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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인

성남학아카데미 강의 '남이흥 장군' 알기-인조임금이 곤룡포 덮어준 의관(2013.4.3.목)/양수리 두물머리 14장

[성남학아카데미 강의 '남이흥 장군' 알기]

 

서현 문화의 집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12시에 이루어지는 성남학아카데미' 강의를 오늘 들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성남의 애국 충신 '남이흥' 장군>이고...강사는 전 성남문화원장이신 '한춘섭' 님이다...^-^

강의에서 들은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겠는데...들으면서 필기한 내용이므로...혹여 오류가 있을 수 있겠다...ㅎㅎ...^-^

 

성남과 관련있는 애국 충신은 ①'윤집/오달제/홍익한'의 삼학사 ② 이상안 (하대원동에 사당, 정묘호란) ③이경류(임진왜란, 중앙공원에 정려각, 말무덤)

④장원공 '한효순'(율동공원, 태재고개) ⑤윤경지(복정동에 사당) ⑥남이흥(정묘호란, 충장공) 등이 있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③이경류~~~

분당 중앙공원에 이경류 정려각이 중앙공원에 있고...500리길을 달려와 전사소식을 전한 말무덤과...그 위에 이경류의 옷으로 '의장'하여 만든 무덤이 있다...^-^

정조임금이 제문을 지었는데..."병조좌랑 '이경류', 형 대신 전쟁터에 나가 어린나이에도 용맹을 떨쳤다.......생략....ㅎㅎ...^-^

 

④장원공 '한효순'~~~

사당, 비석이 복정동에 있는데, 현재 문화재 지정 안되었는데...1543년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관찰사...문관이라 전쟁에 안나가도 되는데 출전하여 이순신 장군 수하에서 병참보급부대 수장으로 활동하며 '신기비결' 저술했는데...삼군사관학교 교재로 채택되어 있다고 함...임진왜란 때 전사했는데, 죽음을 각오(?)했는지 살아서 본인이 비문이 작성했다고 함...^-^

 

 

⑥남이흥(정묘호란, 충장공)~~~

안주의 '충민사'에 영정과 함께 제향 되었는데...'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1등공신'책록...훗날 영의정에 추증...의춘부원군 추봉...시호 충장공...^-^

 

정묘호란 때 평안병사로서 안주성 싸움에서 후금군과 일진일퇴, 적을 유인하여 성안의 중영루로 끌여들여 화약고에 불을 질러 적과 함께 순절...불에 타 죽은자가 1,000여명, 전사자수는 3,000여명이라고 한다....승전한 후금군 장수 '아민'도 남이흥 장군 이하 조선의 장렬한 순국에 감복하여 조선군 포로 수백명을 풀어주며 고향에 가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남이흥의 비장한 순국/남균우 저자/한누리 미디어/1993.11월 발행>책의 서문(이성무 박사 글)에서 명나라 황궁으로 통하는 옥화관 입구에 '남이흥' 이름 새겨진 현수막을 달아 추모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ㅎㅎ...^-^

 

남이흥 장군 장례 때 참석한 인조임금이 곤룡포를 벗어서 '의관'을 덮었다...!!!

 

남이흥 장군의 원래 무덤자리는 "광주군 중부면 탄리(숯골, 숯마을)"인데...구 시청 철제 야외 주차장 자리이다...^-^

1960년대 서울의 불법주택을 철거하여 광주대단지...태평동 공동묘지에 불하할 때 남이흥 장군의 무덤이 부친의 무덤이 있던 충남 당진으로 천장되었다...무덤 파쇄시키는데 3일이 걸렸다고 함...워낙 단단하게 무덤 조성하여서...인조의 곤룡포 등 500여가지 부장품이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되었는데...충남 당진의 무덤 속에는 30여점이 들어가고...나머지는 밖에 그대로 있다고 함...당진시에서는 5월달에 추모행사를 한다고 함...^-^

 

구시청 앞 도로 이름을 '충장로'로 명명하려 시도했으나...실현되지 못하고...구시청 입구 골목길을 '충장길'로 붙여 팻말만 설치하였다...^-^

 

☞양수리 탐방을 갔을 때...떠드렁섬에 관한 전설에서... 이괄과 청개구리에 관한 전설을 재미있게 들었는데...

