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시시각각] 기성세대는 과연 안녕한가
[중앙일보] 입력 2013.12.18 00:34 / 수정 2013.12.18 00:34
“OO야.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들과 카트를 밀던 40대의 눈길이 머문 곳은 시식코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요리하는 젊은이였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런 생각을 품은 때가 있었다. 그는, 나는 얼마나 저열한가. 우린 아이들에게 경쟁과 위선의 체제에 순응하라고 가르쳐 왔다. 얼마 전 논술학원 설명회에서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의대 마치고 평생 봉사하며 살다가 제3세계에서 죽는다.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장래 희망을 쓰는 학생들이 많아요. 처음엔 참신했는데 더 이상 먹혀들지가….”
미래를, 자신을 속이라고 해놓고 그들에게 진실함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이룩된 안온한 삶이 행복할지 나는 자신할 수 없다. 지난해였다. 우연한 기회에 수도권 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이 유난히 순하고 착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in) 서울’ 대학이 아니면 더 악착같아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을 텐데….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SKY(서울·고려·연세대)에 못 갔지.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나밖에 모르는 아이, 한 문제라도 틀리면 잠 못 자는 아이, 독한 아이가 공부도 잘하는 거야.”
귀갓길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 건 착잡함이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아이들이 성장해 나라를 이끈다면 어떻게 될까. 공감과 소통은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법조계 한 켠에서 자조처럼 떠도는 단어가 있다. ‘반장 콤플렉스’.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뽑힌 반장들은 대개 같은 반 친구보다 교사들에게 인정받으려 한다. 그 반장들이 지금은 판사요, 검사다.
그 점에서 지난주 고려대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의 물음은 신선했다. 대자보는 옆으로 눈을 돌리자고 말한다. 중요한 건 대자보를 쓴 학생이 노동당 당원이란 게 아니다. 그 대자보가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내겐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 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라는 대목이 가슴에 다가왔다.
물론 대자보 몇 십 장 붙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나’가 아닌 ‘우리’의 현실에 죄책감을 갖는 건 사회의식으로 나아가는 초보적 단계일 뿐이다. 감정마저 사고 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죄책감도, 분노도 소비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응답하라…’로, 다시 ‘안녕들 하십니까’로 갔다가 언제든 ‘아프니까…’로 되돌아갈 수 있다. 감성의 유통기한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해주길 기대하는 건 그래서다.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이 왜 문제인지, 철도 파업이 무슨 내용인지를 차분하고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꼭두각시는 자기를 조종하는 줄을 사랑하는 한 자유롭다”(미국 과학자 샘 해리스)는 힐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고민이 전제된다면 결론은 어느 쪽이든 좋다. 그것은 곧 생각하는 보수, 생각하는 진보의 출현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 대학 교수의 말이다.
“리포트, 아니 e메일만 봐도 학생들 사고력과 표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불안할 정도예요. 이번 기회에 ‘읽고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섣불리 대자보에 이념딱지를 붙이려 해서도, 그 바람에 편승하려 해서도 안 된다. 팩트가 틀렸다고? 팩트는 토론 속에 바로잡힐 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기성세대다. 이젠 젊은 그들에게 “뒤처지면 죽는다”고 독려해 온 우리 자신을 향해 안부를 물을 차례 아닌가.
권석천 논설위원
[사설]‘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건강한 토론 문화로 이어지길
동아일보/기사입력 2013-12-18 03:00:00
전국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널리 퍼지고 있다. 고려대에서 한 대학생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대자보를
붙인 것을 시작으로 서울 인천 강원 전북의 대학들에서 호응하는 대자보들이 나붙고 있다. 철도 민영화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비판한
페이스북의 ‘안녕들 하십니까’ 계정에는 5일 만에 25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표시했다. 보수 성향의 학생단체인 한국대학생포럼은 북한의 인권
유린과 철도 파업을 비판하며 ‘이런 시국에 어찌 안녕할 수가 있겠습니까’라는 대자보로 맞불을 놓았다. 시국 문제를 놓고 대학생들 사이에 관점이
갈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권위주의적 체제를 경험해 정치 사회적 관심이
컸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20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다. 외동아들 외동딸로 자라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이 문제이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표시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논쟁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부 정책은 ‘철도와 의료 민영화’라고 전제하고, 민영화가 되면 요금이 10배 넘게 뛸 것이라는 ‘괴담’
수준의 주장이 오가고 있다. 정부는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 정책은 영리법인화와 다르다고 거듭 확인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는 말이 있듯이 정확한 사실 위에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도식적인 진영 논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 코레일 자회사 설립, 밀양 송전탑 건설, 북한 인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 편의 주장은 무조건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토론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수단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리적인 공감대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기성세대도 이번 논쟁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취업을 위해 수십, 수백 곳에 입사원서를 내야 하는 젊은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대자보 현상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정당들이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만든 것은 젊은 세대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결실을 봤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청년들의 좌절감을 해소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끼리 때로는
정교하지 않은 논리로 치고받는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생경하고 거북할 수도 있다. 이들의 잘못은 잘못대로 지적하되 그 뒤에 숨어 있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대학생 대자보 한 장에 들썩이는 '병(病)든 정치'
조선일보/박두식 논설위원 칼럼/입력 : 2013.12.18 05:40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젊은 층이 들썩이는 것은
'現 정권은 독재'라는 좌파 주장에 동의해서라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에 낙담했기 때문
괜한 정치 헛물켜지 말고 청년 실업대책부터 내놔야
대자보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한다. 그러고선 철도 파업,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을 거론하면서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중략)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로 맺는다.
