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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3월 26일 수요일[(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3월 26일 수요일[(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19(118),133 참조
주님 말씀대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저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본기도

주님,
저희가 이 사순 시기에 절제와 선행을 실천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언제나 한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4,1.5-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5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6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7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8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9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47(146─147),12-13.15-16.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주님은 흰 눈을 양털처럼 내리시고, 서리를 재처럼 뿌리신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복음 환호송

요한 6,63.68 참조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기도와 제물을 받으시고
이 성사를 거행하는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음식으로 길러 주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시어
약속하신 천상 은혜를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뜻을 백성들이 따르게 하시어
하느님의 가르침에 맞는 것을 실천하고
넘치는 행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저는 뭘 배울 때, 어깨너머로 배우곤 했습니다. 스키도 강습을 한 번도 받지 않고 남들이 타는 걸 보고 따라 했습니다. 많이 넘어지면서 나중에는 곧잘 탈 수 있었지만, 상급자 코스에서는 탈 수 없었습니다. 기본기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테니스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을 주고받았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정도는 되었지만, 정식으로 게임을 할 수준은 되지 못했습니다. 당구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정도는 되었지만, 기본기가 약해서 실수가 많은 편입니다. 정식으로 배워서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있습니다. ‘스킨 스쿠버입니다. 물속에서 하는 운동이고, 자칫 잘못하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기에 이론과 실습을 정확하게 배웠습니다. 지금도 스킨 스쿠버는 설명할 수도 있고, 바다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저와 달랐습니다. 스키도, 테니스도, 스킨 스쿠버도 강습을 먼저 받았고, 늘 기본기를 먼저 배웠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한 신부님은 저와는 다른 차원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로니아로 유배를 갔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의 이유를 성찰하였습니다. 성전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군대가 강한 것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하느님의 계명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정리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규정과 법규를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린다고 결실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는 밭에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어야 합니다. 가뭄에는 물을 주고, 장마에는 물길을 내 주어야 합니다. 한문으로 쌀은 입니다. 이는 농부가 88번의 정성을 들여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율법입니다. 오늘 독서는 율법과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지 않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축복의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살인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남의 재물을 탐하지 않고, 남의 아내를 탐하지 않는 사람은 축복의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기가 없는 사람은 엉뚱한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성공, 명예, 권력입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끌어내리고, 뒤에 오는 사람은 밀쳐내면서 성공이라는 바벨탑에 오르려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라는 바벨탑에 오르려 합니다. 위선과 가식으로 치장된 명예라는 바벨탑에 오르려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우리를 축복의 땅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우리를 무한경쟁의 싸움터로 내몰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은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푸른 지구는 병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기도, 희생, 나눔, 봉사를 충실하게 실천하여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오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마태 5,17-19

 

힘든 일을 기쁘게 할 때, 그 일이 곧 복음의 길입니다!

 

사순시기를 맞아 특강을 다니면서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주제요 화두인 회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회개라고 하면 대체로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지난 잘못에 대해 크게 가슴 치는 것, 하느님과 이웃에게 소홀했음을 뉘우치는 것,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서 새삶을 모색하는 것...

 

그런데 또 다른 스타일의 회개가 있습니다. 참된 하느님의 얼굴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왜곡되고 그릇된 하느님 상을 깨트리는 일입니다.

 

저 역시 돌아보니 지니고 있었던 하느님 상이 많이도 엉뚱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 진노하시고 벌하시는 분, 너무 크신 분이어서 이토록 작고 부족한 나와는

상대도 하지 않으시는 분.

 

그런데 오늘 신명기 저자가 소개하는 하느님의 모습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길이 너무 힘겹고 혹독할 때면,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면서,

즉시 응답하시는 하느님이시랍니다.

 

루카 복음 사가가 소개하는 하느님의 모습도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이 땅에 육화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분, 대단한 분이셨지만,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일관되게 작고 겸손한 모습을 유지하셨습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께서는 큰 사람들, 높은 사람, 고관대작들과 어울리지 않으셨고,

언제나 작고 가난한 사람, 세리, 죄인들과 기쁘게 어울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죄인들과는 완전 동떨어진 엄청 대단하고 성스러운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조차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재미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 역시 특별하고 대단한 행위를 통해서라기보다

일상의 작은 계명에 충실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요즘 마음이 하도 울적하고 거시기해서 시간 될 때 마다 피정 센터 구석 구석 봄맞이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돌아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가 생각해도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배수로 낙엽 치우기, 병들어 죽은 나무들 잘라내기, 매실나무 전지 작업, 쓰레기 분리수거...

머릿 속이 복잡할 때는 역시 단순 작업이 최고입니다.

일에 온전히 몰입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니, 기분이 많이 진정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별것 아닌 일이 없습니다.

특히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다들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들, 짜증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얼굴로 할 때,

그 일이 곧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요, 복음적인 일,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사순 제3주간 수요일

 

<구약의 율법이 ‘복음’ 안에서 완성(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과 다른 점을 하나를 들라면, 아마도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 하나를 들라면,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마태 5,17) 

이는 복음을 예표하고 있던 구약의 율법이 ‘복음’ 안에서 완성(성취)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온몸으로 율법과 예언을 실행하셨고, 결정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고 하시면서 모든 것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실행하는 이가 복됨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마태 5,19)

이는 계명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알고 있는 것을 말로 선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킴’으로써 계명을 ‘실행’하고, 그 실행으로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 그레고리우스는 말합니다. 
“설교자에게는 법이 하나 있는데, 설교하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법이다.”

