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3월 20일 목요일[(자) 사순 제2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하느님,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가 걸어온 길 살펴보소서. 저의 길 굽었는지 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본기도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니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시어
굳은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환호송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저희가 이 제사로 사순 시기를 거룩히 지내게 하시고
겉으로 지키는 재계로 마음속 깊이 회개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거룩한 제사의 힘으로 저희가 끊임없이 선행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는 종들을 굽어보시어
주님의 힘으로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본당 사제로 지내면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음식을 직접 만드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지만, 교우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음식 담은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해서 드리는 걸로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끔 주류를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미사 때 목소리가 조금 갈라지면 생강차를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세탁소 하시는 분은 언제든지 옷을 가져오면 드라이클리닝을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어쩌면 제게 딱 맞는 노래 같습니다. 신문사에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과분한 사랑입니다. 사제를 위하는 마음은 한국 공동체가 각별한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는 박해의 시간을 사제와 교우들이 함께 견디어냈습니다. 교우들은 사제들을 모시고 공소로 다녔고, 공소에서는 사제들을 위해서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사제가 다른 공소로 이동할 때면, 교우들이 모두 문밖으로 나와서 눈물로 이별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교우를 위해서 기꺼이 순교의 영광을 받아들였던 사제들이 뿌린 씨앗이 열매 맺고 있습니다.
고령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교황님은 관절이 나빠지셔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폐렴이 있어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5분의 교황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했던 요한 23세 교황님. 이스라엘을 방문하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했던 바오로 6세 교황님. 한국을 2번이나 방문하셨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전통과 교리를 지키려고 하셨던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4분의 교황님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로 천상에서 빛나는 신앙의 별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해서 저는 3가지 아름다운 기억이 있습니다. 방명록입니다. 2014년 교황님은 124위 복자 시복을 위해서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교황님은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는데 아주 작은 글씨로 구석에다 적었습니다. 교황님의 겸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방입니다. 교황님의 가방은 30년은 넘어 보였습니다. 낡은 가방에서 교황님의 검소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입니다. 교황님은 본인이 타실 자동차를 ‘쏘울’로 정했습니다. 소형차를 선택하신 교황님에게서 소박함을 보았습니다. 교황님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아서 푸른 열매를 맺고, 하는 일마다 잘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것을 따르고,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과 멀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복음은 신앙인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외로운 이들, 굶주린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필요한 요소이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 형제들의 발을 씻겨 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함께 할 때,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구원받을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다 채우는 것입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6,19-31
돈은 돈다고 해서 돈입니다!
부(富)는 사실 좋은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재물이 있어야 인간적인 품위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궁핍한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 그리고 건전한 방법으로 축척한 재물은 주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전한 재물로 인생을 즐기는 것도 참 좋은 것입니다.
내가 매일 땀 흘려 모든 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하고 삶을 만끽하는 것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바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재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입니다.
돈이면 다, 돈이 최고라며 돈에 모든 것을 거는 그릇된 신조입니다.
재물을 주님이나 신앙보다 더 위쪽에 두는 황금만능주의를 질타하시는 것입니다.
돈 좀 있다고 해서 없는 사람 업신여기는 부자들, 가까운 동료 인간들이 저리도 경제적 어려움 앞에
저리도 힘겨워하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하는 부자들, 가난한 이웃들을 향한 측은지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부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는 강력합니다.
“애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 25-26)
주님께서 오늘 부자들에게 바라시는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 다리 하나를 놓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세상과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을 갈라놓은
구렁 그 위에 다리는 하나 놓은 일입니다.
사랑의 다리, 관심의 다리, 나눔의 다리, 측은지심의 다리...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겼는데 천국에서 주님 품에 안겨 호강을 하고 있는 라자로입니다.
반대로 주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았다고 확신했던 부자는 지옥 불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영원불변의 진리를 떠올립니다.
