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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 7월 12일[(녹) 연중 제14주간 목요일]/<죽음 안에 삶이 있습니다.>-양승국

2012년 7월 12일[(녹)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말씀의 초대

호세아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지은 죄 때문에 벌하셨지만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신다(제1독서). 사도들의 사명은 세상에 나가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하늘 나라의 현존을 드러내며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1-4.8ㅁ-9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어느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빌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는 평화를 빌어 주는 사람에게 돌아온다고 하십니다.
중국의 『노자도덕경』에는 ‘음성상화’(音聲相和)라는 말이 나옵니다. 음(音)은 내는 소리이고 성(聲)은 듣는 소리인데, 음과 성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곧, 먼저 나에게서 나가는 소리가 온전해야 듣는 소리도 온전해집니다. ‘뿌린 대로 거두고,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의(善意)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악담이나 저주를 했을 때에는 그것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평화를 빌어 주고 그를 축복해 줄 때 그의 삶 또한 성장합니다. 축복의 말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누군가에게 평화와 축복을 빌어 줄 때 그 사람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신이 사라집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빌어 주는 평화와 축복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 줍니다. 이처럼 세상을 치유하는 힘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분당 요한성당 벽화

 

 


2012-07-12 오전 5:46:28 조회수 41 추천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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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 마태 10,7-15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죽음 안에 삶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너무나 힘들어진 요즘입니다. 더 이상 단 한치 앞도 앞으로 나아갈 길 없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마다 그렁저렁 살아가는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참혹한 하루하루를 온 몸으로 견뎌내는 분들의 모습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제가 정말 싫을 때도 많습니다. 너무나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웃들 앞에 때로 하늘나라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송구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딜 수 없는 참혹함을 느낄 때 마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직 살아있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기대와 자비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표시입니다. 따라서 아직 살아 있다면 우리 발길을 가로막는 수풀 키가 높다 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이 죽음 안에 삶이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다면, 죽기 살기로 애써본다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데서 출발합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부족합니다. 제가 이렇게 문제투성이입니다. 제 힘으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 당신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라고 외치는데서 하늘나라는 시작됩니다.

 

하늘나라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그토록 고수했던 나만의 생활방식, 헛된 망상, 상습적 죄의 상태, 극단적 자기중심주의를 탈피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입고 있었던 낡고 냄새나는 세상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하느님께서 건네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롭고 향기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장소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대 자유’라는 선물에 힘입어 더 이상 그 어떤 유혹,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게 되는 것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베푸시는 풍성한 자비와 사랑에 힘입어 우리가 그간 지니고 왔던 갖은 상처와 아픈 기억들이 말끔히 치유될 뿐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지니고 살아가는 근본적 한계, 태생적 결핍들이 온전히 충족되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지상에서부터 그런 하늘나라를 온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일찌감치 삶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깨달은 진리란 지금 우리 눈을 현혹시키는 그 모든 좋아 보이는 것들이 사실 다 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청춘도 가고, 사랑도 가고, 불변의 진리라고 여겼던 것들도 시들해지고, 결국 지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결국 하느님만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목숨 걸고 추구하는 것들이 사실 아침이슬 같다는 것, 참으로 허망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나를 죽일 때 하늘나라가 시작됩니다. 흥미롭게도 나를 내려놓을 때, 하늘나라는 가까워집니다. 정말이지 나를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 보낼 때 내 삶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내 안에 하늘나라가 건설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