이 대자보에 담긴 주장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좌파 진영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줄곧 외쳐온 내용들이다. 대자보를 썼다는 대학생 역시 좌파 정당의 당원이다. 좌파는 올해 내내 '박근혜 독재론'을 펴 왔다. 지난 몇 달간은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쓴 시(詩)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시 역시 대자보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중략)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십년 전 대학가에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유행했던 시까지 꺼내 들 만큼 좌파는 다급했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했던 2장짜리 대자보가 세상의 주목을 받자 야권과 좌파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치인은 페이스북에 "드디어 봉기가 시작됐다"고 했고, 다른 정치인은 '대학생이 움직인다'고 썼다. 인터넷을 가득 메운 '대자보 급속 확산' '새누리당 긴장' 같은 소식들을 읽다 보면 마치 지금이 혁명 전야(前夜)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야권이 들뜬 것만 놓고 보면 2011년 가을 무렵과 비슷하다. 인터넷 방송 '나꼼수'가 성공을 거두자 대선 후보와 당 대표, 이름 꽤 알려진 좌파 인사들이 일제히 나꼼수에 달려가 몸을 기댔다. 나꼼수가 유행시킨 '쫄지마'가 야당의 공식 구호처럼 자리 잡았다. 당시 야권은 나꼼수의 막말을 승리의 구호처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야권은 이듬해 4월 총선에서 패했다. 선거 전에 예상됐던 야권 절대 우위가 허망하게 무너진 데는 나꼼수의 공이 컸다. 지금 같아선 야권과 좌파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대자보가 던진 '안녕들 하십니까'란 구호를 계속 밀고 나갈 듯한 기세다.
그러나 대자보의 주장이 정말 많은 국민과 젊은 층의 지지를 받으려면 '현 정권이 독재'라는 좌파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해 있어야 한다. 어제 아침자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페이스북이 욕설과 비방 글로 뒤덮여 있다고 전했다. 어제 오후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천안함 침몰은 한미 연합작전의 결과이고 짜고 친 사기'라는 글이 맨 앞 페이지에 나와 있고, '이(런)게 대통령이냐? 우리가 따를 이유가 없다'는 글이 이어졌다. 대통령 페이스북 댓글난은 '쓰레기' 'XX년' 같은 옮기기도 힘든 욕설로 가득했다. 같은 날짜 신문에는 김정은의 숙청을 피해 몸보신에 성공한 최룡해를 비롯한 북한군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한 손을 치켜들고 "우리는 억척불변의 김정은 총대"라는 내용의 충성맹세문을 읽었다는 뉴스가 실려 있다. 이 정도는 돼야 독재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실세로 군림했던 유시민씨조차 최근 한 집회에서 "제가 (요즘) '정권 말기' 운운해도 국정원에서 전화 안 오더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북의 잔인한 장성택 처형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 '같은 성격'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폈다. 병(病)적 증상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가 최근의 '대자보 현상'에서 아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젊은 층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간단한 인사말 속 그 무엇인가에 마음이 움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사회라면 그 공동체는 이미 심각한 중증(重症) 위기를 맞았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독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층의 불안과 좌절·낙담을 풀어줄 정권의 능력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야권 역시 괜히 정치적 헛물을 켤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청년 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야권이 그토록 갈망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지름길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기 뒤에 반기
한국일보/김경준 기자/입력시간 : 2013.12.18 03:39:37
1인 시위에 성토대회 촛불 집회로 이어져
"익명성 탈피한 진정성이 공감 이끌어 낸 것" 분석
김정은 사진 부착ㆍ훼손… 일베 홈피에 인증까지 반박대자보 곳곳 등장
철거 방침에 충돌 우려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이 성균관대자연과학캠퍼스 내‘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얼굴을 붙이고 찍은 인증사진을 17일 오전 일베 사이트에 올렸다. 일베 홈페이지 캡처
17일 계명대 단국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에서는 대자보에 김 위원장과 이 의원의 사진이 나붙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게시판에는 이들 사진을 넣어 만든 유인물과 스티커, 이를 '안녕' 대자보에 부착하고 찍은 인증 사진 등이 게시됐다. 일부 일베 회원들은 "떨어지지 않게 초강력 본드로 붙이라"며 조롱했다.
철도파업 등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안녕' 대자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6일 경북대에 이어 17일 고려대에 반박 대자보가 등장했다. 자신을 '고려대 13학번 이모'라고 밝힌 한 학생은 대자보에서 "철도노조 파업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등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현직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논란 등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경남 김해 인제대 정문과 도서관 앞 게시판 등에 붙은 20여개의 대자보 일부가 16일 오후 찢어져 학생 5, 6명이 밤새 대자보를 지키기도 했다. 대학 측이 대자보 철거 방침을 밝히면서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과 충돌도 우려된다.
이 같은 논란에도 '안녕' 대자보 열풍은 1인 시위와 집단 성토대회 등 다양한 모습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서울 필동 동국대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한 동국인들의 성토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철도노조 파업,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등 사회적 이슈에 관해 토론하고, 취업난과 과도한 스펙 경쟁 등 대학생이 겪는 고충을 토로하며 마음을 나눴다.
1인 시위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는 3, 4명이 각자 쓴 대자보를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들은 "매일 철도를 이용하는 제가 외부세력인가요? 철도는 공공재입니다"라며 철도노조의 파업을 지지했다. 이들은 또 "저희는 비록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우리 사회가 안녕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려 한다"며 지나는 이들에게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촛불집회 참가를 독려했다.
