그 좋은 두뇌에 많은 지식을 지닌 이들의 눈먼 현실인식을 보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맹신과 광신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시 묻게되는 질문입니다.

상식과 이성, 진실과 양심, 공정과 정의, 배려와 존중, 균형과 지혜, 예의와 평화등은 좌우,

진보와 보수 이전에 기본적으로 공유해야 할 덕목이겠습니다.

다만 현자의 말씀도 공감이 갑니다.

 

“존경받는 선비들은 공부의 쓸모를 묻는 질문에 자신의 삶으로 대답했다.”

“가장 경박한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쓸데 없다 하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낡아빠진 이야기라고 한다.”

선생은 많아도 어른은 만나기 힘든 시대요, 삶의 스승, 삶의 지혜가 참으로 목마른 시대입니다.

수행이 결여된 시대, 참된 수행의 훈련과 습관화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을 다 읽었습니다. 근현대사를 공부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을 거울같이 비춰볼수 있는 참 유익하고 감동적인 내용들 가득한 책입니다.

평생 수시로 읽고 싶은 책입니다.

감히 말하건데 지금은 좌우 모두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학자군주이자 백성을 참으로 사랑했던

세종, 정조이후 최고의 지도자라 칭하고 싶습니다.

두 사례만 인용합니다.

 

“문; 후배 정치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덕목은?”

 

“답; 첫째, 정치인은 ‘서생적 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지녀야 합니다.

둘중 하나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정치하는 데는 원칙과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좌표를 잃고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인이 됩니다.

 

 둘째, 정치인은 국민의 반보(半步) 앞에서 국민과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비전을 실천함에 있어서 항상 국민과 함께 가야 합니다.-

 

“문; 수많은 고통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끝내 이겨내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답; 첫째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바르게 인도해주실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둘째, 나를 믿고 따르는 나의 가족과 동지들, 그리고 수많은 국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힘들고 흔들릴 때마다 이분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가졌습니다.

 

   셋째, 역사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했는데요.

역사를 보면 정의롭고 바른 일을 한 사람들이 당대에는 희생당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결국 재평가받아서 후대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비단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 좋은 도움이 되는 지혜로운 조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하느님 중심의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로 그 결정적 모범이 후대에 위대한 새계약의 대사제로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의 고백이 참 좋은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새계약의 중재자이신 대사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입니다.”

 

이래서 감사하게도 날마다 대사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느님께 미사를 봉헌합니다.

착한목자로서 최선을 다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로 하느님은 예수님을 새계약의 중재자인

대사제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착한목자로서 참으로 분주했던 전형적인 하루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질시하고 배척했던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대다수 가난하고 병들었던 민초들은 갈릴래아는 물론

인근 곳곳에서 치유자이자 구마자이신, 착한목자 예수님을 찾아 구름처럼 모여듭니다.

어둠에서 빛을, 죽음에서 생명을, 절망에서 희망을 찾듯이, 치유의 구원을 찾아 착한목자 예수님을 찾습니다.

죄인들과 떨어져 계신 주님으로 묘사하듯 민초들과 함께 하되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심 또한

예수님의 기막힌 분별의 지혜이자 삶의 지혜였습니다.

 

당신을 밀쳐대는 군중 사이에 불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거룻배 한척을 마련하여 거리를 두십니다.

바로 이 거리가 서로를 지켜 주며 절제와 침묵, 인내에로, 기도에로 이끕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거리, 지혜의 거리, 구원의 거리입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리한 감각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나

주님은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십니다.

 

예수님이 극도로 경계했던바 눈먼 열심의 광신이요 맹신입니다.

오늘날 그대로 입증되는 현실입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어버릴 때, 광신, 광증, 광풍, 광분, 광란,

광인 등 미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 경계했던바 중용과 절제를 잃은 바로 이런 열광의 광신자들이요

맹신의 극단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군중들이 착각하는 그런 영광의 메시아, 승리의 메시아가 아닙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그분의 기적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안에서 완전히 계시됩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과 더불어 부활의 영광의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이, 파스카의 예수님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을 때,

비로소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광신이나 맹신이 아닌 온전한 믿음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며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다시 나누고 싶은 제 좌우명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마지막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1/24(금) [(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르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조재형 신부)

 

2.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남긴 불멸의 명저 신심 생활 입문을 통해 영성 생활에 대한 그의 선구자적 시각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창조하실 때, 초목들은 종류에 따라 각기 자기 열매를 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당신 교회의 살아있는 초목인 그리스도인이 각자 자신의 품위와 신분, 성소에 따라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신심은 귀족, 노동자, 왕족과 노예, 과부와 미혼녀, 기혼녀 등에 따라 각각 다른 방법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각자의 능력과 일, 직무에 알맞아야 합니다.

신심 생활은 군인들의 막사, 수공업자들의 점포, 왕족들의 궁정, 부부들의 가정에서도

활짝 꽃 피어나야 마땅합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마르 3,14)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분명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고, 당신 뜻 안에 살게 하소서.

당신 뜻의 실천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고,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메시아 예수님은 그분의 기적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안에서 완전히 계시됩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과 더불어 부활의 영광의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이, 파스카의 예수님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을 때,

비로소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광신이나 맹신이 아닌 온전한 믿음으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며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이수철 신부)

 

1/24(금) [(백)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24일차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마르 3,14)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분명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고, 당신 뜻 안에 살게 하소서.

당신 뜻의 실천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고,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1월24일(금)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