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3월 12일 수요일[(자) 사순 제1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 원수들이 저희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모든 곤경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본기도
이 백성의 정성을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절제하고 극기하며 선행을 실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요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10
주님의 말씀이 1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에게 주신 선물을 봉헌하오니
이 제물이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 모두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환호하리이다. 주님, 저희를 감싸 주소서.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성사로 저희를 끊임없이 길러 주시니
너그러이 내려 주신 이 성체로
저희가 생기를 찾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의 백성을 보살피시고 모든 죄를 인자로이 씻어 주시어
그들이 온갖 역경에서도 해를 입지 않고
어떤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점심 먹고 잠시 쉬려고 하는데 병자성사를 청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본당에 교적은 없고, 성당에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병자성사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햇빛은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사람에게도 골고루 비춘다.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본당에 교적이 없어도, 성당에 나오지는 못했어도 어머니를 위한 아들의 효심이 고마웠습니다. 저는 병자성사 준비를 하고 형제님과 함께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92세의 어머니는 기력이 없었고, 이제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은 못 하지만, 어머니는 사제가 온다는 걸 알았습니다. 성체를 영해 드리니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웃었습니다. 형제님과 대화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형제님의 사촌 형은 저의 신학교 선배 사제였습니다. 저는 선배 사제와 신학생 양성을 위해서 함께 고민했었습니다. 지역 교육 담당 신부로 있을 때, 지역 교육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었습니다. 형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성당에 다니지 않으면서 어머니를 위해 병자성사를 청하는 것이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머니가 병자성사를 받았으니, 앞으로 성당에 잘 다니겠습니다. 어머니가 저의 신앙을 위해서 마지막 가는 길에 다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형제님은 어머니를 위한 장례미사를 청하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당에 다니지도 않았는데 성당에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해서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재능, 우리의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어도, 비록 우리가 신앙생활을 게을리했어도, 비록 우리가 인색했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따뜻하게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하느님께서는 너희 죄를 눈처럼 희게 해 주실 것이다.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하느님께서는 너희 죄를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픈 사람을 위해서 왔다.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한다.”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치매에 걸리신 어르신이 침상 밖을 나오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쳤습니다. 그럼에도 어르신은 자꾸만 침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걱정하였습니다. 어르신이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치매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고령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이유를 찾으면 10가지도 넘었습니다. 다들 안타깝게 바라볼 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입니다. 새로 온 막내 간호사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신발이 작네요.’ 보니까 할아버지의 신발이 정말 작았습니다.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발에 맞는 신발을 가져다드렸습니다. 어르신은 힘은 들지만 신발을 신고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오셨습니다. 걷지 못할 거라고 단정 지은 사람들의 눈에 할아버지는 치매 환자였고, 걸을 수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은 막내 간호사는 할아버지의 신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회개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고,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우리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했던 요나처럼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는 너그럽고 자비롭도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11,29-32
잘 나갈 때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요나가 찾아간 니네베는 당시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서울 비슷한 대도시였습니다.
웅장한 궁전과 사원들을 둘러싼 성벽은 그 위로 마차 3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넓었습니다.
성벽의 높이는 23미터였는데,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 앞에는 너비가 24미터인 방어용 연못까지
건설할 정도였습니다.
요나 예언서도 니네베라는 도시의 규모와 위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요나 3,3)
예언자로 불림받은 요나가 요리조리 도망 다니다가, 마침내 주님의 손아귀에 잡혀 최초로 파견된 도시가
바로 그 잘 나가던 도시, 당시 최강대국의 수도 니네베였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니네베 성안으로 들어가는 요나 예언자의 모습이 참 딱해 보입니다.
성안으로 들어가 하룻길을 걸은 요나 예언자가 마침내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
니네베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요나 예언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외쳐본 들 뭐하겠어? 귀여겨 듣지도 않을 니네베 사람들인데...그래도 주님께서 외치라 하시니,
일단 한번 외쳐나 봐야겠다.
안 그러면 주님께서 내게 또 어떤 끔찍한 조치를 취하실지 모르니...’
그런데 정말이지 뜻밖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 예언자의 말을 귀담아 들은 것입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했습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자루 옷을 입었습니다.
왕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 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습니다.
그런 니네베 사람들의 모습을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을 돌리시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의 집단적 회개 사건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또 다른 잘 나가는 우리들의 대도시를 향해서도 강력히 회개를 촉구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돈과 명예, 소비주의와 향락주의에 물든 거대 도시민들의 집단적인 회개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번창했고 잘 나갔던 대도시 니네베는 기원 전 612년, 자취도 없이 이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멸망의 이유는 아시리아 제왕들의 잔혹함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발굴된 오벨리스크나 벽화에는 저마다 새겨놓은 무용담이나 왕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짐은 잔인하고…전쟁에서는 앞장서 달리는 온 천하의 왕이며…무릎 꿇지 않는 적들을 짓밟고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었노라. 나는 들판을 피로 물들이는 무시무시한 태풍이로다.”(아슈르바니팔 왕).
교만과 사악함, 사치와 게으름에 빠져 있던 아슈르바니팔 왕은 연합군이 바빌로니아를 앞세우고 쳐들어오자
궁에 불을 질렀습니다.
궁녀와 시종들 그리고 자신까지 불길 속으로 내던지며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거대했던 도시 니네베는 폐허로 바뀌었습니다.
수천년간 사막 바람이 뜨거운 모래와 먼지 구름을 몰고 와 폐허를 덮자, 왕성은 큰 둔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끝도 없이 군사력을 증강시키면서 지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몇몇 강대국들, 앗시리아와
니네베의 멸망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두려워할 줄 모르며, 약소국들을 우습게 여기는 나라들의 회개가 절실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우리는 기적을 찾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불신의 완고함을 벗고 ‘회개’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오늘 독서는 이방인 성읍인 니네베 사람들의 ‘회개’를 들려줍니다.