이처럼 대자보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다양한 행동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익명성을 탈피한 진정성이 공감을 이끌어 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인터넷이나 SNS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익명성 문화에서 벗어나 대자보에 실명을 공개하고 손글씨를 활용해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며 "여기에 더 나은 자아를 완성하려는 젊은 세대의 욕구가 결합해 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안철수 의원(무소속)은 이날 대전지역 신당 설명 행사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에 대해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의식들이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라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분출"이라고 언급했다.
[씨줄날줄] 대자보 파문/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서울신문/2013-12-18.
대자보는 언로(言路)가 막혀 있던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실정(失政)이나 수탈을 비방하는 익명의 글귀를 동네 어귀나 저잣거리, 성문, 포구 등
인적이 많은 곳에 붙였다. 벽에 건다는 의미로 ‘괘서’(掛書) 또는 ‘벽서’(壁書)라고 했다. 1504년에는 연산군의 폭정을 비난하는 괘서가
장안 곳곳에 나붙었다. 1547년에는 문정대비의 수렴청정을 비방하는 벽서가 양재에서 발견돼 정미사화(丁未士禍)의 발단이 됐다. 1804년에는
이달우와 정의강의 주도로 삼정(三政)문란을 공격하는 괘서가 서울의 사대문에 붙었고 두 사람은 극형을 당했다. 괘서의 효시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고려 때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형태로 오늘날에도 쓰는 ‘글을 던지다’는 의미의 ‘투서’(投書)가 있고 ‘비서’(飛書)라고도 불렀다.
대자보는 매스미디어가 없거나 있더라도 통제를 받는 시대에 민중이 의견을
피력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생겨났다. 프랑스에서는 1871년 파리코뮌 시대에 왕당파에 반대해 공화제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벽보를 붙였다. 옛 소련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대자보가 나붙었고 중국에서는 ‘대장정’(大長征) 후인 1930년대 후반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통로로 대자보가
이용됐다.
대자보란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때는 중국의 문화혁명기였다. “군(君)들에게 말하겠다. 사마귀는 수레바퀴를 멈출 수가 없고, 개미는 거대한 나무를 뒤흔들 수 없다.” 이런 글귀를 담은 대자보가 1966년 5월 25일 베이징대에 붙었다. 7명이 연명한
이 대자보는 당간부 3명을 공격했는데 공격받은 측이 바로 반박 대자보를 붙여 논쟁이 격화됐다. 1970년대에는 자본주의를 따르는
주자파(走資波)였던 덩샤오핑이 극좌파들의 대자보 공격을 받았다. 천안문 사태에서도 대자보는 예외 없이 등장했다.
국내에서 대자보는 1970~90년대 대학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건물 벽이나 내부 계단, 창문 등 어디든 나붙어 독재의 실상을 알리고 시위를 선동하는 역할을 했다. 대자보는 불온문서와 다름 없이
취급됐으며 붙자마자 철거되기도 했다. 1986년 서울대에서는 불온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운동권 학생 수십명이 검거되거나 수배당했다. 이른바
‘서울대 대자보 사건’이다. 쓴 학생을 밝혀내기 위해 경찰은 370여명의 필적감정을 벌였다. 언론자유화와 인터넷,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보급으로 뜸했던 대자보가 부활했다. 학생들 사이에 작금의 현실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내용을 떠나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간 아날로그식 표현 방식이 대중의 시선을 잡은 셈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못마땅한 사람들
한겨례신문/정치일반/등록 : 2013.12.17 11:55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
하태경·김진 등 보수 인사 ‘대자보 열풍’ 깎아내리기
누리꾼들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만…” 편협함 지적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낳은 대학생 주현우(27)씨가 쓴 최초의 대자보에서 사실관계 오류가 발견됐다며 "학점으로 평가한다면 C학점"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지적을 하는 등 보수 인사들이 대자보 열풍 깎아내리기에 나서면서, 누리꾼들은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논설위원은 16일 중앙일보 종편 제이티비시(JTBC) ‘정관용 라이브’에 출연해 “이 대자보를 만약에 학점으로 평가를 한다면 저는 C학점 위로는 받지 못할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자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인데… 파업한 지 하루 만에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일자리 잃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직위해제라는 걸 이 대학생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런 대자보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김 논설위원은 또 “제2의 광우병하고 비슷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예를 들자면 정확한 내용도 모르고. 동조하는 일부 대학생들은 무슨 노동자들이 수천 명이 해고됐다, 이 말에 자극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생들이 틀린 팩트를 가지고 국민들을 ‘선동’하고 나섰다는 주장이다.
하태경 의원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 의원은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김 논설위원과 같은 점을 지적하면서 “진리탐구의 전제는 팩트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다. 첫 문장이 팩트 왜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팩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 자체가 정말 우리 대학들이 병을 앓고 있구나, 이런 첫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뉴시스 |
누리꾼들은 두 명의 보수 인사가 전형적으로 ‘논점 물타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아이디 @do****를 쓰는 누리꾼은 트위터에서 “직위해제의 핵심은 ‘코레일 사규상 직위해제가 석 달 안에 철회되지 않은 직원은 면직처분 대상, 직위해제 직원은 기본급을 제외한 각종 수당이 없고, 인사 평가에서도 제외돼 승진 등의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위해제가 해고는 아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 중의 하나인 파업이란 단체 행동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각종 불이익을 주는 조처인 것이 맞는데 두 명의 보수 인사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코레일은 대규모 직위해제라는 징계를 내리기 전에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고 일방적으로 징계를 내렸다. 절차적인 문제가 있는 셈이다.
