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4월 3일 목요일[(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본기도
주님의 종인 저희가 참회로 용서를 받고 착한 생활로 거룩하게 되어
주님의 계명을 언제나 성실히 따르며
깨끗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백성들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 이집트에서 위대한 일을 하신 분,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 당신이 뽑은 사람 모세가 아니라면, 그들을 없애 버리겠다 생각하셨네. 모세는 분노하시는 그분 앞을 막아서서, 파멸의 진노를 돌리려 하였네. ◎
복음 환호송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사로 봉헌하는 예물을 굽어보시어
나약한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이 성사의 힘으로 주님의 종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저희를 모든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시어
구원의 영약을 가득히 받고 진리의 빛을 따라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보살피고 이끄시며 구원하시니
이 백성에게 강복하시어
원수에게서 풀려나 죄에서 해방되고
언제나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지난 3월 8일 토요일입니다. 자매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응급실에 있는데, 병자성사를 청한다는 전화였습니다. 구역장 회의가 있었지만, 병자성사가 더 급하기에 총구역장에게 먼저 다녀온다고 이야기하고 응급실로 가기로 했습니다. 병원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다시 자매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선종하였다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도 보고, 가족들을 만나려고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실에는 고인의 가족들이 와 있었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고인을 위해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고인께서는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자매님은 저와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자매님의 전화가 있었기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고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누군가 싸우려고 하면 말려야 하고, 반대로 서로 협상하려고 하면 잘 연결해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말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중요한 정신과도 연결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자, 하느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느님,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간청하며, 백성을 대신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싸움을 말리는"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분노를 모세가 중재하며 막아낸 것입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누군가 갈등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모세처럼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라고 외쳤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엄격하고 강한 사람이지만, 사실 그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너희는 끝났다!"라고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을 닦고,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하라!"라고 외쳤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느님과 백성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누군가에게 새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절망할 때,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중재자의 역할입니다. 역사 속에도 중요한 중재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헨리 키신저입니다. 그가 활약했던 시대를 보면,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위협 속에서 서로 으르렁거렸고, 중국과 미국은 철저한 적대 관계였습니다. 그때 키신저가 한 역할이 무엇이었을까요?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대화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를 핑퐁 외교라고 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긴장을 완화했습니다. 이를 데탕트 정책이라고 합니다. 중동에서 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평화 협정을 맺도록 도왔습니다. 정치는 물론, 우리 신앙과 삶에서도 평화를 이루는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많은 싸움과 갈등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싸우고, 친구 사이에서도 오해가 생기고, 직장에서도 경쟁과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 간에도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싸움을 말리는 사람", 그리고 "화해를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싸움의 불길을 더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모세처럼 중재하고, 요한처럼 길을 닦고, 키신저처럼 대화의 장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분쟁과 갈등을 십자가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2025,4,03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주님,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드디어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내란 사태가 종식될 순간이 다가옵니다.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돌발행동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내란성 증후군으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내란성 위염, 내란성 두통, 내란성 불안증,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수면 부족!
엊그제 안국동 시국미사 때 자주 희자되던 표현이 “잠 좀 자자!”였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어떤 집회보다 평화롭고 성숙한, 그러나 시대를 역행하는 반국가, 반민주 세력을 향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잘 보여준 축제 한마당이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운집한 수많은 사제, 수도자, 교우들은 한목소리로 백척간두에 놓인 우리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오셨던지,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제병이 많이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으니, 참가자 모두가 입을 모아 헌법재판소를 향해 재판관 한분 한분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정말이지 간절히 그분들께 부탁드렸습니다.
‘뭘 그리 망설이냐고? 뭐가 그리 두렵냐고? 그가 저지른 위헌·위법적 증거들은 이미 차고 넘치는데,
초등학생들조차 정답을 알고 있는데, 대체 왜 이리도 뜸을 들이냐고?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시라고! 국민의 명령이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선고 날자가 발표되고 나니 시민들 얼굴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저 같은 소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는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상식이 통용되는 나라, 나랏일은 국민이 뽑은 심부름꾼들이 그럭저럭 알아서 하는 나라,
그래서 큰 걱정 없이 발 뻗고 잠들 수 있는 나라...
집회 현장에서 크게 느낀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 우리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이 갈등은 진영 간의 갈등이나
지역 간의 갈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상식과 몰상식의 갈등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대립입니다.
집단 지성과 막무가내·파렴치 집단 사이의 충돌입니다.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혼란의 시간 안에서 헌법재판관님들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고가 늦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극한 갈등과 대립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한 냉각기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을 해주시리라 백 퍼센트 확신하지만,
최근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많이 겪은 우리이기에 일말의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힘겹게 쌓아 올린 우리나라의 국격이고, 민주주의요,
시민의식인데, 이렇게 초단기간에 와르르 허물어져 내리다니,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선택을 앞둔 재판관님들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두려워하실 것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상식과 양심에 따라, 가장 기본적인 선택만 하시면 됩니다. 성경의 단순한 원칙만 따르셔도 충분합니다.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재판관님들,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뒤에 성숙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서 있습니다.
