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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허동현의 모던타임스]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27] '한국인 고유의 스토리'가 韓流 성공 이끌어냈다

[허동현의 모던 타임스] [27] '한국인 고유의 스토리'가 韓流 성공 이끌어냈다

조선일보/오피니언/허동현 경희대교수 역사학 

입력 : 2012.10.11 22:39

반세기 전의 '한류 원조' - 1950년대 말에 미국에 진출해 1962년 빌보드 싱글 차트 7위까지 올랐던 김시스터즈의 첫 앨범 표지. 당시 한국 문화를 모르던 미국 대중을 의식한 듯 중국풍 옷을 입은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훗날 우리 대중문화를 꽃피울 싹은 움트고 있었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 민족의 고통과 비애를 영상으로 담아 꺼져가는 민족혼의 불길을 되살렸던 나운규(1902~1937)나 전통 무용에 서구 현대무용의 기법을 입힌 최승희(1911~1969)를 기억한다. 6·25전쟁의 와중에 미 8군 무대에 서다 1950년대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했던 3인조 여성 보컬 김시스터즈나 1960~80년대 지구 마을을 돌며 우리의 선율과 가락을 선사한 선명회 합창단도 한류(韓流)가 동트기 전 우리 대중문화의 새벽을 세계에 알린 전령사였다. 그러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압축 성장의 시대를 살던 1980년대까지 한국은 미국·일본·홍콩 등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대중문화의 소비국이었지 수출국은 아니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1990년대 한국 대중의 문화 역량은 긴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서양의 팝송이 아닌 K팝이 흘러나왔고, TV의 황금시간대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미국 드라마는 안방극장에서 밀려났다. '아메리칸 시네마'를 보며 영화의 문법을 익힌 우리의 할리우드 키드들은 독창적 시선으로 우리 삶과 이야기를 담은 필름을 쏟아냈다. 1990년대 후반 '한류(韓流·The Korean Wave)'가 발원하면서 우리 문화의 해외 전파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문화의 젖줄을 타고 한류가 국적과 인종을 넘어 지구 마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는 오늘, 우리는 한류라는 강물이 썩지 않고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한류를 일군 문화 상품으로서 드라마나 K팝이 해외 시장을 노리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의 성공 이유는 남녀동권(男女同權) 사회를 꿈꾸는 우리 여성들의 바람이 담긴 스토리텔링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여성 팬덤(fandom)을 형성할 만큼 그들의 심금을 파고든 데서 찾아야 한다. '강남스타일'의 대성공도 조선시대 광대들의 해학 정신을 이은 싸이의 강남 비틀기가 지구 마을 사람들의 유머 코드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류의 지속을 위해 우리가 건너야 할 징검다리의 디딤돌은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자(他者)로 거듭나기일 것이고, 그 도약대는 우리 특유의 삶과 역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서와 가치를 오롯이 전달하는 콘텐츠 만들기일 것이다.

 

 요리영상으로 담아 꺼져가는 민족혼의 불길을 되살렸던 나운규(1902~1937)나 전통 무용에 서구 현대무용의 기법을 입힌 최승희(1911~1969)를 기억한다.

 

1950년대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했던 3인조 여성 보컬 김시스터즈나 1960~80년대 지구 마을을 돌며 우리의 선율과 가락을 선사한 선명회 합창단도 한류(韓流)가 동트기 전 우리 대중문화의 새벽을 세계에 알린 전령사였다.

 

1990년대 후반 '한류(韓流·The Korean Wave)'가 발원하면서 우리 문화의 해외 전파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류 드라마의 성공 이유는 남녀동권(男女同權) 사회를 꿈꾸는 우리 여성들의 바람이 담긴 스토리텔링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여성 팬덤(fandom)을 형성할 만큼 그들의 심금을 파고든 데서 찾아야 한다.

 

한류의 지속을 위해 우리가 건너야 할 징검다리의 디딤돌은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자(他者)로 거듭나기일 것이다...^-^

 

나운규, 김승희, 김시스터즈 까지는 나에게는 전설(?)이다...ㅎㅎ...^-^

 

- 2013년 4월3일 부활8일축제 내 수요일...수산나 -

 

 

 

6.25 전쟁 후의 대중문화

 

 

6.25 전쟁 후의 대중문화...영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