특히 2009년 철도노조 파업 때 똑같이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던 코레일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파업을 저지하고 업무복귀를 유도하기 위한 직위해제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 법적으로도 직위해제 조처가 위법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적이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누리꾼 @yen****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비춰보면 철도는 필수 공익사업장이 아닌데도 철도노조는 필수 업무를 유지하고 있다. 준법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직위해제하고 형사처벌하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누리꾼들은 전국 곳곳에 열풍이 불고 있는 대자보 릴레이 현상의 본질에 주목하지 않고 꼬투리만 잡고 있는 보수 인사들의 편협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디 @so****를 쓰는 누리꾼은 “(하 의원의 주장에서) 맥락 보지 않고 개별 문항 가지고 상대 정파 까던 습성이 남아 있는 ‘내가 대자보 써봐서 아는데’ 류의 꼰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박근혜 키즈' 김상민 "안녕들 하십니까..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소통을 해야한다는 것"
경향신문/정치 국회.정당/이용욱 기자/입력 : 2013-12-17 11:35:08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40)은 17일 대학가에 퍼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두고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제 마음속에 더 많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 청년본부장을 맡았으며 인수위에선 청년특위 위원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박근혜 키즈’로 불려왔다.
김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팩트가 좀 다르고 다소 자신들의 어떠한 정치적 관점이 사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과는 좀 다르게 그냥 주입되려고 하는 부분도 있다”면서도 “사회를 향해서 대화를 걸었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 좀 격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지금 살아가는 게 굉장히 궁핍하고 어렵고 또 힘든 상황들이 많다”면서 “일단 그런 지금 사람들의 마음속에 정말 행복한지, 또는 잘 지내고 있는지, 또 안녕한지를 질문이 던져졌다는 것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대자보 내용들은 상당히 정치적 이슈들이지만, 왜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 안녕한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향들이 일어난 지에 대해 포인트가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소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권이”라며 “지난 광복절 집회도 그렇지 않은가. 촛불집회를 왜 두려워하나. 그럴수록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대자보 내용이 선동적일 수 있다는 보수층의 시각에 대해선 “그 관점 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화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저도 이번 주말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서로 모여 아픔이 무엇인지 어려움이 무엇인지 토론회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은 대선불복 선언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께 약속한 것이 이뤄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며 반값등록금 공약의 이행을 촉구했다.
대학·고교생들이 교내 게시판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이자, 대학 본부와 교육청이 '학생의 정치 활동 금지'와 '환경 미화' 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하거나 경위 파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제대 "정치 관련한 내용 대자보는 붙일 수 없다"
15~17일 사이 경남지역 몇몇 대학과 고등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경상대, 경남대, 창원대, 인제대 정문과 도서관 등 학내 게시판에 대자보가 붙었고, 산청 간디고등학교 강당과 진주여고 담벼락에도 대자보가 붙었다.
경남 김해에 있는 인제대에는 20여 개 대자보가 붙었다가 대학 본부측에서 '환경미화' 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하도록 했고, 17일 오후 대자보를 붙였던 학생들이 자진 철거했다.
인제대 학생복지처 관계자는 "정치 관련한 내용의 대자보는 게시판에 붙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인제대 한 학생은 "우선 도서관 게시판에 붙여 놓았던 대자보는 면학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된다고 보고 실랑이를 벌이지 않은 채 자진 철거했고, 내일이나 모레 정문 쪽 담벼락에 다시 붙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남대 게시판에도 10여 개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는데, 16~17일 사이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다. 경남대 한 학생은 "어제 정문 앞 게시판에 네댓개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는데 오늘은 없어졌고, 누군가 강제로 뜯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경남대 도서관 게시판에도 대자보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오늘 보니 없어졌다"면서 "법정대학 쪽 게시판에는 대자보가 하나 남아 있는데, 누군가 흠집을 내어놓았다"고 덧붙였다.
교육청 "다른 학교나 학생에게 확신되지 않도록..."
▲ 진주여자고등학교 담벼락에 붙었다가 16일 아침에 철거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 |
ⓒ 오마이뉴스 독자제보 |
이런 가운데 경남도교육청은 진주여고 담벼락에 붙었던 대자보와 관련해 경위 파악에 나섰다. 진주여고 대자보는 익명으로 되어 있었고, 모두 3장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이 대자보는 16일 아침 학교 관계자에 의해 철거되었다.
진주여고 관계자는 "대자보가 붙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교육청에서 연락이 와서 경위를 파악해 보고하라고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기본법에 보면 학생은 정치적·종교적 중립 의무가 있고, 다른 학교나 학생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당 학교에 경위를 파악해서 잘 타일러라고 한 것"이라며 "학생을 징계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진주여고 담벼락에 붙었던 대자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지금 정말로 안녕치 못합니다. … 저 스스로 '깨어 있는 젊은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위선적인 겁쟁이와는 달리 정말로 용기있게 적혀져 있는 그 대자보를 보고 저는 깊은 반성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진보적인 척, 깨어 있는 척 흉내만 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미약하게 나마 실천을 해보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현 정권에 대한 수많은 기사와 글을 읽었습니다. 그 들은 모두 예외없이 저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지금의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문제인 '대학 등록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 박근혜 대통령님께서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천명하였을 때 분명 공약의 실천을 전제로 하였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 그것을 실현시키는 방법 또한 분명 마련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왜 국민들에게 한마디 설명도 없이 말을 바꾸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지금 당장 우리의 눈 앞에 닥쳐온 커다란 문제들이 많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역시 민영화입니다. … 국가의 '안녕'을 목푤 하는 정부와는 달리 사기업들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없애거나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지금 각지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꽤 큰 규모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솔직히 무섭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나 고민했어요. 모두가 주제넘은 행동이라 생각할까봐, 아직 어린 학생이 분위기에 휩쓸려 저지르는 무모한 행동이라 평할까봐.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수도 없이 생각한 고민의 답은 결국 '실천'이었습니다. 저의 보잘 것 없는 글이 진정으로 '안녕한' 사회에 아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가 거짓없이 안녕하길 바랍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약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마틴 루터 킹). 12월 22일에 스스로 수거하겠습니다. 대자보의 내용에 궁금한 점 또는 잘못된 점이 있다면 대자보를 훼손하지 마시고 반박 대자보를 게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응답하라, 2013!."
