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고등학교 재학 중에 〈문예〉지에 〈비오는 날〉이 추천되어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등단했다. 초기 이형기의 시 세계는 자연을 응시하는 가운데 맑고 고운 현대적 서정의 세계를 추구했으며, 자아와 존재의 궁극을 추구하며 조락과 소멸의 운명을 수긍하는 전통 서정의 계보에 속했다.
시집 〈적막강산〉(1963)에서 그는 생의 근원적 고독과 세계의 공허를 일찍부터 깨달은 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펼쳐 보인다.
1970년대 이후에는 투명하고 절제된 서정에서 벗어나 상투성과 모방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움과 시적 방법론의 갱신을 추구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인간 내면을 탐구해가는 경향을 띠게 되었고 사물을 관념화하여 우회적으로 서정의 세계를 드러내는 시를 썼다.
뇌졸중으로 투병 중이던 1998년 〈절벽〉에서는 소멸의 운명과 맞서 있는 단독자의 고독과 결의를 노래했다. 여기서 그는 소멸이라는 존재의 소실점과 생명의 궁극성에 대한 질문에, 삶이란 허무와 충만이라는 양가적 시간이 지속적으로 순환되는 것임을 강조했다.
평론으로도 주목받은 그는 1963년 이어령과의 문학논쟁에서 평론 표절과 모방문학론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당시의 예술가의 현실참여 논쟁에서는 예술가의 개성적 자유를 옹호하고 순수문학의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을 강조했으며 이 같은 문학세계는 이후 줄곧 견지되었다.
시집에 〈적막강산〉·〈돌베개의 시〉·〈풍선심장〉·〈그해 겨울의 눈〉·〈심야의 일기예보〉·〈보물섬의 지도〉·〈죽지않는 도시〉·〈절벽〉·〈꿈꾸는 한발〉·〈존재하지 않는 나무〉 등이 있고, 평론집에 〈시와 언어〉·〈감성의 논리〉·〈한국문학의 반성〉·〈시와 언어〉·〈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수필집에 〈자하산의 청노루〉·〈서서 흐르는 강물〉·〈바람으로 만든 조약돌〉 등 저서 20여 권이 있다.
한국문학가협회상,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윤동주문학상, 공초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