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오피니언/테마칼럼/입력 : 2004-12-09 16:04:21
초겨울 시골집 안방의 가장 뜨듯한 구들목을 지킨 건 메주덩이였다. 온 집안이 메주 뜨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하는 벱이여. 마구 들추고 그러지 말어.” 코를 싸쥐면서 손사래를 치던 손주들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할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이지. 암, 보약이고 말고.”
바싹 말라서 곰팡이가 핀 메주덩이가 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인지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또 시골집 처마에서 무와 배춧잎들이 바리바리 엮여 말라가는 이유는 아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누구였을까. 맨처음 싱싱하고 보기 좋은 것들에 곰팡이가 피고 바짝 말라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이는. 천년이 천년이 또 가도 변치 않는 맛을 세상 사람들에게 주고 떠난 당신에게 축복이 있으라.
제 몸을 말려 세상에 다 내주는 메주와 시레기는 우리들의 하느님이요 우리들의 부처님이다. 시골집 처마에 매달린 매주덩이와 잘 마른 시레기를 보며 마음이 넉넉해지는 이 겨울.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시레기 된장국의 구수한 맛이 그립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 손맛이 그립고 그리워서 메주 뜨는 냄새가 지독한 시골 안방으로 돌아가고 싶다.
대림시기...따듯한 연말...나눔의 계절...^-^
제 몸을 말려 세상에 다 내주는 메주와 시레기는 우리들의 하느님이요 우리들의 부처님이다. ...^-^
- 2012년 12월16일 일요일...수산나 -
콩밭 1
콩밭 2
콩밭 3
배추밭과 콩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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