그 ‘대자보’가 마음에 들어왔다
시사인/조남진 기자/ 2013.12.16 14:03:11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12월1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두 장짜리 대자보를 붙일 때만 해도 이 정도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인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사진 맨 왼쪽)는 12월12일 오전 대자보 앞에 피켓을 들고 있었다. 주씨 곁에는 화답의 대자보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를 붙인 철학과 4학년 강태경씨도 함께 있었다. 대자보가 붙은 지 이틀 만에 30여 건의 대자보가 더 붙었다.
주씨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과 철도 민영화 등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피켓을 든 주씨 곁에는 누군가가 놓고 간 핫팩과 음료수가 줄지어 있었다. 대자보 밑에는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색색의 메모지도 수십 장 나붙었다. 서울대와 한양대, 중앙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10여 곳의 대학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12월13일 현재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에는 1만5000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조선일보>가 딴죽을 걸고 나섰다. ‘고대 대자보, 비약투성이 글’ ‘선동만 있고 팩트는 없다’라면서. 마치 국정원의 ‘댓글’ 같은 느낌으로.
ⓒ시사IN 조남진 |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전국민 ‘응답’...밀양송전탑, 의료민영화까지
페이스북에 약 23만 7천 명이 ‘좋아요’...‘우리 사회 문제 크다’ 공감도
민중의 소리/전지혜 기자/ 입력 2013-12-16 19:49:01l
대학가에 붙은 대자보 한 장이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학생들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고등학생, 주부, 직장인 등 대중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
16일 주부들이 육아와 살림 등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레몬테라스’와 ‘세이베베’ 등에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지지하는 글 수십 건이 게재됐다. 자신을 ‘연년생 아이들을 둔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엄마들 정말 안녕하십니까’라는 글에서 “현실 가능성이 없는 출산 장려정책과 복지정책, 무너진 공교육과 치솟는 사교육 열풍 속에서 안녕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묵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3년 차 직장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직장인에게 정치나 사회 문제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서 “대자보를 쓰는 것은 내 양심에 대한 고백”이라고 밝혔다. ‘철도와 의료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글도 게재됐으며 ‘대자보 릴레이’를 아파트에서도 시작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1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개설된 ‘안녕들하십니까’(facebook.com/cantbeokay) 페이지에는 16일까지 약 23만 7천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고려대학교 게시판을 가득채운 대자보ⓒ민중의소리
‘안녕들하십니까’ 첫 대자보 이후 대학생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
지난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27)씨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학내 정경대 후문에 붙였다. 그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잇따라 직위 해제되고 있는 현 사태 등을 거론하며 “하 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주씨의 대자보는 학내 재학생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주씨의 대자보 주변에 ‘안녕하지 못하다’는 학생들의 ‘응답 대자보’ 40여 장이 내걸렸다. 각각의 대자보는 철도파업, 쌍용차 해고노동자,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 현안을 담고 있었다. 서울대, 연세대, 중앙대, 성균관대, 인천대, 가톨릭대, 상명대, 성공회대, 광운대, 부산대 등 곳곳에서 대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대자보 행렬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대자보를 촬영한 사진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국내 대학은 물론 UC버클리 등 외국대학에도 대자보에 답하는 ‘응답 대자보’가 확산됐다.
고등학생과 기성세대도 반응...대자보 반발 움직임도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음은 고등학생들 안에서도 큰 울림을 일으켰다. 경기 성남 효성고등학교 3학년 정현석 군은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권리조차 무관심하게 만들었다”며 글을 게재했다. 정 군은 이 글을 통해 “언젠가부터 매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면서 “입시와 취업도 물론 중요한데, 두고만 보다가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졌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기성세대들도 글과 댓글 등으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우리 아들딸을 안녕하지 못하게 만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럽다. 젊은 지성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대들 덕분에 잠시 안녕한다” 등의 글을 올렸다.
주현우 씨의 뜻에 공감하는 대학생 등 300여 명은 지난 14일 오후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서 모인 뒤 시청 ‘밀양 고 유한숙 어르신 추모제’에 이어 서울역 ‘철도 민영화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오자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4일 보수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고려대 철도파업 대자보를 찢어버렸다는 글과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일베 게시판에는 대자보를 붙인 학생을 성희롱하는 내용도 올라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대자보에 담긴 정치·사회적 현안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필자가 과거 진보신당 일인시위에 동참했던 당원”이라며 정치적 의도 가능성을 주장했다. 보수성향 대학생 단체 ‘자유대학생연합’은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반박 대자보 공개모집에 나서면서 참여 비용과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가 대필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 “자신들이 돌아봐도 ‘안녕하지 않기’ 때문...”
