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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3월 19일 수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3월 19일 수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다윗 가문의 요셉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3,55; 1,19 참조). 그는 같은 나자렛에 살고 있던 마리아와 약혼하였는데, 함께 살기도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한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며 고뇌하지만, 천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로써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또한 성인은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예수님을 기르는 일에 헌신한 의로운 요셉 성인을 기리고, 성인의 믿음과 덕을 본받기로 다짐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입당송

루카 12,42 참조
보라,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길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다.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요셉에게 어린 시절의 구세주를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의 구원 계획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루카 1,32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89(88),2-3.4-5.27과 29(◎ 37ㄱ)
◎ 그의 후손들은 영원히 이어지리라.
○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
○ 나는 내가 뽑은 이와 계약을 맺고,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였노라.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
○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 그와 맺은 내 계약 변함이 없으리라. ◎

제2독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시편 84(83),5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또는>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ㄱ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예물기도

주님,
복된 요셉이 충성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신 성자께 봉사하였으니
저희도 깨끗한 마음으로 이 제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요셉 성인의 사명>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특히 복된 요셉의 대축일에
아버지를 마땅히 찬송하고 찬양하며 찬미하나이다.
아버지께서는 의로운 요셉을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배필로 삼으시고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 요셉을 성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시어
성령으로 잉태되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살피게 하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영성체송

마태 25,21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영성체 후 묵상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주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꿈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주님의 천사의 말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그대로 하였습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복된 요셉의 축제를 기쁘게 지내며
이 제대에서 생명의 양식을 배불리 먹었으니
저희를 영원히 지켜 주시어
자비로이 베푸신 은총을 길이 간직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Guido Reni - St Joseph with the Infant Jesus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고인이 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티브로 한 두 교황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통을 지키려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변화를 꿈꾸는 프란치스코 교황(당시 베르골료 추기경)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순히 두 교황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두 사람의 깊은 고민과 신앙의 여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회를 지키려 했지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반면, 베르골료 추기경은 교회가 좀 더 가난한 이들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젊은 시절 독재 정권 아래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졌지만, 하느님 앞에서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전통을, 베르골료 추기경은 개혁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습니다. 교회는 변해야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하느님의 진리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구약과 신약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약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드러나는 예표라면, 신약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오늘 저는 구약과 신약에서 볼 수 있는 두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서 살았지만, 하느님의 계획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먼저 구약의 요셉을 떠올려 봅시다. 그는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꿈을 믿었지만, 현실은 혹독했습니다. 종으로 팔려 가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등 숱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흉년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 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고난과 시련을 통해 더 큰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단순한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과 배신 속에서도 하느님의 섭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신약의 요셉은 다소 조용한 인물입니다. 성경에 그의 말이 한마디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행동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헤로데 왕이 아기 예수님을 해치려 하자, 또다시 꿈에서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라는 명을 받고 나자렛으로 가서 예수님을 양육합니다. 신약의 요셉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느님께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저는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 그러나 요셉은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하느님의 뜻을 따랐고, 그 순종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의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자"였다면, 신약의 요셉은 "꿈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신약의 요셉은 행동하는 신앙과 침묵 속의 순종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실천적 지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약의 요셉을 통해 "가장 큰 사랑은 말보다 행동에서 나온다"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두 요셉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둘 다 꿈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둘 다 고난을 겪었지만,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셋째, 둘 다 중요한 순간에 용서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이점도 있습니다. 구약의 요셉은 하느님의 계획을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신약의 요셉은 그 계획을 믿고 침묵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두 요셉과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때로는 구약의 요셉처럼 고난을 겪으며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시간이 있습니다. 또 때로는 신약의 요셉처럼 조용히 순종하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실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두 요셉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며 고뇌하지만, 천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복음마태 1,16.18-21.24a

 

여행객들에게는 요구가 많지만, 순례자에게는 감사가 전부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요셉 성인의 이름 뒤에는 몇 가지 중요한 닉네임이 붙습니다.

마리아의 아내, 예수님의 양부, 나자렛 성가정의 수호자, 임종자들의 수호자, 성교회의 보호자...

 

구세사 안에서 요셉 성인의 공로와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던지 미사 경문 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찬 예식 내에

그분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과...”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마리아 못지 않게 요셉 성인의 삶도 참으로 기구하고 혹독했습니다.

