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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오피니언

[사설]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가 오늘 이 땅에 던지는 메시지(2013.12.7.토)/무궁화 5장

 [사설]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가 오늘 이 땅에 던지는 메시지

조선일보/사내칼럼

 

입력 : 2013.12.07 03:07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 95세로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前)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에 대해 "만델라라는 사표(師表)가 없는 내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애도했다. 만델라가 인류의 사표가 된 것은 남아공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정책)를 철폐시킨 공로 때문이 아니다. 그가 27년이나 감옥 생활을 하고서도 대통령에 올랐다는 입지전적인 삶 때문도 아니다.

만델라는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게 가혹한 탄압을 가한 가해자들을 진심으로 껴안아 복수의 악순환에 빠지기 직전인 나라를 구하고, 국민 전체에 저주와 증오가 아닌 용서와 화해를 심었다. 전 세계가 이 기적에 감동했고, 인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인간에게는 선(善)한 본성이 있다'는 이 희망의 불씨는 만델라라는 이름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990년 감옥에서 나온 만델라 앞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무력으로 백인 정권을 타도하자'는 ANC(아프리카 민족회의) 동료들의 요구였다. 만델라는 이 요구에 대해 "우리는 백인들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이룩해 놓은 것에 감사를 표한다"고 공언하는 것으로 답했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엔 백인 가해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만델라는 이에 대해서도 '용서하되 잊지는 않는다'는 과거사 해결의 원칙으로 응했다. 이를 위해 설립한 법률의 이름도 '국민 통합 및 화해 촉진법'이었다. 이 법에 따라 6800명의 가해자가 진실을 고백하고 사면받았다. 만델라는 고백하지 않은 가해자들도 끝내 처벌하지 않았다.

만델라 대통령은 직전 백인 정권의 대통령을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흑인 탄압의 핵심이었던 정보책임자, 자신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던 검사를 자택으로 초대해 정중히 대접했다. 백인 교도관 세 명은 대통령 취임식장에 초대해 귀빈석에 앉혔다. 흑인 단체가 백인 문화를 대표하는 럭비 대표팀 해체를 요구하자 오히려 만델라는 흑인이 단 한 명뿐인 럭비대표팀을 찾아가 격려했다. 감동한 백인 선수들은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결사적으로 뛰어 예상을 깨고 우승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결승전이 끝나자 경기장에 모인 흑인과 백인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넬~슨, 넬~슨"을 연호했다.

남아공은 흑·백 인종으로 갈라진 나라였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듯한 이 강(江)도 타협과 화해라는 다리로 이어졌다. 남아공에 비하면 갈등의 근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사회가 왜 이토록 갈라져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만델라의 힘은 정권을 잡은 뒤 자기 세력의 이해관계에서 결연히 벗어나 국가와 대의(大義)의 편에 선 것에서 나왔다. 자신과 고난을 함께한 세력을 물리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힘을 가진 쪽이 희생하고 양보해야만 선의(善意)의 기운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만델라가 입증했다. 우리는 민주화에는 성공했으나 집권자가 끝내 '내 편'의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계속 바뀌면서도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없었다. 그 결과 선의가 아닌 갈등의 악순환이 우리 사회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말았다. 만델라가 역사의 바다에 남긴 항해의 흔적은 너무나 크고도 깊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뱃머리를 돌려 그 항로를 따라간다면 우리 사회의 화해와 상생(相生)의 길이 열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델라 타계 1918~2013] 무기수에서 대통령까지… 용서·화합으로 무장한 '아름다운 투사'

한국일보/ 김종한기자 tellme@hk.co.kr....입력시간 : 2013.12.06 21:07:27 

■ 만델라의 뜨거웠던 삶
로벤 섬 등서 27년 옥고 350년 인종차별 종식
76세에 첫 흑인 대통령 재임기간 진실화해위 출범… 흑인 탄압 과거사 정리

넬슨 만델라의 죄수번호는 46664였다. 1964년 케이프타운 앞 로벤섬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란 뜻이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요구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수감된 27년의 옥살이 기간 동안 이름 대신 이 번호로 불렸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자신을 죽음의 문턱으로 몰았던 정적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대신 넓은 가슴으로 그들을 끌어 안았다. 보복 대신 용서와 화합으로 남아공을 바꾸었다.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남아공 동남부 트란스케이주의 시골 마을 음베조에서 코사어를 쓰는 템부족의 추장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이름은 롤리흘라흘라 만델라였다. 남아공은 17세기 중반 이후 백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그는 그 영향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넬슨이라는 서양식 이름을 갖게 된다.

흑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1940년 흑인대학 포트헤어대에 입학했지만 정학처분을 받는다. 6명으로 구성된 학생회의 대표로 선출된 그는 학생회가 대학 당국의 정책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며 대표에서 사임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만델라는 템부족 왕이 정해둔 여인과 결혼시키려 하자 요하네스버그로 피해갔다.