“KTX나 밀양 외에도 ‘왜 정부가 국민 목소리에 귀 안 기울이느냐’ 불만 많아”
대자보 한 장이 이처럼 높은 관심을 이끌어 낼지는 당사자도 몰랐다. 16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주현우씨는 “(이렇게 화제가 될 줄)전혀 몰랐다”며 “이러이러한 상황들이 있는데 정말 어떠냐, 안녕들 하신가라는 물음을 던진 것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글의 내용을 보고 ‘안녕들 하신가’라는 기초적인 의문에 대해 자신들이 되돌아봤을 때 ‘안녕하지 않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는 ‘SBS전망대’에 출연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 현상을 분석했다.
이 교수는 대자보 내용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크다고 느꼈다’면서 “일단 집권을 하게 되면 이슈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권이)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2030 세대가 이대로 잠잠해질 것인가에 의구심을 가졌었다. 우연한 계기에 이렇게 폭발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등록금과 취직 문제 등 개인적인 관심사를 넘어서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새로 생긴 KTX 같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면서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사회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교수는 “사실 KTX나 밀양 이런 문제의 실제적인 이슈 외에도 이런 문제에 대해 ‘왜 정부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안 기울이느냐. 국민과 대화를 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많이 있다”고 풀이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로 촉발된 대학가의 철도민영화 반대 움직임. 14일 오후3시께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열린 성토대회에는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과 직장인까지 참석해 철도민영화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민중의소리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신문의견-10개]
1.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 기성세대는 과연 안녕한가 | 우연한 기회에 수도권 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이 유난히 순하고 착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in) 서울’ 대학이 아니면 더 악착같아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을 텐데….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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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아니 e메일만 봐도 학생들 사고력과 표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불안할 정도예요. 이번 기회에 ‘읽고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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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동아일보- [사설]‘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건강한 토론 문화로 이어지길 | 젊은이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이 문제이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표시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논쟁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부 정책은 ‘철도와 의료 민영화’라고 전제하고, 민영화가 되면 요금이 10배 넘게 뛸 것이라는 ‘괴담’ 수준의 주장이 오가고 있다. 정부는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 정책은 영리법인화와 다르다고 거듭 확인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는 말이 있듯이 정확한 사실 위에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
정당들이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만든 것은 젊은 세대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결실을 봤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청년들의 좌절감을 해소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끼리 때로는 정교하지 않은 논리로 치고받는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생경하고 거북할 수도 있다. 이들의 잘못은 잘못대로 지적하되 그 뒤에 숨어 있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
3.조선일보-[박두식 칼럼] 대학생 대자보 한 장에 들썩이는 '병(病)든 정치' | 대자보를 썼다는 대학생 역시 좌파 정당의 당원이다. 좌파는 올해 내내 '박근혜 독재론'을 펴 왔다. 지난 몇 달간은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쓴 시(詩)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시 역시 대자보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중략)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십년 전 대학가에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유행했던 시까지 꺼내 들 만큼 좌파는 다급했다. |
젊은 층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간단한 인사말 속 그 무엇인가에 마음이 움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사회라면 그 공동체는 이미 심각한 중증(重症) 위기를 맞았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독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층의 불안과 좌절·낙담을 풀어줄 정권의 능력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야권 역시 괜히 정치적 헛물을 켤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청년 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야권이 그토록 갈망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지름길이다. |
4.한국일보-[김경준 기자]'안녕들 하십니까' 열기 뒤에 반기 | 철도파업 등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안녕' 대자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6일 경북대에 이어 17일 고려대에 반박 대자보가 등장했다. 자신을 '고려대 13학번 이모'라고 밝힌 한 학생은 대자보에서 "철도노조 파업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등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현직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논란 등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
이처럼 대자보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다양한 행동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익명성을 탈피한 진정성이 공감을 이끌어 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인터넷이나 SNS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익명성 문화에서 벗어나 대자보에 실명을 공개하고 손글씨를 활용해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며 "여기에 더 나은 자아를 완성하려는 젊은 세대의 욕구가 결합해 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
5.서울신문-[씨줄날줄-손성진 수석 논설위원]대자보 파문 | 1504년에는 연산군의 폭정을 비난하는 괘서가 장안 곳곳에 나붙었다. 1547년에는 문정대비의 수렴청정을 비방하는 벽서가 양재에서 발견돼 정미사화(丁未士禍)의 발단이 됐다. 1804년에는 이달우와 정의강의 주도로 삼정(三政)문란을 공격하는 괘서가 서울의 사대문에 붙었고 두 사람은 극형을 당했다. 괘서의 효시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고려 때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형태로 오늘날에도 쓰는 ‘글을 던지다’는 의미의 ‘투서’(投書)가 있고 ‘비서’(飛書)라고도 불렀다. |
1986년 서울대에서는 불온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운동권 학생 수십명이 검거되거나 수배당했다. 이른바 ‘서울대 대자보 사건’이다. 쓴 학생을 밝혀내기 위해 경찰은 370여명의 필적감정을 벌였다. 언론자유화와 인터넷,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보급으로 뜸했던 대자보가 부활했다. 학생들 사이에 작금의 현실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내용을 떠나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간 아날로그식 표현 방식이 대중의 시선을 잡은 셈이다. |
6.한겨례신문-[송채경화 기자]“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못마땅한 사람들 |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낳은 대학생 주현우(27)씨가 쓴 최초의 대자보에서 사실관계 오류가 발견됐다며 "학점으로 평가한다면 C학점"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지적을 하는 등 보수 인사들이 대자보 열풍 깎아내리기에 나서면서, 누리꾼들은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이 때문에 누리꾼들은 전국 곳곳에 열풍이 불고 있는 대자보 릴레이 현상의 본질에 주목하지 않고 꼬투리만 잡고 있는 보수 인사들의 편협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디 @so****를 쓰는 누리꾼은 “(하 의원의 주장에서) 맥락 보지 않고 개별 문항 가지고 상대 정파 까던 습성이 남아 있는 ‘내가 대자보 써봐서 아는데’ 류의 꼰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
7.경향신문-[이용욱 기자]'박근혜 키즈' 김상민 "안녕들 하십니까..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소통을 해야한다는 것" | 새누리당 김상민의원(40)은 “대자보 내용들은 상당히 정치적 이슈들이지만, 왜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 안녕한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향들이 일어난 지에 대해 포인트가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소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권이”라며 “지난 광복절 집회도 그렇지 않은가. 촛불집회를 왜 두려워하나. 그럴수록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