주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방식과 인간의 방식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말씀을 듣고 걱정하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어느 정도 선이라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부를 축척하고 계신 분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지탄받고 저승에서 영원한 고통을 겪을 부자는 조금도 나눌 줄 모르는 인색한 부자였습니다.
지척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료 인간을 향한 자비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향한 갑질과 횡포, 고성과 폭력이 일상인 분들, 지금이라도 지난 부끄러운 삶을
성찰하고 회심하며, 새 삶을 시작할 때, 늦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도 축복하실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에서 옵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극단적인 두 인물의 대조된 모습을 통해 불신과 재물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로 초대합니다.
이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루카 16,20)
부자는 가련한 라자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자신과 라자로 사이에 골짜기를 파놓고 분리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이승에서 파놓고 건너가지 않은 그 분리의 골짜기는 저승에서도 그가 건너갈 수 없는 분리의 골짜기가 되고 맙니다.
사실 이 부자는 특별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고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인색했습니다.
곧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대문 앞에 누워있는 가난한 라자로를 무시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할 바를 다한 것이 아니라, 선행과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곧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야고 4,17)
다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곧 죄’임을 말해줍니다.
그가 심판받은 것은 그가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하지 않은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어야 하고, 마시되 자신의 혀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자비를 입어 부자가 되었으니,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죽어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 곧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6,24)라는 간청은 ‘제가 자비를 베풀게 해주십시오.’ 라는 간청으로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부자가 대문 앞에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로 누워있어도 못 본 것은 자신의 호사스러움과 즐거움, 탐욕과 인색에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형제들 사이에, 또 가난한 이들과의 사이에, 냉대와 무시와 무관심의 골짜기를 파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곧 저승에서의 골짜기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라자로가 구원을 입은 것이 그의 가난하고 고통 받은 삶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입은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의 호의와 사랑을 입고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그렇습니다.
라자로가 은총을 입은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처지가 뒤바뀐 부자는 자기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루카 16,29)
부자는 이승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제들의 회개를 위해서 라자로를 보내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승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덧붙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31)
사실 우리가 당신을 믿지 못함은 기적을 보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거나 체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듣고 보고 체험하고도 받아들이지를 않는 완고함 때문일 것입니다.
곧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에서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되다.”
(루카 11,28)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31)
주님!
당신을 믿지 못함은 보지 못해서 아니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를 않은 까닭입니다.
기적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신비를 체험하고도 체험하지 못함은 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완고함과 제 자신을 내려놓게 하소서!
자애심을 내려놓고, 당신이 주님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19.수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2사무7,4-5ㄴ.12-14ㄱ.16 로마4,14.16-18.22 마태1,16-21.24ㄱ
참 좋은 배경의 사람, 성 요셉
“기도, 자비, 믿음”
“보라,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길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다.”(루카12,42)
입당송 말씀이 그대로 성 요셉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
요셉수도원의 참 좋은 배경인 불암산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산처럼' 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마치 성가정의 참 좋은 배경인 성 요셉을 연상케하는 불암산입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는 제 소망이 담긴 시입니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산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는다
있음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처럼!”<2000.11.17.>
또 하나 생각나는 불암산 시입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2005.3. >
때로 큰 믿음, 깊은 겸손, 고요한 마음의 성 요셉을 연상케 하는 불암산입니다.
이런 산같은 어른이, 성가정의 참 좋은 배경이 바로 성 요셉이요, 이런 든든한 배경의 어른이 되어
노년인생을 살고 싶음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좋은 경각심을 줍니다.
“신뢰는 십년에 걸쳐 쌓이고, 하루만에 무너진다. 명성을 드높이는 것은 많은 사람이지만
몰락시키는 것은 단 한 사람이다.”<다산>
“명문가가 되기는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몰락하기는 털을 태우는 것처럼 쉽다.”<유씨가훈>
쌓기는 평생이지만 무너지기는 순간입니다.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매사 신중하고 조심하고 겸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아마도 성 요셉의 평생 삶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늘 경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제 형님이 준 “정의, 효도, 우애”라는 가훈대로 화목하게 살아가는 삼형제의 조카들도 생각납니다.
