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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채근담-사자소학

명심보감[見人之善]채근담[천지기함]사자소학[설리구순]/경복궁 강녕전

[명심보감] 30. 남의 착한 것을 보거든 나의 착한

 

明心寶鑑 正己篇


性理書하되

성리서 운

見人之善이어든 而尋己之善하고 見人之惡이어든
견인지선 이심기지선 견인지악

而尋己之惡이니 如此方是有益이니라.
이심기지악 여차 방시유익

성리서에 씌여 있다.
"남의 착한 것을 보거든 나의 착한 것을 찾고, 남의 악한 것을 보거든 나의 악한
것을 찾을 것이니 이와 같이 함으로써 바야흐로 유익함이 있을 것이니라."

 


 

性 : 성품 성 / 理 : 이치 리 / 尋 : 찾을 심 / 己 : 몸 기 /
方 : 모 방 / 是 : 이 시 / 益 : 더할 익

性理書 : 사람의 心性과 우주의 원리를 연구한 책.
見人之善 : 다른 사람의 착한 것을 봄.
尋己之善 : 자기자신의 착한 것을 찾음.
方 : 바야흐로.
有益 : 이익됨이 있음.

 

[채근담] 70. 하늘과 땅의 움직임은 헤아릴 수

 

天地機緘, 不測. 抑而伸, 伸而抑.
皆是播弄英雄 顚倒豪傑處.
君子只是逆來順受 居安思危,
天亦無所用其伎倆矣.

천지기함, 불측. 억이신, 신이억.
개시파롱영웅 전도호걸처.
군자지시역래순수 거안사위,
천역무소용기기량의.

하늘과 땅의 움직임은 헤아릴 수 없어 눌렀다가는 펴고, 폈다가는 누르나니,
이는 영웅을 번롱하고, 호걸을 전도하는 것이다. 군자는 천운이 역으로 와도
승순하여 받고 편안함에 있으면 위태로움을 생각하는지라 하늘도 또한 그
재주를 쓸 수 없느니라.

 




機 : 베틀 기 / 緘 : 봉할 함 / 測 : 잴 측 / 抑 : 누를 억 / 伸 : 펼 신 / 皆 : 다 개 /
播 : 씨뿌릴 파 / 弄 : 희롱할 롱 / 顚 : 이마 전 / 倒 : 넘어질 도 / 豪 : 호걸 호 /
傑 : 호걸 걸 / 伎 : 재주 기 / 倆 : 재주 량

 

機緘 : 만물의 처음과 끝 혹은 기운(氣運)의 변화.
顚倒 : 엎어져 넘어지거나 넘어뜨림.
伎倆 : 재주, 재능, 솜씨

 

[사자소학] 15.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하는 것은

 

四字小學 孝行


雪裏求筍 (설리구순)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하는 것은

孟宗之孝 (맹종지효) 맹종의 효도이고,

叩氷得鯉 (고빙득리) 얼음을 깨고서 잉어를 잡는 것은

王祥之孝 (왕상지효) 왕상의 효도이니라.

我身能賢 (아신능현) 내 몸이 능히 어질면

譽及父母 (예급부모) 명예가 부모님께 미치느니라.

我身不賢 (아신불현) 내 몸이 어질지 못하면

辱及父母 (욕급부모) 욕이 부모님께 미치느니라.

 

 

경복궁 강녕전~ 임금님의 행차 1

 

경복궁 강녕전~ 임금님의 행차 2

 

강녕전은 대전이라고도 불리며 왕의 침전으로서 국왕이 정사를 보던 곳입니다. 근정전과 사정전(편전) 뒷쪽에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조후침(前朝後寢 ; 궁궐의 앞부분에 정전을 비롯한 관청을 배치하고 뒷쪽에 침전을 배치)이라는 중국 고대 주나라의 예법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의미라는 말보다는 조선시대 왕의 침전으로 쓰였기 때문에 약간 의미가 다르다면 다르겠지요. 이 강녕전은 임금의 침전인 까닭에 허락받은 자나 일부 궁인들 외에는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던 곳입니다.


강녕전은 여러 건물들로 이루어져있구요. 그 건물은 바로 강녕전 전면과 후면으로 좌우에 같은 규모와 형태의 2개의 전과 2개의 당입니다. 응지당,연길당,경성전,연생전등등이 그러한 건물들입니다.
특징으로는 임금이 머무는 곳이므로 다른 전각과는 달리 지붕위에 용마루가 없습니다. 용이 임금을 의미하므로 두 마리의 용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왕비가 머물던 교태전도 용마루는 없습니다.


강녕전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말하길 "오복중의 하나가 강녕이며, 임금이 강녕하면 그 혜택이 백성에 이른다"하여 그렇게 이름지어졌다합니다.
이 강녕전은 1395년(태조 4)에 창건되었고, 그후 1553년(명종 8)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 중건하고, 다시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한 것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재건하였습니다.


그리고 1914년, 당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기거하던 창덕궁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조전과 희정당 등 많은 전각이 불타자 이를 복원한다는 명목하에 총독부 주도로 헐려서 희정당 복구에 사용하고,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출처]다음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