대자보 내용이 선동적일 수 있다는 보수층의 시각에 대해선 “그 관점 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화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저도 이번 주말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서로 모여 아픔이 무엇인지 어려움이 무엇인지 토론회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은 대선불복 선언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께 약속한 것이 이뤄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며 반값등록금 공약의 이행을 촉구했다. |
8.오마이뉴스[윤선효 기자]대학본부-교육청, 정치활동 금지·환경 미화 이유 들어 철거-경위파악 | 대학·고교생들이 교내 게시판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이자, 대학 본부와 교육청이 '학생의 정치 활동 금지'와 '환경 미화' 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하거나 경위 파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기본법에 보면 학생은 정치적·종교적 중립 의무가 있고, 다른 학교나 학생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당 학교에 경위를 파악해서 잘 타일러라고 한 것"이라며 "학생을 징계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
9.시사인[조남진 기자]그 ‘대자보’가 마음에 들어왔다 |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12월1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두 장짜리 대자보를 붙일 때만 해도 이 정도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인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사진 맨 왼쪽)는 12월12일 오전 대자보 앞에 피켓을 들고 있었다. 주씨 곁에는 화답의 대자보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를 붙인 철학과 4학년 강태경씨도 함께 있었다. 대자보가 붙은 지 이틀 만에 30여 건의 대자보가 더 붙었다. |
주씨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과 철도 민영화 등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피켓을 든 주씨 곁에는 누군가가 놓고 간 핫팩과 음료수가 줄지어 있었다. 대자보 밑에는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색색의 메모지도 수십 장 나붙었다. 서울대와 한양대, 중앙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10여 곳의 대학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12월13일 현재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에는 1만5000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
10. 민중의 소리[전지혜 기자]‘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전국민 ‘응답’...밀양송전탑, 의료민영화까지 | ‘3년 차 직장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직장인에게 정치나 사회 문제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서 “대자보를 쓰는 것은 내 양심에 대한 고백”이라고 밝혔다. ‘철도와 의료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글도 게재됐으며 ‘대자보 릴레이’를 아파트에서도 시작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1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개설된 ‘안녕들하십니까’(facebook.com/cantbeokay) 페이지에는 16일까지 약 23만 7천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음은 고등학생들 안에서도 큰 울림을 일으켰다. 경기 성남 효성고등학교 3학년 정현석 군은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권리조차 무관심하게 만들었다”며 글을 게재했다. 정 군은 이 글을 통해 “언젠가부터 매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면서 “입시와 취업도 물론 중요한데, 두고만 보다가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졌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
신문명과 제목 | 차별문장 | 대안 |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신문의견(2013.12.18.수)-10개-짜깁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인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주현우씨(사진 맨 왼쪽)는 12월12일 오전 대자보 앞에 피켓을 들고 있었다. 주씨 곁에는 화답의 대자보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를 붙인 철학과 4학년 강태경씨도 함께 있었다. 대자보가 붙은 지 이틀 만에 30여 건의 대자보가 더 붙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12월1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두 장짜리 대자보를 붙일 때만 해도 이 정도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
주씨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과 철도 민영화 등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좀 더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자보를 붙였다고 한다. 피켓을 든 주씨 곁에는 누군가가 놓고 간 핫팩과 음료수가 줄지어 있었다. 대자보 밑에는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색색의 메모지도 수십 장 나붙었다. 서울대와 한양대, 중앙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10여 곳의 대학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나붙고 있다. 12월13일 현재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에는 1만5000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음은 고등학생들 안에서도 큰 울림을 일으켰다. 경기 성남 효성고등학교 3학년 정현석 군은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의 권리조차 무관심하게 만들었다”며 글을 게재했다. 정 군은 이 글을 통해 “언젠가부터 매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아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면서 “입시와 취업도 물론 중요한데, 두고만 보다가는 내가 대학생이 되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졌다. 그래서 저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3년 차 직장인’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직장인에게 정치나 사회 문제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서 “대자보를 쓰는 것은 내 양심에 대한 고백”이라고 밝혔다. ‘철도와 의료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글도 게재됐으며 ‘대자보 릴레이’를 아파트에서도 시작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1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개설된 ‘안녕들하십니까’(facebook.com/cantbeokay) 페이지에는 16일까지 약 23만 7천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대학·고교생들이 교내 게시판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이자, 대학 본부와 교육청이 '학생의 정치 활동 금지'와 '환경 미화' 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하거나 경위 파악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기본법에 보면 학생은 정치적·종교적 중립 의무가 있고, 다른 학교나 학생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해당 학교에 경위를 파악해서 잘 타일러라고 한 것"이라며 "학생을 징계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김상민의원(40)은 “대자보 내용들은 상당히 정치적 이슈들이지만, 왜 사람들이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정말 안녕한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향들이 일어난 지에 대해 포인트가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소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정권이”라며 “지난 광복절 집회도 그렇지 않은가. 촛불집회를 왜 두려워하나. 그럴수록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대화하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대자보 내용이 선동적일 수 있다는 보수층의 시각에 대해선 “그 관점 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대화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저도 이번 주말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서로 모여 아픔이 무엇인지 어려움이 무엇인지 토론회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상민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은 대선불복 선언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께 약속한 것이 이뤄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며 반값등록금 공약의 이행을 촉구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을 낳은 대학생 주현우(27)씨가 쓴 최초의 대자보에서 사실관계 오류가 발견됐다며 "학점으로 평가한다면 C학점"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지적을 하는 등 보수 인사들이 대자보 열풍 깎아내리기에 나서면서, 누리꾼들은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누리꾼들은 전국 곳곳에 열풍이 불고 있는 대자보 릴레이 현상의 본질에 주목하지 않고 꼬투리만 잡고 있는 보수 인사들의 편협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디 @so****를 쓰는 누리꾼은 “(하 의원의 주장에서) 맥락 보지 않고 개별 문항 가지고 상대 정파 까던 습성이 남아 있는 ‘내가 대자보 써봐서 아는데’ 류의 꼰대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언론자유화와 인터넷,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보급으로 뜸했던 대자보가 부활했다. 학생들 사이에 작금의 현실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내용을 떠나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간 아날로그식 표현 방식이 대중의 시선을 잡은 셈이다.