그곳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던 만델라는 흑인 지식인층과 교분을 쌓으면서 흑인차별정책의 부당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43년에는 당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고 이듬해에는 청년조직인 ANC청년동맹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1952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변호사가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운동을 시작했지만 흑인 변호사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의 벽을 실감했다. 흑인 70여명이 비폭력 저항 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진 샤퍼빌대학살이 1960년 일어나자 만델라는 본격적인 무장 투쟁에 나섰고 결국 4년 뒤 국가반역죄로 종신형에 처해진다.

로벤섬에 갇힌 만델라는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등 괴로운 시간을 이어갔다.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에서 그는 '민족의 행복을 내 가족의 행복보다 앞세우는 게 올바른 선택인가'라며 괴로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인권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고 있었다. 옥중의 만델라는 1979년 자와할랄네루상, 1981년 브루노 크라이스키인권상, 1983년 유네스코의 시몬볼리바르 국제상을 수상했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지자 남아공 정부는 1990년 2월 그를 석방했다.

이듬해 7월 ANC 총재에 취임한 만델라는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이끄는 남아공 백인정부와 협상해 350여년에 걸친 인종 갈등을 중단시킨다. 이 공로로 그는 1993년 데 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5월에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시 나이 76세였다.

만델라는 흑인을 탄압하던 백인을 용서와 화합의 정신으로 포용해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인종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화해와 국가 건설을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한다"며 "모든 사람이 일자리, 빵, 물, 소금을 갖고 이 아름다운 나라에 다시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먼드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화해위원회(TRC)를 출범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다. 백인 정권 시절 경찰, 군 등 보안기관에 근무하며 흑인을 테러하고 그들을 탄압한 가해자가 TRC에 출두해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사면했다.

데 클레르크를 부통령에 임명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보 책임자였던 니엘 바너드와 자신에게 종신형을 구형한 퍼시 유타 검사 등을 초청해 극진히 대접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가 남긴 화해와 평화의 정신은 흑인과 백인이 조화와 공존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신념을 남아공에 정착시켰다.

■ 어록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살겠다. 사나이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그렇게 할 것이다."(1962년 11월 프리토리아 유대교성당 연설에서)

▲"나는 일생을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필요하다면 그런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1964년 4월 내란 혐의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와 민주주의, 자유의 이름으로 인사한다.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고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1990년 2월 27년간의 복역을 끝내며)

▲"마침내 정치적 해방을 성취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가난과 상실, 고통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땅에서 사람이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 넘치도록 하자. 신이여, 아프리카에 은총을 베푸소서."(1994년 5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1996년 만델라 어록집에서)

▲"27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2000년 7월 더반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 폐막 연설에서)

▲"우리 시대의 역사가 쓰여진다면 세계 위기의 순간에 등을 돌린 세대로 기억되거나 옳은 일을 했다고 기록될 것이다."(2005년 6월 노르웨이 연설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헌신하고 열정적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다."(2009년 12월 크리킷 선수 마카야 은티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름다운 남아프리카에 대한 꿈이 있다면 그 꿈에 이르는 두 가지 길도 있다. 그것은 바로 호의와 용서라는 길이다."(2011년 6월 넬슨 만델라 메모리센터가 펴낸 '자기가 본 넬슨 만델라' 명언집에서) 

  바이   [사설]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가 오늘 이 땅에 던지는 메시지

 

2013년 12월 6일(음력 11월4일 병오일)에  넬슨 만델라 전(前)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타계했다고 한다...^-^

매일 단상을 쓰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데...써야 할 소재가 별로 많지 않다...ㅎㅎ...^-^

백수로 놀고 있으니...그날이 그날로 비슷비슷한 일상이니...더욱 쓸 꺼리(?)가 없다...ㅎㅎ...^-^

 

오늘은 무슨 내용을 쓰나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KBS1 인생극장 '소리부부가 사랑한 아이들'을 시청하였다...^-^

"그래, 감동을 느끼며 보았으므로...시청소감을 써보자!" 하면서 소재거리를 찾아내어... [단상] 12월4일 수요일란을 메꾸(?)었다...ㅎㅎ...^-^

다음에는 TV뉴스에서 '김장문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되었다.'는 소식이 나온다...ㅎㅎ...^-^ 

기록을 하기 위해 쓰는 단상이므로...저것도 쓸만한 소재가 되겠다 싶어...[단상]12월6일 금요일란을 메꾸(?)었다...ㅎㅎ...^-^

 

오늘 쓸 소재는 무엇일까를 찾아보는데...3가지 중요한 기사가 나온다...ㅎㅎ...^-^

 

첫째는 김연아가 6일(이하 한국시각)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위치한 돔 스포르토바 빙상장에서 열린 '2013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해 기술점수(TES) 38.37점 예술점수(PCS) 35.00점을 합친 73.37점...최고점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완벽한 기량을 보인 모습을 재방송 해준다...ㅎㅎ...^-^

 

둘째는 월드컵 조추첨 결과, 대한민국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H조’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한조가 됐습니다. 죽음의 조를 피했을뿐 아니라...각 포트에서 가장 약체에 꼽히던 팀들과 만나는 최고의 행운을 얻었다는 소식이다....ㅎㅎ...^-^

 

세째는 6일 95세로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前)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에 대한 기사이다...ㅠㅠ...^-^

 

6일 하루에 3건의 기사가 나왔으므로...단상의 소재로 선택해야 할 입장이 되었는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에 대한 기사내용을 보다 기억하고 싶은 감성(?)이 발동하므로...

