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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강연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6,18,19)-[행복하십시오/춤과 노래 찬양/종교예술 통해 하느님께 가까이]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6)"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10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처음 '행복론'이라는 강의를 열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론이 필요 있을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수강생 7명으로 시작한 강의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 1년에 1000명 이상이 듣는 명강의가 됐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영국 BBC방송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한 '행복의 십계명'을 정리한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행복을 느끼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첫째, 운동하라. 행복의 첫째 조건은 건강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고 했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고 자신감도 없어질 뿐만 아니라 돈도 빠져나간다.

 둘째, 감사하라!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하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고 해도 가질 수 없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억울하고 분한 것만 기억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에 감사하자.

 셋째, 대화하라. 평균수명 100살 시대 숙제 중의 숙제다. 영적으로 맞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영적으로 이끌어줄 스승을 만나기 위해 적극성을 가지고 투자하라.

 넷째, 공부하라. 초등학교 6년, 중ㆍ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동안 배운 지식으로 50살까지 살아간다. 100살까지 살면서 남은 50년을 공부하지 않고 그냥 살 수 있을까? 공부하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고, 역동적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다섯째, TV 시청을 반으로 줄여라. 현대의 하느님은 TV다. 거의 모든 가정의 거실 중앙에 TV가 놓여있다. TV를 치우면 대화, 운동, 독서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여섯째, 신앙생활을 하라! 하느님의 진리에 따라 살지 않으면 인간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향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 영혼 구원을 위한 신앙생활은 행복의 기초다.

 일곱째, 웃어라. 웃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최고 지름길이다. 인간은 웃느냐 웃지 않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 웃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기에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여덟째, 먼저 전화하라. 누군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다가가라.

 아홉째,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써라.

 열째, 이웃에게 친절히 하라. 자기 반성의 신앙생활은 이웃사랑으로 꽃을 피워야 한다. 우리는 너무 인색하게 산다. 주변을 돌아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여러분 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당부처럼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온 만물의 주인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방오리 수컷

  • (16)"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  10년 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처음 '행복론'이라는 강의를 열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하버드 대학에서 행복론이 필요 있을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수강생 7명으로 시작한 강의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해 1년에 1000명 이상이 듣는 명강의가 됐다.

 

 

영국 BBC방송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제시한 '행복의 십계명'을 정리한다.

 

첫째, 운동하라. 행복의 첫째 조건은 건강이다.

둘째, 감사하라!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하라. 

셋째, 대화하라. 영적으로 맞는 사람과 이야기하라.
넷째, 공부하라. 공부하면 세상에는 할 일이 많다.

다섯째, TV 시청을 반으로 줄여라.

여섯째, 신앙생활을 하라! 영혼구원은 행복의 기초다.
일곱째, 웃어라. 행복으로 가는 최고 지름길이다.

여덟째, 먼저 전화하라. 먼저 다가가라.
아홉째,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써라.
열째, 이웃에게 친절하라. 신앙은 이웃사랑으로 꽃을 피워야 한다.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8) 춤과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찬양



  우리가 성당에 나오는 이유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을 드려야 할까?

 우리는 행복한 순간이 오면 펄쩍펄쩍 뛸 만큼 기쁘다고 표현한다. 인간은 기분이 아주 좋으면 춤을 추게 돼 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느낄 때 춤을 춰야 한다. 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다.

 모든 종교에는 춤이 존재한다. 불교의 승무가 그것이다. 특히 스님들이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쓴 채로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추는 춤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불교가 정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불교는 동적인 종교다. 108배, 3000배만 봐도 그 성격을 알 수 있다.

 개신교에는 '워십댄스'라는 것이 있다. 영어의 워십(worship)은 섬김, 숭배,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수백 명의 신도들이 한 시간 동안 춤을 추며 예배하는 모습은 개신교회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도 춤에 대한 부분이 많다.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할 때 홍해바다를 건너자마자 "미르얌이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탈출 15,20).

 구약성경에는 춤이 자주 등장한다. 다윗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고 나서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사무엘하 6,14). 그러자 사울의 딸 미칼이 임금님의 체면도 잊은 채 춤을 춘 다윗을 비난하지만, 다윗은 "주님께서는 당신 아버지와 그 집안 대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바로 그 주님 앞에서 내가 흥겨워한 것이오"(사무엘하 6,21)하고 당당히 말한다. 성경 전반에 걸쳐 살펴보면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드릴 때, 성조들은 춤과 노래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있다.

 힐데가르트(1098~1179) 수녀는 월요일마다 성당에 들러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하느님 앞에서 춤을 췄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천주교에서는 그나마 성령세미나, 성령기도회에서 찬양의 맥을 잇고 있다. 성령세미나에 대한 편견을 가진 교우들도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또 미사 전례에 맞춘 찬무를 통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공동체들도 있다. 익숙지 않지만 이같은 긍정적 변화는 살아 움직이는 전례를 만들어줄 것이다.

