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3월 14일 금요일[(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저를 고난에서 빼내 주소서.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본기도
신자들이 파스카 축제를 정성껏 준비하며
엄숙히 시작한 육신의 재계로 영혼의 참된 쇄신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8,21-28
21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22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23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24 그러나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인이 저지르는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하면, 살 수 있겠느냐?
그가 실천한 모든 정의는 기억되지 않은 채,
자기가 저지른 배신과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제 소리에, 당신 귀를 기울이소서. ◎
○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
○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3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25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26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를 자비로이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주님과 화해하고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나는 죄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죄인이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가 새롭게 되어
옛 죄를 깨끗이 씻고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의 백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겉으로 지키는 재계로 마음속 깊이 회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본당에서 ‘회의’를 하게 됩니다. 사목회의, 구역장 회의, 꾸리아 회의, 직원회의, 세대별 모임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회의는 ‘시작기도, 안건토론, 공지 사항, 건의 사항, 사제 강복‘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구역장 회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됩니다. 시작기도, 복음 나누기, 안건토론, 공지 사항, 건의 사항, 사제 강복’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복음 나누기는 33년 전 서울대교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는 ‘2000년대 복음화’라는 주제로 2000년을 복음화의 차원에서 맞이하려고 준비했습니다. 2000년대 복음화의 핵심 과제는 ‘복음 나누기’였습니다. 2000년대 복음화는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하여, 말씀의 힘으로’ 시작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1993년에 복음 나누기 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서 필리핀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당시 연수에서 복음 나누기는 ‘Seven Step’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복음 나누기가 7개의 단계를 거쳐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일 단계는 회의에 주님을 초대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 자유롭게 주님을 초대합니다. 천주교 신자는 암송 기도에 익숙해서 자유롭게 하는 기도를 어색해 하지만, 주님을 초대하면서 회의의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단계는 복음을 읽는 것입니다. 세 번 정도 복음을 읽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하느님이셨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읽으면서 복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신앙인으로 지내면서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삼 단계는 침묵 중에 말씀을 묵상하는 겁니다. 엠마오로 가는 중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사 단계는 마음에 와닿은 성경 말씀을 3번씩 선포하는 겁니다. 복음이 이제 나의 마음 안에 머무는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담대한 마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오 단계는 마음에 와닿은 성경 말씀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같다. 농부가 그 밭을 발견하면 가진 것을 팔아서 밭을 산다.” 복음 나누기는 말씀이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찾은 보물을 나누다 보면 모임이 풍성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말씀이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육 단계는 공동체의 나눔입니다. 공동체가 하였던 일, 공동체가 하는 일,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눕니다. 본당의 사목 방침을 알려줍니다. 본당의 공지 사항도 알려줍니다. 공동체의 의견을 본당에 알려주기도 합니다. 칠 단계는 마침 기도입니다. 참석한 인원 중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복음 나누기는 초대 교회가 살았던 신앙의 삶입니다. 30년이 지났지만, 달라스 구역모임에서 복음 나누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늘어났습니다. 노화를 방지하고, 젊음을 유지하면서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은 오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일찍 죽은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품격보다 자본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우리가 신앙의 차원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악인이라 할지라도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주님의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젊은 피를 수혈한다고 해도, 좋은 미생물을 주입한다고 해도, 유전자를 변환시킨다고 해도 하느님의 규정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하느님의 규정과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우리는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삶의 길이도 분명 중요합니다. 남들이 사는 만큼의 수명을 누리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와 가치입니다. 내가 남들에게 원하는 만큼 남들에게 베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강은 바다에 이르듯이,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행복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5,20-26
화내지 않고 남은 인생 여정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제 마음속에서 자주 머리를 쳐드는 것이 젊은 시절 제 인생 여정 안에서 발생한
실수요, 그로 인한 부끄러움과 회한의 정입니다.
그때 그 순간 왜 참지 못했을까?
왜 하필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해서 두고두고 후회할까?
