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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인

최인호 에세이 <인연>

최인호 에세이 < 인연 >

쉽게 읽혀지고, 섬세한 도시인의 삶의 묘사에서 공감이 잘 되었다. 이 책 <인연>을 읽으며 4~5번 울었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외로운 그 눈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저녁이 오면.....사람은 늙어가면 추억의 속도도 부푼다는 말이 있다.

 

- 풍경을 새로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늘 관계나 인연에 대해 매혹과 관심을 가져왔지만...

 

 

- 그들은 자신의 조그만 거짓말, 조그만 욕망을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창피해하는 환자들이다. 나는 그래서 사제들이 좋다.

 

 

- 문학청년 시절 나는 김유정의 '봄봄'이라든가 '동백꽃'을 읽으며 전율했었다. 그의 소설은 내가 추구하는 도시적인 감수성과 도회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농촌소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은 멋을 부리려는 작위성이 전혀 없었고, 천연스러운 익살과 천진이 흘러 넘치고 있었다.

 

 

- 아버지가 내게 부탁했던건 안마만이 아니었다. 저녁에 석간신문이 오면 아버지는 연재소설을 내게 읽어달라고 부탁 하곤 하셨다. 어머니의 그 체온과 부드러운 감촉이 나비를 만지면 손에 묻어나는 분가루처럼 내 손에 남아있다.

 

 

- 누나는 어디로 갔는가. 그런 슬픔이 밀려오면... 나는 아직도 수많은 인연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의 구속이 좋은가 보다고...

 

 

- 목련의 묘사~ '곱게 빨아 다린 버선, 흰 모시적삼 같은 꽃, 고급 창호지를 겹겹히 붙인듯한 꽃' 으로 표현

- 완두 꽃~ 수수한 수녀제복을 입은 듯한 꽃, 찔레꽃~ 제풀에 파르르 신경질을 부리다 떨어진 꽃 으로 표현....

- 수줍고 초라한 딸기꽃이 시들면 붉은 딸기를 잉태한다고 감탄했다

 

~ 목련 ~

그 지루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되어 정원에 쌓인 춘설이 지저분하고 걸레처럼 더러워지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녹아버렸을 즈음의 어느 날, 나뭇가지에서 흰 모시적삼 같은 꽃이 피었다. 질 좋은 창호지를 겹겹이 바른 것 같은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나는 아내에게 저 꽃이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아내는 그것도 모르냐고 깔깔 웃더니 저 꽃이 바로 흰목련꽃이라고 내게 핀잔을 주었다. 이른 봄, 겨우내 닫혀있던 거실의 창문을 열어 젖히면 흐드러진 봄밤의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곱게 빨아 다려놓은 흰 버선같이 정갈한 목련꽃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을 볼 때 마다 요기가 어린 것 같아서 나는 무심코 "귀신의 꽃이야"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 모과 ~

실하게 열린 모과들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탄탄하게 익고 정결하게 자란 열매들의 빛깔은 절정의 노란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그뿐이랴. 그 냄새야 말로 일품이었다. 인공적인 향수냄새, 화장품냄새, 자극적이고 강렬한 냄새에 익숙해져 있는 내 오염된 코에도 그 냄새는 그야말로 자연의 향기 그대로였다. 그 냄새는 뽐내지 않고 겸손하고 수수했으며 무엇보다 은은했다.   ~    ~

모과나무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 가까이 갔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보지 않으면 그것은 무無 그 자체 였다. 욕망에 눈이 어두웠으므로 나무를 보았으되 나무로 보지 앓고 하나의 형상으로만 보았다. 

 

~ 딸기꽃은 수줍고 초라하나 시들면 붉은 딸기를 잉태하고, 완두콩꽃이 수수한 수녀들의 제복과도 같으나 결국엔 완두콩을 선물로 주지 않는가!

내가, 네가, 우리집 가족들이, 내 이웃들이, 모든 사람들이 장미를 닮으려 하지 아니하고 하잖은 완두콩 꽃을 닮을 수 있다면....

 

~ 성미가 몹시 급해 제풀에 파르르 신경질을 부리다 떨어져 버린 찔레꽃이 한창일 때는 벌떼들도 날아와 고맙게도 꽃가루를 나르고...

 

- 1384년에 태어나 1481년에 죽은 일본의 선승 '이뀨'는 일본 황실의 피를 받은 황자皇子였지만 왕비의 질투로 궁에서 물러나 20세에 승려가 되었다. 26세에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던 그는 평생 일본 최고의 선시들을 150여편 써 남겼는데 그의 '시' 중에 다음과 같은 절창이 있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그 속엔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녹두꽃과 열매

 

 

찔레꽃

 

 

뱀딸기 열매

 

 

모과나무 꽃

 

 

모과나무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