그리고 유명한 설교가였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가르치는 바를 행동으로 파괴시킨다면, 사람이 법을 안다고 자랑하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지켜질 때라야 비로소 그 ‘행위 안에서 실현’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행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사랑의 원의’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사랑하기를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1요한 2,5)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요한 14,21)

 

<오늘의 말 · 샘 기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

(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행동으로 지키고 가르치며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닌 행실로 사랑하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며,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3.25.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이사7,10-14;8,10ㄷ 히브10,4-10 루카1,26-38

 

                                                참 좋은 선물 인생을 삽시다

                                                        “정주, 경청, 순종”

 

어제 처음 파스카의 선물같은 봄꽃 제비꽃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예전 써놨던 애송시가 생각나 나눕니다.

오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맞이하여 마리아 성모님께 드리는 봉헌 축시입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정주의 꽃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고 반갑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없다”<2001.4.18.>

 

새삼 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 선물인생이 되면 참 좋겠는데 본의 아니게 짐이 되는 인생도 얼마나 많은지요?

삶의 현실은 선물인생에서 점차 짐으로 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은 선물인생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선물인생이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선물인생으로 살 수 있을까요? 

 

성모님의 삶이 그 모범입니다. 성모님처럼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성모님이 얼마나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참으로 눈밝으시고 겸손하신 하느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리아 성모님을 방문하십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들어서자 마자 한 인사말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요즘 이 말씀은 제가 고백성사 보속으로 말씀처방전에 가장 많이 써드리는 성구입니다.

실제 실명을 넣어 써드리고 꼭 읽어보도록 합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고무적인 말씀인지요!

 

이 말씀에 몹시 놀란 마리아는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마리아 성모님께서 얼마나 깊은 내적 관상의 삶을 살고 있는지 하느님께서도 반하신 마리아입니다.

이어지는 천사의 말씀도 고무적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하느님의 심중을 그대로 반영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격찬입니다.

우리는 정말 고귀한 품위의 참사람 하나 바로 마리아를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에 주신 참 좋은 선물, 참 좋은 분, 마리아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마리아 성모님처럼 살 수 있을지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정주의 삶입니다.

나자렛 고을에서 평생 정주의 삶을 사셨던 마리아 성모님, 그대로 우리 정주의 베네딕도회

수도자를 닮았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늘 거기 그 자리에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사는 정주의 삶입니다.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몫을 다하며 늘 새롭게 시작하는 정주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삶이 늘 새로운 정주의 삶을 살게 합니다.

나자렛 시골 마을에서 마리아 성모님은 분명 이렇게 사셨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정주의 삶에 충실하면 언젠가 그 때가 옵니다.

겸손하시고 눈밝으신 주님은 때가 되자 당신 천사를 통해 마리아를 방문하시어 격찬의 인사말을

쏟아 놓으십니다.

마리아 성모님뿐 아니라 한결같은 정주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둘째, 경청의 삶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입니다.

침묵의 사랑, 침묵의 지혜입니다.

정주의 삶과 함께 가는 침묵의 삶입니다.

말없는 침묵이 아니라 주위에 활짝 열려 있는 깨어 있는 사랑의 침묵은 관상적 삶의 기초가 됩니다.

베네딕도 규칙에 맨먼저 나오는 말씀도 “들어라, 아들아!”이며 구약의 예언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도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귀를 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집중하여 듣는 경청입니다.

새삼 경청도 훈련이요 습관임을 깨닫습니다.

천사와의 문답을 통해 마리아가 얼마나 주님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경청의 사람인지 단박 들어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도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중요한 말씀입니다만 마리아의 응답은 참 신중합니다.

얼마나 깊은 경청의 사람인지 잘 드러납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묻자 천사는 거침없이 하느님의 속내를 다 털어놓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마리아를 신뢰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셋째, 순종의 삶입니다.

믿음의 정주, 믿음의 경청, 믿음의 순종입니다.

정주의 훈련, 경청의 훈련, 순종의 훈련 그리고 습관화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순종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마리아 성모님의 즉각적인 순종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온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된 오늘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일방적으로. 강제적으로 구원역사를 펼치지 못합니다.

인간의 자발적 응답을,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에 하느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고 고마워하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성모님을 한결같이 끝까지 아드님과 함께 하시면서 순종의 여정에, 비움의 여정에 시종여일 충실하셨습니다.

모전자전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을 그대로 닮은 제2독서 히브리서에서 아드님 예수님의 거듭된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마리아와 예수님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의 공통적 삶의 의미는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

이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니에서 감동적 기도와 마지막 임종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요한복음의 십자가상에서 고백의 임종어입니다.

“다 이루었다!”

 

마리아 성모님의 순종의 응답이 있었기에 비로소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다음 말씀이 실현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과 하나되어 또 하나의 임마누엘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총이 우리 모두 정주의 삶, 경청의 삶, 순종의 삶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3/26(수)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오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조재형 신부)

 

2. 이 세상에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별것 아닌 일이 없습니다.

특히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다들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들, 짜증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얼굴로 할 때,

그 일이 곧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요, 복음적인 일,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

(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행동으로 지키고 가르치며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닌 행실로 사랑하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며,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예수님의 겟세마니에서 감동적 기도와 마지막 임종어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이수철 신부)

 

3/26(수)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

(마태 5,19)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행동으로 지키고 가르치며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닌 행실로 사랑하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며,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3월26일(수) 7시5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