특히 오늘 주님께서 건네시는 말씀 들으니 더 그런 생각이 커집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
돌아보니 얼마나 자주 가까운 이웃들에게 불처럼 화를 냈고, 또 그 화를 제어하지 못하니,
그들에게 바보 멍청이라는 표현을 안팎으로 자주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씩 화를 내고 있고, 요즘은 겉으로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 여전히 그런 과한 표현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요즘 화날 일이 있으면 그 감정을 숨기지 말고 솔직히 화를 내고, 분노할 일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자신을 돌보고 방어하는 노력이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이라야지, 틈만 나면 흥분하고, 여기 퍼붓고 저기 퍼붓다가는 주변 사람들
다 떠나가고 철저한 외톨이로 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화나 분노의 성숙하고 균형잡힌 발산입니다.
먼저 분노할 일인가 웃어넘길 일인가 식별이 필요합니다.
별것 아닌 일에 목숨 걸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정말이지 억울한 일,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이 하얗게 됩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저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그 무엇이 머리끝까지 올라옵니다.
그런 순간은 아이큐가 30퍼센트 급하락 하는 순간이니, 절대 어떤 말이나 행동이나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시 냉각 기간, 짧게 기도하는 시간을 확보한 후, 이성을 차리고 평상심을 회복한 후,
억울한 일에 대응을 하면 좋습니다. 그런 순간 기도도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성모송을 천천히 세 번 정도 바치며,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주 좋은 노력입니다.
언성을 높이면 지는 것이니, 일단 편안한 목소리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사실은 그게 아니라
이런 것이라며 차초지종을 차근차근 설명해줍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나를 내 스스로 변호하고 배려해주는 반드시 필요한 노력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보니 화를 내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주님께서 우리 내면의 중심에 언제나 자리 잡고 계신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 여정도
분노 한번 하지 않고 살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화해’를 이루는 것이 ‘의로움’>
우리는 지금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의 큰 주제 중의 하나는 '의로움'입니다.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맺음'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회개와 화해를 요구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참된 의로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
오늘 복음은 그 ‘여섯 가지 의로움’ 중에서 ‘첫 번째의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형제를 ‘바보’ 혹은 ‘멍청이’라고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까지도 ‘살인’에 포함시키십니다.
곧 형제에게 ‘성’내고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는 언어폭력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참으로 ‘혀’를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집회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칼날에 쓰러졌지만, 혀 때문에 스러진 이들보다는 적다.”
(집회 28,18)
또한 이는 '혀'의 살인뿐만 아니라, 죄의 뿌리인 내면적인 면도 살인에 포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말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1요한 3,1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지 ‘살인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더 나아가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곧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의 근본적인 정신이 “화해”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살인하지 않는 것이 본질인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화해하면 살인하지 않게 되지만, 살인하지 않는다고 화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우선하는 일이 ‘화해하는 일’입니다.
먼저 화해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물을 바칠 때, ‘먼저 화해하라’ 고 하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마태 5,23-24)
이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예물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그러니 예물을 바치는 ‘우리 자신이 곧 예물’입니다.
마치 '야훼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카인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지 않으시고'(창세 4,4) 예물과 예물을 바치는 이를 하나로 간주하셨듯이, 예물을 바치는 이를 바로 ‘예물’로 삼으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제단의 예물보다 예물을 바치는 사람의 ‘의로움’을 바라십니다.
우리가 바치는 예물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 앞에 나서기에 합당한 사람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마태 6,24)
그러니 불목한 형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얼른’ 화해해야 할 일입니다.
늦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지체치 말고 화해해야 할 일입니다.
시비를 가리고 따지기 전에, ‘먼저’ 화해해야 할 일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의로움인 것이 아니라, ‘화해’를 이루는 것이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13.사순 제1주간 목요일 에스4,17;12,14-16,23-25 마태7,7-12
믿음의 여정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
“주님,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은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히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시편138,4)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입니다. 참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사순시기는 기도와 회개의 때입니다. 살아있을 때 기도지 죽으면 기도도 못합니다.
기도하라고, 회개하라고, 사랑하라고 연장되는 날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확증편향, 무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무엇보다 길을, 희망을, 빛을 잃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사순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성규49,3-4)
참으로 하느님 앞에 회개할 때 겸손과 더불어 본연의 참나를 회복합니다.