 성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똑같은 성가도 천주교에서는 엄숙하다 못해 우울한 분위기에서 부르지만 개신교에서는 기쁘고 신나게 부른다. 가톨릭 성가는 대부분 고전파 작곡가,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곡들로 만들어져 부르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교회는 신자들이 부르기 쉽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성가대가 갖는 고질적 어려움 중 하나는 단원확보다. 노래방에 가면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성가대에 들어오라고 하면 꽁무니를 뺀다. 성가 중에는 대중과 맞지 않는 곡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고백이다. 진정한 종의 모습은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리로 돌려드리고,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춤과 노래를 통한 경배로 하느님과 나와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새 2마리

  •   (18) 춤과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찬양

 

 

  • 우리가 성당에 나오는 이유는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찬양을 드려야 할까?

 

  •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느낄 때 춤을 춰야 한다. 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다.
  •  성경 전반에 걸쳐 살펴보면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드릴 때, 성조들은 춤과 노래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고 있다.
  •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고백이다. 진정한 종의 모습은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리로 돌려드리고, 하느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춤과 노래를 통한 경배로 하느님과 나와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황창연신부의 행복특강] 19. 종교 예술 통해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천주교 신자들에게 자유기도는 쉽지 않다. 구역ㆍ반 모임이나 소공동체 모임에서 자유기도를 할 시간을 주면 서로 눈치만 보다가 정작 기도를 못하고 넘어가는 때도 있다.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성당에 나오면서 자유기도조차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염경기도는 생활 속에서 익숙해져 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묵주기도 등 반복적으로 외우는 기도는 잘한다. 그에 반해 자유기도가 어렵다면 시편을 하나씩 외우자. 의무적으로 머릿속에 넣지 말고 구절마다 의미를 새김으로써 일상에서 꺼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간결하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편은 깊은 신앙을 갖고 기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 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

 그렇다면 묵상기도는 잘하고 있는가?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 속에 살게 해주심에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청하는 기도와 반성하는 기도가 먼저인 경우가 많다. 시편기도도 할 줄 모르고, 자유기도를 통해 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우리가 얼마나 낮은 신앙의 영혼을 가졌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기도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고요한 상태가 돼야 영원한 하느님을 느끼고 맛볼 수 있다. 세상은 커다란 수도원이며, 우리는 구도자다. 마음의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도 끝에 찾아온다.

 천주교는 '그림'이 발달해 있다. 사제와 수녀의 복장도 그림이다.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성스러움은 거룩한 느낌을 갖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강당에 들어갈 때와 성당에 들어갈 때 느낌이 다른 것은 스테인드글라스와 이콘, 성물 등에 의한 시각적 효과 때문이다.

 이콘에는 성경 속 예수님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베드로의 발을 씻기고 입을 맞추시는 예수님은 가장 비천한 종으로 낮아지셨음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너무 감격스러워 예수님을 끌어안고 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도할 수 있고 말씀에 머물러 묵상할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집안을 거룩하게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 집안에 이콘을 한두 점씩 걸고 신앙적 분위기를 조성해보자.

 이슬람이 가톨릭보다 교세가 앞섰다. 무슬림들은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점점 느슨해지는 것 같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대에 신앙 선조들은 산에서 숨어 지내느라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 땅에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 우리는 현재 너무 쉽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깊이 느끼지 못하고 쉽게 떠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본질을 잡아야 한다. 신앙의 본질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예술을 사랑하자. 춤ㆍ성가ㆍ시ㆍ그림을 통해 하느님을 열심히 찬양하고 경배할 때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천주교가 찬미의 종교,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종교가 되기를 바란다.

 

 

 

쇠백로 비행

  • 19. 종교 예술 통해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 속에 살게 해주심에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청하는 기도와 반성하는 기도가 먼저인 경우가 많다. 시편기도도 할 줄 모르고, 자유기도를 통해 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우리가 얼마나 낮은 신앙의 영혼을 가졌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  기도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고요한 상태가 돼야 영원한 하느님을 느끼고 맛볼 수 있다. 세상은 커다란 수도원이며, 우리는 구도자다. 마음의 평화는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도 끝에 찾아온다.

 

 

  • 천주교는 '그림'이 발달해 있다. 사제와 수녀의 복장도 그림이다.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성스러움은 거룩한 느낌을 갖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도할 수 있고 말씀에 머물러 묵상할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집안을 거룩하게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 집안에 이콘을 한두 점씩 걸고 신앙적 분위기를 조성해보자.

 

 

하느님을 찬미하는 예술을 사랑하자. 춤ㆍ성가ㆍ시ㆍ그림을 통해 하느님을 열심히 찬양하고 경배할 때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천주교가 찬미의 종교, 하느님께 영광 드리는 종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