그 옆에 원칙과 상식, 진리와 정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애국 시민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뒤에는 우리나라와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뒤를 받쳐주고 계십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이제 그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탈출 32, 11-12)

3. 이영근 신부
2025,4,03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우리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 때, 우상숭배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듣고 싶어도 들려주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가 없고,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여주지 않으면 결코 볼 수가 없듯이, 드러내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계시가 있다 치더라도 그에 대한 응답이 없이는 또한 믿음이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증거하십니다. 먼저 알려주고, 계시해주고,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들었고, 예수님 행적의 표징을 보았고, 성경을 연구하였지만, 혹 예수님을 알았을지는 몰라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마음을 열지 않은 까닭일 것입니다.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코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완고함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불신앙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 때, 우상숭배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완고함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을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채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로마 1,21-23) 사실 이러한 우상 숭배를 <예레미아서>(5,7)에서는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으로써 ‘영적 간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제키엘서>(23,27)에서도 야훼 외에 것을 찾는 것은 ‘영적 간음’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정배이신 주님이 아닌 우상을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완고함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따르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이 사순절, 우리 마음 안에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완고함을 버리고, 주님을 위한 마중의 시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5.4.2.사순 제4주간 수요일/ 이사49,8-15 요한5,17-30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
“하(예)닮의 여정”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키시네.”(시편145,13-14)
옛 현자 다산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찾는다 하면서 일상에서의 소홀함을 경계한 말씀입니다.
“제 식구는 챙기지 못하면서 밖에서 큰 뜻을 이룰 수 있는가? 먼저 살림을 마련한 다음 시詩와 예술을 배워라.”
“늘 가난하면서 인의를 말하기를 좋아한다면, 그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하느님을 찾을수록 지극히 현실적이 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형이하학形而下學의 기초위에 형이상학形而上學임을, 수덕修德생활의 기초위에 신비神祕생활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입니다.
하늘 향해 가지들 뻗어나갈수록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나무의 이치와 똑같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 이들은 모름지기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말씀처럼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그대로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하닮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장미주일 복음을 묵상하며 통절히 깨달아 경계삼기위해 집무실 게시판에 써 붙인 고백입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수도원 숙소는 “자비의 집”이라 부릅니다.
“자비의 집,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에 43년 정주했는데도,
복음의 큰 아들처럼 여전히 아버지의 자비를 닮지 못했구나! 36년전 3월5일 장미주일 강론 읽으며
통절히 깨닫는 사실이다!”
“내 판단의 잣대는 무조건 루가15장을 소재로한 렘브란트의 그림의 ‘자비로운 아버지의 사랑’이다.”
하느님이 자비하신 아버지이심은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주님의 기도중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란 고백이 나올 때 마다 고마움에 목이 멘다는
어느 동방수도승의 일화도, 수도원에서 어둡게 우울하게 지내다가 어느 순간 ‘하느님은
아버지가 아닌가!’하는
전광석화같은 깨달음에 이어 늘 기쁘게 살았다는 또 하나 동방 수도승의 일화도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며 친히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으며 자비하신
아버지처럼그대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삶의 기준은 언제나 자비하신 아버지였습니다.
예수님의 확신에 넘치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 영생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밝히신 자비하신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환히 밝혀줍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삶의 멘토가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사순시기 지금이 바로 은혜의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합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나 귀향길에 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합니다.
사랑의 시인이자 신비가이자 예언자인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영감에 넘치는 말씀입니다.
“갇힌 이들에게는 ‘나와라.’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어라.’ 하고 말한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풀을 뜯고 민둥산마다 그들을 위한 초원이 있으리라.
그들은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열풍도 태양도 그를 해치지 못하리라.
그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분께서 그들을 이끄시며, 샘터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이사야의 외침도 단숨에 읽힙니다. 바로 우리의 자비하신 아버지는 우리를 끊임없이 위로하시고
가엾이 여기시는 분입니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
즉시 당신 백성인 우리의 착오를 바로 잡으시고 당신을 제대로 알 것을 촉구하는 아버지는
흡사 사랑에 넘치는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하고 말한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자비하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잊으면 잊었지 주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며,
우리가 주님을 떠났지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확약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길은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하닮의 여정이 있을 뿐입니다.
하닮의 여정은 그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이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거울입니다. 아버지는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활동하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하느님은 그분을 통해서 직접 말씀하시고 행동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처럼 생명을 주는 분이며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모두 안에서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께 가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에게,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루하루 하(예)닮의 여정중인 우리에게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시편145,17-18). 아멘.

4/3(목)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분쟁과 갈등을 십자가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조재형 신부)
2.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이제 그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탈출 32, 11-12)
(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그런데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하고 말한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자비하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수철 신부)
4/3(목)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요한 5,36)
주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 맡기신 일을 하게 하소서.
계산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하게 하시고, 의무에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게 하소서.
바라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게 하시고,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소서.
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수하게 하시고,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4월3일(목) 7시5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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