그가 꿈꾸고 있었던 평범하고도 단란한 결혼 생활은 하느님의 초대로 인해 일찌감치 물건너 갔습니다.

 

어찌보면 그는 닭쫓던 개처럼, 낙동강 오리알 같은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결혼한 것도 아니고 결혼 안한 것도 아니고. 그는 하느님으로 인해 평범한 한 인간 존재로서

기본적인 욕구나 희망이 모두 차단되었습니다.

대신 그에게 성가정을 위한 봉사와 헌신, 침묵만이 요구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요셉 처지였다면, 입만 열면 불평불만에 하소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과묵했습니다. 충실했습니다.

하느님의 요청에 흔쾌히 순응하며, 그렇게 순탄치 않은 신앙 여정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요셉 성인에게서 강하게 풍기는 덕행은 순례자로서의 충실함입니다.

그의 모습에서 성조 아브라함의 신앙을 느낍니다. 일어나라니 즉시 일어났습니다.

떠나라니 군말 없이 떠났습니다.

 

요셉 성인은 부단히 자신의 의지와 계획을 접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추구했습니다.

언제나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 안갯속같은 여정이었지만, 기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그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행객은 요구가 많지만, 순례자는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복음마태 1,16.18-21.24a

 

<우리 신앙의 모델>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비오 9세께서는 요셉 성인을 '보편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셨고(1870년), 비오 12께서는 '노동자들의 수호자'로,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구세주의 보호자'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신자들은 요셉 성인께 '죽음을 앞둔 이의 수호자'로서 간구합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요셉성인의 ‘보편교회의 수호자’ 선포 15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하신 교황교서 <아버지 마음으로>(2020.12.8.)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목받지 않고 날마다 신중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가는 요셉 안에서, 우리는 저마다 곤경에 놓일 때의 주재자, 지원자, 안내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숨겨져 있거나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이 구원 역사에서 비할 데 없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모친이신 마리아께 대한 관심에 비하면 성 요셉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구속사에 있어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일찍이 다 이루셨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통해, 태어날 아기가 구세주 메시아임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이요, 둘째는 그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언이 요셉의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통해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느님 구원계획의 온전한 조력자’로 제시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성 요셉의 인품을 세 가지로 묵상해 봅니다.

첫째,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마태 1,19).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의로움으로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였고, 마침내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둘째, 그는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마태 1,19).

곧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심과 자비심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적인 고소를 통해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조용히 파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결국 그에게는 모욕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그러한 모욕을 감수하면서라도 마리아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참으로 그는 사려 깊은 처사를 할 줄 아는,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그는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하였습니다(마태 1,24).

곧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깊은 침묵으로 하느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행동하는 믿음으로 순명하였습니다.

 

사실 요셉은 오늘 복음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에서 단 한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들의 양부가 되셨습니다. 

그는 제2독서에서 아브라함이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듯이’(로마 4,18), 그도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믿음으로 순명하여, 구세주의 양부가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미 얻은 외아들을 포기했어야만 했다면, 요셉은 아들을 얻기도 전에 이미 외아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나아가, 아브라함에게는 그래도 아내가 있었지만, 요셉은 아내마저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침묵하되, 참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되, 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행동하되, 참으로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사려 깊되, 참으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우리 신앙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깊은 침묵,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접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내맡기고 행동하는 믿음, 타인의 처지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자비심과 사랑,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다운 순명이 바로 우리의 모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 요셉께 전구하며, 하느님 구원의 온전한 조력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오로지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18.사순 제2주간 화요일                                                          이사1,10.16-20 마태23,1-12

 

                                                       참된 리더십, 참된 영성

                                                           “경청, 회개, 섬김”

 

“살펴보소서, 주 저의 하느님.

 죽음의 잠을 자지 않도록 제 눈을 비추소서.”(시편13,4)

 

대혼돈의 시대입니다. 국내외 상황이 그렇습니다.

내전상황의 국내상황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희망을, 꿈을, 빛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대혼돈의 시대에 은총의 거룩한 사순시기가 있음이 구원입니다.

참으로 기도와 회개의 시기입니다.

일희일비, 부화뇌동, 경거망동할 것이 아니라 삶의 제자리에서 주님 안에 머물면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초발심의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옛 현자의 지혜입니다.