괘서의 효시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고려 때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형태로 오늘날에도 쓰는 ‘글을 던지다’는 의미의 ‘투서’(投書)가 있고 ‘비서’(飛書)라고도 불렀다
1504년에는 연산군의 폭정을 비난하는 괘서가 장안 곳곳에 나붙었다. 1547년에는 문정대비의 수렴청정을 비방하는 벽서가 양재에서 발견돼 정미사화(丁未士禍)의 발단이 됐다. 1804년에는 이달우와 정의강의 주도로 삼정(三政)문란을 공격하는 괘서가 서울의 사대문에 붙었고 두 사람은 극형을 당했다.
1986년 서울대에서는 불온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운동권 학생 수십명이 검거되거나 수배당했다. 이른바 ‘서울대 대자보 사건’이다. 쓴 학생을 밝혀내기 위해 경찰은 370여명의 필적감정을 벌였다.
대자보를 썼다는 대학생 역시 좌파 정당의 당원이다. 좌파는 올해 내내 '박근혜 독재론'을 펴 왔다. 지난 몇 달간은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쓴 시(詩)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시 역시 대자보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중략)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십년 전 대학가에서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유행했던 시까지 꺼내 들 만큼 좌파는 다급했다.
젊은 층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간단한 인사말 속 그 무엇인가에 마음이 움직인 것만은 분명하다.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우리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외치는 사회라면 그 공동체는 이미 심각한 중증(重症) 위기를 맞았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독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층의 불안과 좌절·낙담을 풀어줄 정권의 능력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야권 역시 괜히 정치적 헛물을 켤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청년 문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야권이 그토록 갈망하는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는 지름길이다.
철도파업 등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안녕' 대자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6일 경북대에 이어 17일 고려대에 반박 대자보가 등장했다. 자신을 '고려대 13학번 이모'라고 밝힌 한 학생은 대자보에서 "철도노조 파업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등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현직 국회의원의 내란음모,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논란 등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대자보에서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다양한 행동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익명성을 탈피한 진정성이 공감을 이끌어 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인터넷이나 SNS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익명성 문화에서 벗어나 대자보에 실명을 공개하고 손글씨를 활용해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며 "여기에 더 나은 자아를 완성하려는 젊은 세대의 욕구가 결합해 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이 문제이지,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표시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논쟁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일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부 정책은 ‘철도와 의료 민영화’라고 전제하고, 민영화가 되면 요금이 10배 넘게 뛸 것이라는 ‘괴담’ 수준의 주장이 오가고 있다. 정부는 수서발 KTX를 민영화하지 않을 것이며 의료 정책은 영리법인화와 다르다고 거듭 확인했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는 말이 있듯이 정확한 사실 위에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젊은이들끼리 때로는 정교하지 않은 논리로 치고받는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생경하고 거북할 수도 있다. 이들의 잘못은 잘못대로 지적하되 그 뒤에 숨어 있는 갈증을 해소해 주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정당들이 총선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만든 것은 젊은 세대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결실을 봤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청년들의 좌절감을 해소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우연한 기회에 수도권 대학에 갔다가 학생들이 유난히 순하고 착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in) 서울’ 대학이 아니면 더 악착같아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을 텐데….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SKY(서울·고려·연세대)에 못 갔지.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은 나밖에 모르는 아이, 한 문제라도 틀리면 잠 못 자는 아이, 독한 아이가 공부도 잘하는 거야.”
"리포트, 아니 e메일만 봐도 학생들 사고력과 표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어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이 불안할 정도예요. 이번 기회에 ‘읽고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섣불리 대자보에 이념딱지를 붙이려 해서도, 그 바람에 편승하려 해서도 안 된다. 팩트가 틀렸다고? 팩트는 토론 속에 바로잡힐 것이다. 어쩌면 문제는 기성세대다. 이젠 젊은 그들에게 “뒤처지면 죽는다”고 독려해 온 우리 자신을 향해 안부를 물을 차례 아닌가.
- 2013년 12월18일 수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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