하느님 없으면 참된 겸손도 불가능합니다.
사람이라면 종파에 관계없이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도올의 시국선언도 하나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서두와 끝부분만 인용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위기가 덮여 있습니다.
나는 이땅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문화와 역사, 도덕과 장구한 질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중한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피 끓는 호소가 남녀노소, 이념과 관계없이 민족의 양심을 깨우기를, 우리의 시인 한용운의 시
한 구절을 읽습니다.
‘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말하고 노는 때에 더 울게 됩니다.
님 있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여 좋은 말을 합니다마는, 나는 그들의 위로하는 말을 조소로 듣습니다.
그때는 울음을 삼켜서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하여 흘립니다.’”
저 또한 재작년 2023년 8.15 광복절부터 기상후 만세칠창으로 시작하고 만세칠창후 잠자리에 듭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이어 자신의 신원을 새로이 확인합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 ‘사랑의 전사’이다.”
옛 현자의 충고도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은 용서를 받았다. 그러니 타인에게도 관대하라.”<다산>
“사람이란 어리석더라도 남을 꾸짖는 데는 밝고, 총명하더라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는 어둡기 마련이다.”<송명신언행록>
타인은 물론 자신을 용서하며 자신에게도 관대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기도와 믿음, 삶에 대한 참 귀하고 필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결코 좌절이나 절망함이 없이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투지의 자세로 항구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요 믿음이요 삶의 자세입니다.
끝까지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부단히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적 탄력좋은 삶입니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겪지 않고 한결같은 신망애信望愛의 삶을, 진선미眞善美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하고 항구히 기도하고 살다보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바에 이르게 되고 그대로 응답됩니다.
우리 방식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참 좋은 최상, 최선의 방식대로 응답됩니다.
당장은 모르지만 삶의 뒤안길을 보면 저절로 응답된 삶이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가 청하는 분은 초월자 철학의 차가운 하느님이 아니라 너그럽고 인자하신,
다정하고 따뜻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아버지께 대한 한없는 신뢰와 사랑을 날로 깊이하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감사와 행복의 고백기도입니다.
몰라서 불만에 불행이지 알면 알수록 감사요 행복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믿습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감사와 행복의 자각에서 저절로 황금률의 지혜와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참사람의 기초가 되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황금률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오늘 이런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믿음과 삶의 모범이 제1독서의 에스텔 왕후입니다.
언젠가 갑자가 이런 기도가 아니라 평소 기도로 축적된 내공의 믿음의 삶이 기도로 표출된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이요 삶입니다.
기도가 삶의 꼴을 형성하고 이런 믿음과 삶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압니다.
우리의 영원한 정주처이자 피신처이자 안식처는 주님뿐이요, 이런 주님께 바치는 에스텔의 기도가
참 절박합니다.
흡사 인격화된 “한반도의 대한민국”이 드리는 기도같습니다.
위기중에 있는 작금의 이 나라의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필히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몸은 위험에 닥쳐있습니다.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핵무기를 능가 압도하는 기도의 힘, 믿음의 힘, 미사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미친 광신도狂信徒가 아닌 참 빛의 광신도光信徒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당신께 피신처를 둔 백절불굴의 기도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 살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 주소서.”(시편51;12,14). 아멘.

3/14(금)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모든 강은 바다에 이르듯이,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행복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이 세상을 살아보니 화를 내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주님께서 우리 내면의 중심에 언제나 자리 잡고 계신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 여정도
분노 한번 하지 않고 살 가능성이 충분합니다.(양승국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요 믿음이요 삶의 자세입니다.
끝까지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부단히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적 탄력좋은 삶입니다.(이수철 신부)
3/14(금) [(자)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오늘의 말 · 샘 기도>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4)
주님!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지체치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화해하게 하소서!
원망을 품은 이의 아픈 마음을 보게 하시고, 제 불찰을 먼저 살피게 하소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이기려 하기보다,
화해한 제 자신이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14일(금) 7시3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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