 

“막연한 그리움만 품으면서 정작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마음이 식고 가라앉아

멀어질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다.”<다산>

“‘산앵두나무꽃이 펄럭이면서 펄럭펄럭 나부끼네. 그대 어찌 그립지 않겠소만, 그대 머무는 곳이 너무 머네.’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 진정 생각한다면 어찌 먼 것이 있겠는가?”<논어>

 

모두 실천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진정 생각한다면 생각은 지금 여기서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마음으로만 회개가 아니라 회개의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시공을,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특히 각계각층 지도자들에게 해당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참된 리더십, 참된 영성을 배웁니다.

 

첫째, 부단한 자발적 경청의 삶입니다.

귀기울여 듣는 경청이요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경청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요

경청에 뒤따르는 겸손과 순명입니다.

 

경청이 바로 지혜이자 사랑입니다.

사순시기 경청의 선택과 훈련, 습관이 절실합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어리석은 하느님의 백성’을 대상으로 하는데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아아 탈선한 민족, 죄로 가득 찬 백성, 사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영성생활의 기초가 침묵과 경청입니다. 회개 역시 침묵과 경청으로 시작됩니다.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한 가치관 부재의 시대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침묵과 경청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말하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나눠야 할 영적훈련의 사순시기입니다.

 

둘째, 부단한 자발적 회개의 삶입니다.

모두가 절박한 회개의 실천동사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그대로 우리의 무딘 마음을 울리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1.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2.내 눈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버려라.

3.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4.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5.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자신은 물론 이웃 약자들에 대한 구체적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회개가 선행과 공정입니다.

주님은 회개의 실천을 통해 죄를 용서받고 축복이 따름을 밝히십니다.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소출을 먹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상징하는 바, 역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종교지도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포함합니다.

언행불일치의 삶,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는 외적 허영의 삶이 바로 회개의 대상입니다.

 

바로 자기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이 회개입니다.

이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이들의 말은 실행하되 행실은 따라하지 말라 하십니다. 

 

참으로 알맹이가 아닌 실속없는 껍데기의 삶을 추구하지 말고 본질적 깊이의 삶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적 허영의 삶을 단호히 끊어버리는 회개입니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주객전도主客顚倒, 지엽말단枝葉末端의 무지에 눈먼 무분별의 어리석은 삶을

단호히 끊어버리는 회개입니다.

예나 이제나 이런 무지에 대한 답은 주님의 회개 은총뿐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부단한 자발적 섬김의 삶입니다.

참된 회개의 열매가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 섬김의 실천이요, 

섬김은 영성의 모두입니다.

자유 또한 섬김을 위한, 섬김을 목표로 한 자유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단하나 파스카의 영성이요 이는 섬김과 겸손의 영성으로 표현됩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은 물론 모두가 명심해야할, 배워야할 참된 리더십, 참된 영성의 진수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분뿐이시고 너희는 형제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이처럼 하느님 중심의 삶에,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섬기는 이가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난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지혜의 사람, 하느님의 자녀, 빛의 자녀입니다.

이어 주님은 자발적 섬김과 겸손이 참 영성의 잣대임을 설파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섬기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요, 겸손으로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는 역설적 진리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자기 비움의 섬김과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 친히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드린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경청과 회개와 섬김의 참된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시편50,23ㄴ). 아멘.


3/19(수)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1. 우리의 삶에도 두 요셉과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때로는 구약의 요셉처럼 고난을 겪으며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는 시간이 있습니다. 또 때로는 신약의 요셉처럼 조용히 순종하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실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두 요셉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의지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며 고뇌하지만, 천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조재형 신부)

 

2. 요셉 성인에게서 강하게 풍기는 덕행은 순례자로서의 충실함입니다.

그의 모습에서 성조 아브라함의 신앙을 느낍니다. 일어나라니 즉시 일어났습니다.

떠나라니 군말 없이 떠났습니다.

 

요셉 성인은 부단히 자신의 의지와 계획을 접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추구했습니다.

언제나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 안갯속같은 여정이었지만, 기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그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행객은 요구가 많지만, 순례자는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오로지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영성생활의 기초가 침묵과 경청입니다. 회개 역시 침묵과 경청으로 시작됩니다.

갈수록 시끄럽고 혼란한 가치관 부재의 시대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침묵과 경청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말하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고 많이 나눠야 할 영적훈련의 사순시기입니다.

(이수철 신부)

 

3/19(수)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마태 1,20)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오로지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 2025년 3월19일(수)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