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굿뉴스 강론

2012년 6월 5일 화요일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2년 6월 5일 화요일 [(홍)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묵상: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돌려 드리십시오.”

 

보니파시오 성인은 675년 무렵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된 그는 수도회 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성인은 특히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마인츠의 교구장이 된 보니파시오 주교는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세웠다. 성인은 선교 활동에 주력하다가 754년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1874년 비오 9세 교황은 보니파시오 주교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오늘의 말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살아 하느님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제1독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곤란한 질문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그들에게 질문을 되돌리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12-15ㄱ.17-18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오늘의 묵상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강조하던 사람들입니다. 이에 반해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노선이 다른 사람들로서 서로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합세해서 예수님을 찾아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바치지 말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는 곤란한 질문입니다.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이방인 황제에게 굴복하는, 이스라엘의 매국노가 됩니다.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 제국의 법을 거역하는 반역자로 고발당합니다. 이러한 난처한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되돌리십니다. 곧, 그들 스스로 판단해서 황제의 것이면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하심으로써 모든 것이 황제의 것이라고 믿었던 헤로데 당원들의 생각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느님의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드러내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돌려 드리십시오.” 하고 권고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화폐에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지만,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에만 얽매여 산다면 황제에게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임을 잊고 재물에만 빠져 산다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황제에게 무엇을 바치며, 하느님께는 무엇을 바치며 살고 있는지요?

 

 

천주교 양근 성지 순교자 기념성당 십자가의 길 제3처

 



6월 5일 화요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마르코 12,13-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새로운 이름 보니파시오>

 

보니파시오 성인은 8세기 유럽 대륙 복음화에 매진한 대선교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특별히 독일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기에 독일의 사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675년 영국 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Winfrido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베네딕토 수도원 물에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7살 때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부설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14살 되던 해에는 정식으로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당시 그를 지도한 수도자들의 말에 따르면 Winfrido는 탁월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내면의 평화와 온화한 성품을 겸비한 출중한 학생이었답니다.

 

신학과정을 잘 이수한 그는 특별히 라틴어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는데, 그래서 나중에 라틴어 문법 교사가 되어 라틴어로 된 여러 논문과 시(詩)도 지었습니다. 30세 무렵에 사제가 된 그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강한 선교사 성소를 느꼈다고 합니다. 베네딕토 수도원 부설 학교의 교장이자 교수로서, 출중한 설교자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드디어 오랫동안 간직해왔던 선교사로서의 꿈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Winfrido가 41살 되던 716년 몇 명의 동료들로 선교단을 꾸며 프리슬란드(오늘날의 네덜란드) 지방으로 선교를 떠납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놓은 현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지방 세력가들과 관리들의 노골적인 냉대에 시달렸고 그가 계획했던 복음 선포 사업을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의기양양했던 그는 큰 좌절감과 함께 눈물을 머금고 영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 실패로 물러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점검했습니다. 보다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선교 성소를 향한 불씨를 활활 되살렸습니다. 2년간 숨을 고르면서 재정비를 완료한 그는 로마로 가서 그레고리오 2세 교황님을 알현했습니다. 교황님은 선교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는 그를 환한 미소와 부드러운 시선으로 환대했습니다.

 

면담이 끝난 그에게 특별한 선물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독일에서 선교사로서의 활동을 허가하는 교황 특별 공식 서한이었습니다. 동시에 또 다른 선물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새로운 이름, 보니파시오(Bonifacio)였습니다. 마치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울이 바오로로 개명을 하듯이 Winfrido는 보니파시오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듯 든든한 교황님의 후원에 보니파시오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습니다. 이교도들의 그릇된 문화, 비인간적, 비그리스도교적 생활방식과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가면서 보니파시오는 복음 선포에 매진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 실패 때와는 철저하게도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 선포 과정에서 주도면밀하게 잘 조직하고 계획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최대한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의 새로운 선교방식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가장 이교도적인 생활로 유명했던 헤센 지방에 베네딕토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보니파시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곳저곳에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교황님은 보니파시오를 로마로 불러들여 주교로 서품하였으며 후에 독일 전역과 프랑크의 교황대사로 임명하였습니다.


79세 되던 754년 마인츠 대교구의 교구장직을 사임한 보니파시오는 또 다시 이방인들의 옛 관습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회개시키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754년)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준비하던 보니파시오는 평소 악감정을 지니고 있던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피살되었습니다.

순교자 보니파시오의 지칠 줄 모르는 선교 열정을 묵상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정든 고향을 떠나 세상 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하루하루를 축복하시기를...특별히 그들이 매일 직면해야 하는 실패와 좌절, 외로움과 소외감 앞에 주님 친히 위로해 주시기를... 그들이 행하는 모든 복음 선포 사업을 당신 현존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