오늘 참 좋은 배경의 성 요셉의 덕을 세 측면에 걸쳐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성 요셉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큰 산같은 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을 연상케 하는 성요셉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희망입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끝까지 주님을 믿었습니다.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한결같이 살아간 기도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침묵의 사람이자 경청의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온통 성 요셉의 침묵과 경청의 분위기입니다.
깊은 기도중 꿈에 나타난 주님의 천사입니다.
주님의 성 요셉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주님은 당신 천사를 통해 속내의 비밀을 다 밝히십니다.
아마도 성 요셉은 평생 이 말씀을 명심하여 마리아를 보호하고 예수님을 키우는데 전심전력을 다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늘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둘째, 성 요셉은 “자비의 사람”이었습니다.
자비할 때 깊은 산같은 사람이 됩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바치는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더불어
자비한 사람이 됩니다.
자비와 함께 가는 삶의 깊이입니다.
자비하기가 생명의 땅을, 생명을 바다를 닮은 성 요셉입니다.
며칠전 산책중 써놓은 글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뿌리 내린
생명의 땅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품에 안은
생명의 바다
같은
하느님이
하느님 자비가 되고 싶다”<2025.3.15.>
요셉의 하느님 같은 자비심은 약혼자 마리아가 혼전에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의 지혜로운 처신에서 잘 드러납니다.
자신보다는 마리아의 안위를 배려한 자비의 사람, 존엄한 품위의 의로운 사람, 성 요셉이요
다음 대목이 생생한 증거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셋째, 성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내적고요는 믿음의 반영입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아, 참 크고 깊고 고요한,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성 요셉입니다.
역시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에 따라 살았던 성요셉입니다.
참으로 기도와 함께가는 자비의 삶, 믿음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흡사 성 요셉의 참 좋은 선물인 태몽같습니다. 예전엔 좋은 태몽도 많았는데 요즘은 태몽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성 요셉의 지체없는 순종이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물론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입니다.
요셉의 순종의 믿음에 하느님의 기쁨과 고마움도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다음 사무엘 하권의 말씀은 성 요셉과 예수님은 물론 믿음 좋은 우리를 통해 실현된 축복처럼 들립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믿음은 순종의 삶을 통해 검증되고 입증됩니다.
크고 작은 순종이 일상화될 때 마지막 순종의 죽음도 반가이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 순종의 여정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공동체의 참 좋은 배경인 기도의 사람, 자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또 주님의 착하고 성실한 종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 아멘.

3/20(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조재형 신부)
2.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겼는데 천국에서 주님 품에 안겨 호강을 하고 있는 라자로입니다.
반대로 주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았다고 확신했던 부자는 지옥 불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영원불변의 진리를 떠올립니다.
주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방식과 인간의 방식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31)
주님!
당신을 믿지 못함은 보지 못해서 아니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를 않은 까닭입니다.
기적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신비를 체험하고도 체험하지 못함은 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완고함과 제 자신을 내려놓게 하소서!
자애심을 내려놓고, 당신이 주님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믿음은 순종의 삶을 통해 검증되고 입증됩니다.
크고 작은 순종이 일상화될 때 마지막 순종의 죽음도 반가이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 순종의 여정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공동체의 참 좋은 배경인 기도의 사람, 자비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어, 또 주님의 착하고 성실한 종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 아멘.(이수철 신부)
3/20(목)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31)
주님!
당신을 믿지 못함은 보지 못해서 아니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지를 않은 까닭입니다.
기적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신비를 체험하고도 체험하지 못함은 마음이 완고한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완고함과 제 자신을 내려놓게 하소서!
자애심을 내려놓고, 당신이 주님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20일(목) 10시3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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