반면에 복음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을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시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그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 11,29)
여기서 '악한 세대'라는 말은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할 뿐만 아니라, 마태오복음의 병렬구문에 따르면,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곧 군중이 표징을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모함할 구실을 찾기 위한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표징을 요구하며 시험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루카 11,30)
그렇다면 요나의 표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라고 외친 ‘회개의 때’에 대한 표징이요, 고래 뱃속에서 사흘째 날에 ‘다시 나온’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당신께서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는 ‘십자가와 부활의 표징’으로 ‘구원의 때’가 왔음을 드러내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2)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31)
사실 요나와 솔로몬은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소생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번영과 지혜는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표징을 읽을 줄 아는 믿음의 눈’입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을 보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불가사의한 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과 그 자비를 선포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믿음으로 보면, 모두가 신비요 사랑이요 자비요 기적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적을 찾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루카 11,29)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11.사순 제1주간 화요일 이사55,10-11 마태6,7-15
주님의 기도
“100% 선의의 협조(노력)를 다해야 하는 기도”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주님,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이 나라를 구하소서."
기도와 더불어 시작하는 오늘 강론입니다.
어제 강론은 사랑이 주제였고 오늘 강론 주제는 기도입니다.
사랑에 늘 초보자이듯이 기도에도 늘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사랑처럼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사랑의 선택, 훈련, 습관이듯이
기도 역시 선택에 훈련이요 습관을 통해 기도는 생활화, 일상화되어야 합니다.
왜 기도합니까? 살기위해, 영혼이 살기위해, 참 절박한 까닭입니다.
영혼 치유의 최고의 명약이 기도입니다.
한결같은 끊임없는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유비무환, 처방의 치유에 앞서 영혼을 튼튼히 하는 기도의 예방이 지혜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두발로 서서 눈들어 기도하라 하늘이요 직립인간입니다.
삶과 기도는 함께 갑니다.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이고 기도가 없는 삶은 공허합니다.
기도가 삶의 꼴을 결정합니다.
기도하는대로 살고 사는대로 기도합니다.
나중 남는 얼굴도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중 하나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복된 정의입니다.
하느님과 생명과 사랑의 소통인 기도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광야인생 기도하면 성인도 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괴물도 악마도 폐인도 됩니다.
기도하면 천국이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지옥도 됩니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야수도 순하게 길들일 수 있는 것은 기도뿐입니다.
참으로 기도해야 할 작금의 혼란한 시대입니다.
세속화시대, 물질만능시대,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해야 사람입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삶을, 기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정말 기도를 사랑하세요.
기도 잘 하는 방법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기도의 힘은 말씀의 힘이자 하느님의 힘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는 말씀의 힘이 그대로 기도의 힘이자 하느님의 힘임을 말해 줍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주는 비와 눈같은 말씀의 위력입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생명이자 빛이요 영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장엄한 선언입니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바로 말씀의 힘, 기도의 힘, 하느님의 힘을 말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처럼 빈말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느님이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하지만 오해요 착각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견해도 예수님과 같습니다.
“많은 말로써가 아니라, 마음의 순결함과 통회의 눈물로써 우리의 간청이 들어 허락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에서 영감을 받은 열정으로 길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도는 짧고 순수해야 한다.”
어찌 기도뿐이겠습니까? 강론도 말도 짧고 순수해야 합니다.
삶이 간절하고 절실하고 진실하면 기도도 말도 글도 강론도 짧고 순수합니다.
군더더기 접속사나 형용사는 많이 생략되고 동사들만 남습니다.
주님의 다음 말씀도 기도에 아주 중요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알고 계신데 왜 필요없이 기도하는가? 의문 제기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하느님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쉬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기도할 수록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아 알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기도중의 기도가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악마가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미사전례라 했는데 이와 더불어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일상화되어 기도와 삶이 하나될 때 악마의 유혹이나 침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주님의 기도가 우리 삶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만들어 줍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의 하느님 중심의 가난하고 겸손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압축 요약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살아갈수록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의 기도는 되뇌어야 할 기도라기 보다는 기도의 방식이요 기도시 필요로 하는 목록들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분발케 하면서 하느님께 협조의 노력을 다하게 합니다.
정말 주님의 기도를 깊이 바치게 되면 하느님 혼자 일방적으로 하시도록 내버려 두는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함께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온 인류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며 서로간에는 형제자매가 됩니다.
우선적으로 할 일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하느님 중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응답의 노력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습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진인사대천명의 정신으로
분투의 노력을 다하여 겸손히 협조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함과 더불어, 잘못의 용서를 청함과 더불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청원과 더불어, 우리 친히 일용한 양식을 얻기 위해, 유혹과 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잘못한 형제들의 용서를 위해, 선의의 노력을 다하는 불퇴전의 ‘주님의 전사’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맙게도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시편 화답송 후렴중 '의인들'을 '이 나라'로 바꿔 인용함으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하느님은 이 나라를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시편34,18ㄴ). 아멘.
3/12(수) [(자)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회개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고,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은 니느웨 백성들처럼 우리들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했던 요나처럼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는 너그럽고 자비롭도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조재형 신부)
2. 니네베 사람들의 집단적 회개 사건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또 다른 잘 나가는 우리들의 대도시를 향해서도 강력히 회개를 촉구하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돈과 명예, 소비주의와 향락주의에 물든 거대 도시민들의 집단적인 회개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루카 11,29)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알고 계신데 왜 필요없이 기도하는가? 의문 제기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하느님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쉬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기도할 수록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아 알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기도중의 기도가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수철 신부)
3/12(수) [(자)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루카 11,29)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12일(수) 6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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