조선일보 사설과 한국일보의 기사를 스크랩하여 꼼꼼히 읽어보는 중이다...^-^

 

만델라의 정신을 조선일보 사설에서 요약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델라는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게 가혹한 탄압을 가한 가해자들을 진심으로 껴안아 복수의 악순환에 빠지기 직전인 나라를 구하고, 국민 전체에 저주와 증오가 아닌 용서와 화해를 심었다. 전 세계가 이 기적에 감동했고, 인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인간에게는 선(善)한 본성이 있다'는 이 희망의 불씨는 만델라라는 이름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善)한 본성이 있다'는 이 희망의 불씨는 만델라라는 이름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는 말이 좋~다...^-^

 

- 2013년 12월7일 토요일...성 암브로시오 주교학자 기념일에...수산나  감사-

 

 

무궁화 1...줄기 수피...^-^

 

무궁화 2....꽃 ...적단심계-불새...^-^

 

무궁화 3...꽃...백단심계-신태양...^-^

 

무궁화 4...꽃...청단심계...파랑새...^-^

 

무궁화 5...꽃...자단심계-첫사랑...^-^

 

[분수대] 만델라 보내는 길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날아간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2013.12.11 00:10 / 수정 2013.12.11 00:10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기쁠 때 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슬플 때 일은 웬만해선 잊지 않는다”는 속담 때문일까?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외국 정상이 100명 가까이 모였다. 현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지미 카터(89·민주), 빌 클린턴(67·민주), 조지 W 부시(67·공화) 등 운신 가능한 전직 대통령이 모두 나선 미국이 가장 눈에 띈다. 외국의 전 대통령에 대해 전·현직 구분 없이 초당적인 조문외교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에 오바마가 불참했던 것과 비교된다.

 영국은 총리와 찰스 왕세자가, 프랑스와 독일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각각 참석했다. 의원내각제인 캐나다에선 전·현직 총리들이 함께 출동했다. 어느 정상회의 때보다 많은 VIP가 몰렸다. 처리할 현안이 한둘이 아닌 건 물론이고 분 단위로 일정을 짜는 분들인 만큼 조문을 위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취소 또는 연기해야 했을 중요한 약속도 수두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급작스러운 외국 방문에 따른 경호 문제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왜 만사를 제쳐놓고 앞다퉈 먼 길을 날아갔을까? 가장 큰 이유로 당연히 만델라의 위대성을 꼽을 수 있겠다. 비인간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과 용서·화합의 살아있는 역사를 동시에 이룬 위대한 영혼에게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자원대국 남아공과 가능성의 대륙 아프리카와 관련한 국익도 한몫했을 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더해 동일한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의 정상들끼리 일종의 ‘가치동맹’ 총회를 한 건 아닐까? 만델라가 추구한 인권보장·차별철폐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동의하는 민주국가의 정상들이 모여 서로 하나임을 확인하고 관계를 다지는 의미도 상당히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참석자 대부분이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국가의 정상이고 그 반대 측은 드물다는 사실이 근거다.

 게다가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자신감과 책임감을 앞세워 전 세계가 가는 방향을 주도하고 어젠다를 설정해온 국제사회의 주역이다. 이들이 다른 정상회의에서 만나면 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며 이심전심으로 이번 조문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가치동맹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지 않을까?

 한국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보내 조문외교에 합류했다. 하지만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그 자리에 함께했더라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었고 우선순위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겠지만 말이다. 이젠 가치외교에도 눈을 돌릴 때가 아닐까.

채인택 논설위원

 

 (요점)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외국 정상이 100명 가까이 모였다. 현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지미 카터(89·민주), 빌 클린턴(67·민주), 조지 W 부시(67·공화) 등 운신 가능한 전직 대통령이 모두 나선 미국이 가장 눈에 띈다. 외국의 전 대통령에 대해 전·현직 구분 없이 초당적인 조문외교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에 오바마가 불참했던 것과 비교된다.....

영국은 총리와 찰스 왕세자가, 프랑스와 독일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각각 참석했다. 의원내각제인 캐나다에선 전·현직 총리들이 함께 출동했다. 어느 정상회의 때보다 많은 VIP가 몰렸다....

이들은 왜 만사를 제쳐놓고 앞다퉈 먼 길을 날아갔을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자신감과 책임감을 앞세워 전 세계가 가는 방향을 주도하고 어젠다를 설정해온 국제사회의 주역이다. 이들이 다른 정상회의에서 만나면 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며 이심전심으로 이번 조문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가치동맹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지 않을까?
가치외교에도 눈을 돌릴 때가 아닐까.

- 2013년 12월11일 수요일...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