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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 6월 25일 [(녹)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주방과의 전쟁-강길웅 신부

2012년 6월 25일 [(녹)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말씀의 초대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이스라엘의 사마리아는 멸망하고 만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다른 민족들의 풍속과 임금들이 만든 것들을 따랐기 때문이다(제1독서). 사람에게는 남한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경향이 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7,5-8.13-15ㄱ.18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오늘의 묵상

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랍니다. 자기를 아는 열 명의 사람 중에 일곱 명은 자기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 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남이 자기를 보는 시각과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는 것일까요?
남의 단점과 약점을 바라보기는 쉬워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바라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하는 데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기만과 가식의 가면을 벗으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남에게는 살쾡이 눈을 가졌고, 자기 자신에게는 두더지 같은 눈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아픈 지적의 말이지만 부인할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 눈이 먼 사람이 많습니다. 그 눈먼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니다...^-^


 

주방과의 전쟁
작성자 강헌모(kanghmo7) 쪽지 번 호 73960
작성일 2012-06-25 오전 7:21:30 조회수 5 추천수 1

찬미예수님!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강길웅 신부의 소록에서 온 편지

2 가객여운(佳客如雲)

주방과의 전쟁
내가 1962년도에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발 령을 받았을 때 아버지께서는 한 달 먼저 사범학교 체육교사에서 다시 초등학교 교장으로 나가시게 되었는데 그곳이 충남 당진군 석문면에 있는 삼봉초등하교였다. 그리고 바로 그 학교에 '다난지 도'라는 섬마을 분교가 있는 것을 알고는 나도 그 학교로 지원하 였다. 그래서 같은 학교에서 아버지는 교장으로 계셨고 비록 섬마을 분교이긴 했지만 아들인 나는 평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집안이 어려운 시기라 나는 선생이면서도 소두 엿 말짜리 하숙을 할 수가 없었다. 겨우 쌀 두 말짜리 자취를 하는데 반찬이 라야 마가린 한 갑에 일본 간장 한 병이 전부였다. 그래도 재수가 좋은 날에는 멸치 종류의 잔고기를 약간 얻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그것을 말린 다음에 잘게 부숴서 마가린과 간장 에 섞어 밥을 비벼 먹을 때의 맛이란, 김치가 없어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 이었다. 그때는 돌을 삼켜도 삭는 나이였 다! 그런데 가끔 육지에 나가 교장이신 아버지의 하숙집에 가 보면 그 진짓상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입맛이 없 다고 진지를 잘 드시지 못했는데, 왜 좋은 음식을 놓고 입맛이 없 다고 하시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는 마흔이셨고 나는 스물이었다. 그 후로 나는 또 다른 섬에서도 자취를 했는데 반찬은 항상 두 가지였으며 나는 그 두 가지로도 세상에 다시없는 성찬을 즐기곤 했었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두 끼만 굶으면 한국 간장 하나 만 가지고도 누구나 기막힌 식사를 할 수 있는데 굳이 반찬을 십 여 가지 장만하는 이유를 나는 사실 잘 모른다. 신부가 되고 나서도 한동안은 자취를 하다가 도저히 시간 때문 에 견딜 수가 없어서 주방에 아줌마를 두게 되었는데 원래 혼자 해 먹던 습관 때문인지 마음에 안 드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물 론 개인적으로는 솜씨도 좋고 마음씨도 착하곤 했지만 그러나 사 는 스타일이 다르니까 이를테면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 본당에 있을 때는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다. 그러 나 사회 일이란 꼭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에 분위기에 따 라서 갈비집도 가야 했고 횟집에도 가곤 했는데, 그러면 그때마다 내겐 참으로 고역이었다. 좌우간 나는 먹는 것이 아주 단순하게 길들여진 사람이다. 도시에 비하면 소록도는 참으로 내가 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 이다. 마치 옛날(?) 섬마을 선생 할 때의 그 추억과 경험이 어우러 져서 가난하면서도 풍요로운 세상을 살 수 있는 분위기가 항상 갖 춰져 있다. 그리고 텃밭이 있어서 상추나 쑥갓 등 온갖 채소를 손 수 가꿔 먹을 수 있으니 먹는 즐거움이 커지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어려울 때의 습성 때문인지 나는 밥상에 반찬이 여러 개 있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싫어할 뿐만 아니라 굉장한 거부감을 느낀다. 도대체 그 많은 반 찬이 왜 필요한지 식사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또 반찬이 많고 보니 본래의 맛이 훨씬 떨어지게 된다. 사제관의 주방 아주머니가 바뀐 지는 1년이 좀 넘는다. 처음엔 젊은 며느리가 하다가 홀로 되신 그 시어머니가 이어서 하는데 사람의 성품도 좋고 아무래도 어른이시라 음식 맛도 깔끔하여 아 무 나무랄 것이 없는 분이다. 그런데 반찬 수가 좀 많다는 것이 약 간의 흠이다. 본래 사제관에는 식구들이 많다. 손님 신부님이 항상 계시며 또 신학생들이 버글거리고 또 내가 키우는 아이들이 때가 되면 몰려 와서 법석을 부리니 서너 가지 반찬으로는 도저히 부지할 수가 없 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반찬 수를 줄이라고 해도 아주 머니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은 줄곧 하지만 그러나 항상 그 대로였으며 일부러 반찬값도 적게 주면서 절대로 네 가지 이상은 놓지 말라고 엄포를 놓지만 그래도 반찬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별별 이유를 붙여서 항상 예닐곱은 되는데 반찬 때문에 착한 사람 들과 계속 싸운다는 것도 보통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는 마음을 오지게 먹고 "아주머니, 나는 항상 혼자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주머니가 꼭 필요한 것은 아 닙니다. 반찬을 꼭 네 가지만 놓든지 아니면 아예 보따리를 싸든 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하며 마지막 선언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반찬 네 가지가 아주 잘 지 켜지고 있다. 그러나 손님 신부님만 아니라면 나는 다시 반찬 수를 셋으로 줄일 것이다. 깍두기 하나만으로도 세상에 다시없는 성찬을 즐길 수 있 는 것이 가난의 축복이 아닌가. "예수님, 솔직히 밥해 먹을 자신은 없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