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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감사일기

빠다킹 신부의 우리들의 묵상(2012.5.13)

< 빠다킹 신부의 우리들의 묵상 >

  

작년(2011년) 11월 블로그 관리를 하게 되면서, 하나씩 카테고리가 늘어났다.  기본으로 하고자했던  풀꽃/나무, 조류/곤충,  탐방한 곳의 사진 외에 카테고리가 증가하여 유머, 영화, 모임, 성남문화원/서현문화의 집 등 내가 움직여서 활동하는 생활영역의 사진과 상황,  생각하고 알아가는 나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벤트성으로 가끔 움직이고 활동했던 영역의 내용을 그때그때 마다 사진을 올리고 기록했다면, 요즘은 매일 매일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여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미사/오늘의 묵상을 들 수 있다.  블로그 관리를 하기 전 부터 매일미사책을 성당에서 구입하여 읽다가 수첩에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긴 있었다.  수첩에 쓰던 것을 블로그에 독수리 타법으로 올리기 시작한 것이 2012년 3월1일 부터이다. 오늘이 5월13일 이니 2달 보름쯤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독수리 타법의 타자치는 속도가 느리므로 꾀가 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매일미사책 내용과 카톨릭인터넷 굿뉴스의 내용이 같음을 알아 5월5일 부터는 내가 하던 방식으로 발췌하여 복사하여 올리는 것으로 진화(?)하였다.

 

그 다음 선정된 항목이 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시(시조, 한시,동시)이다. 이것은 2012년 4월1일 부터 시작했으므로 매일미사/오늘의 묵상을 올리기 시작한지 한달 후 늘어난 카테고리이다. 명퇴 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서현문화의 집- 문학교실 수강을 6개월간 했던 '문학 노녀(?)' 지망생이어서,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를 꼬박꼬박 읽었으므로 이 아이템도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올리게 된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신문을 보고, 독수리 타법으로 치다가 요즘에는 진화하여 인터넷으로 조선일보/ 가슴시(?)를 찾아 발췌복사하여 올리고, 그 잉여시간 만큼 시를 쓴 작가의 연혁, 문학세계 등을 검색하여 올리는 것으로 나름대로 업그레이드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공부하며 즐겁게 올리고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는 다시 한달쯤 후 4월24일 부터 올렸는데, 우연히 선정된 항목이다. 대학친구 모임에서 아직도 싱글인 순수한 마음을 가진 절친이 고도원의 아침편지 이야기를 하면서 모임에 동석한 친구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하여 모두들 적어주었는데, 헤어진 당일 저녁에 그녀의 접수시키겠다는 이메일 편지가 당도하고, 다음 날부터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메일에 배달 된 케이스이다. 좋은 글이라고 사려되어 휴지통에 버리기 아까워 매일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올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일 올리리라 스스로 결의한 카테고리는 '단상'인데 5월8일 어버이날 신설한 것이다. 무언가 허전하고 스산한 마음이 들어, 혹은 문학노녀(?)의 욕망 때문인지, 아무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만든 것이다. 예전에 사주명리학을 독학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내 사주의 시주에 화개살이 있다. 화개살이란 '묘'에 해당하는 살로 육신은 죽었으나 정신은 아직 살아남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그런 살이라고 한다. 즉 종교적,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는 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주팔자 내 본성을 찾으려 하는 몸부림 같기도 하다.

 

오늘 아침 카톨릭인터넷 굿뉴스를 검색하다가 '우리들의 묵상'을 보게 되었다. 5월13일 등록된 것을 열어보니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미태오 신부' 님의 글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면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접속하지요. 첫 시작 페이지는 뉴스입니다. 사회, 경제, 스포츠, 심지어 연예 소식까지 접하면서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만 보고 있고, 또 남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계속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의 이야기만 보고 남의 이야기만 나누다보니 내가 주연이 되는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단상' 글을 쓰면서 나의 뒷덜미를 잡아끄는 생각이 "이런 걸 왜 쓰냐?" 혹은 "왜, 유난을 떠느냐?" 아니면 "그렇게 살면 남들이 욕해" 이런 생각이 맴돌고거나 내가 쓴 글 때문에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혹시 돌아올 수 있는 상처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두려워 망설여졌다. 그러다 빠다킹 신부의 '우리들의 묵상'을 보며 용기를 내본다. 남의 이야기만 보고 남의 이야기만 나누다보니 내가 주연이 되는 사랑을 하지 못하다는 이 말에 용기를 내본다. 

 

- 2012.5.13.(일) -

 

 

회화나무(콩과) 전경

회화나무의 다른 이름은 학자수(學者樹)이고 영어로 scholar tree라고 쓴다. 나무의 가지 뻗은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는 풀이도 있다.

 

회화나무(콩과) 꽃과 잎

회화나무의 다른 이름은 학자수(學者樹)이고 영어로 scholar tree라고 쓴다. 나무의 가지 뻗은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는 풀이도 있다.

 

회화나무(콩과) 꼬투리 열매와 잎

회화나무의 다른 이름은 학자수(學者樹)이고 영어로 scholar tree라고 쓴다. 나무의 가지 뻗은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는 풀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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