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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李德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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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의 집안. 반쪽의 핏줄이다. 본가(本家)의 적자(嫡子)가 아니니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니 살림을 꾸려 갈 녹봉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시장에 나가 좌판을 벌여 놓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다. 온전한 양반들만의 세계에 끼워 주지도 않으면서, 또 다른 반쪽의 핏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비웃으며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늘 책만 읽는 이런 이덕무를 두고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看書痴)’ 라고 놀렸다. 어떤 의미론, 참 슬픈 별명이다.
조선사회의 깨어있는 지식인으로서 양반이지만 신분을 넘어 서자의 능력을 인정해주었던 ‘연암 박지원’이나 ‘담헌 홍대용’ 같은 실학자들을 스승으로 여러 벗들과 동고동락하며 학문과 개혁을 꿈꾸던 이덕무는 조선의 제22대왕 정조(正祖)의 개혁정치의 바람을 타고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그때가 이덕무 나이 마흔이었다.
이덕무와 벗들은 정조가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화시키며, 역대의 도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 연구의 중심기관이자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치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게 했던 규장각(奎章閣)의 검서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닌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 중국 중심의 학문이 아닌 우리 조선의 학문, 후에 실학(實學)이라고 불릴 학문을 했던 이덕무와 그 벗들은 그렇게 100%는 아니더라도 약간이나마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신은 조선의 개혁가들에게 이어졌다.
[출처] 83.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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