남이흥 장군이 청개구리 같은 말썽꾸러기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1등공신에 책록되었다니...기억이 잘~ 된다...ㅎㅎ...^-^

 

- 2014년 4월3일 목요일...수산나 -

 

 

양평 떠드렁산 설화

 

 

양평읍 오빈리와 양근리 사이 강가에 조그마한 바위섬이 있는데 일명 떠드렁산이라 한다.

용문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하나가 덕평리를 지나 오빈리와 양근리를 경계지으며 강가로 뻗어나왔는데 마치 물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형국이다. 위쪽은 바위산이고 그 아래로 모래가 쌓여 크기는 작지만, 제법 섬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떠드렁산 방향으로 돌아 국도가 나있어서 매일 보고 다녔는데 몇해 전 중간을 관통하여 길을 곧장 뚫으며 섬 같은 동산 하나를 더 만들어 놓았다

바로 그 떠드렁산이 인조반정의 주역 이괄의 부친(이육)의 묘가 있었다는 곳이다.

평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이육은 용문산의 정기가 힘차게 뻗어 강가에 뭉쳐있는 떠드렁산을 보고 아들들에게 죽으면 그곳에 묻어달라 유언했다 한다. 그리고 시신을 바위 밑에 강 아래를 향해 거꾸로(엎어져) 묻어 달라고 했다. 氣가 모여있는 곳의 금개구리가 한양을 향해 내려가는 형국(金蛙臥形)이다.

그러나 평소 아버지 말씀에 늘 반대로만 행하던 이괄이 정작 부친이 돌아가자 떠드렁산에 묻기는 하되 마지막 효도를 한답시고 위를 향해 똑바로 묻어 장사지냈다.

그리고 몇해 후 이괄이 광해군을 물리치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으나 논공행상에서 밀려 다시 반정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했다. 그러나 정충신이 이끈 관군에게 패하고 수하장수들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여 결국 삼일천하로 끝나고 실패하고 죽임을 당한다.

평소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란 글귀를 좋아했다 했는데 그렇게 된 셈이다.

역적으로 몰린 이괄은 삼족이 멸하게 되고 당연히 그의 부친묘는 파혜쳐 부관참시를 당했다.

그 때 이괄을 묘를 파혜쳐 보니 똑바로 묻었던 시신이 개구리가 한양을 향해 가려고 몸부리치듯 반쯤 돌아간 상태로 있었다 한다. 그 후 떠드렁산은 버려진 섬이 되고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다행이 최근 양평군에서 떠드렁산 일대를 공원화 하기로 하고 인공폭포, 정자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다.

이 설화는 한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청개구리이야기’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말씀이라면 늘 거꾸로 행동할 정도로 말썽꾸러기 청개구리 소년에게 반대로 일러주면 똑바로 해동할 것 같은 생각에 어머니가 마지막 유언을 내렸다. “내가 죽으면 강가 모래에 묻어다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묘를 산에 쓸 줄 알았지만, 청개구리 아들은 마지막 효도를 한답시고 유언대로 강가에 묻었다. 그 후 비만 내리면 어머니 무덤이 쓸려갈까봐 비만 내리면 ‘개골개골’운다고 전해져 온다.

원형에서 약간 변형되기 했지만, 청개구리 설화는 분명 “양평 떠드렁산 이괄의 부친 묘 설화”라 할 수 있다[출처]다음 카페

 

 

 양수리 두물머리 떠드렁섬 전설 1

 

 양수리 두물머리 2...약도

 

 양수리 두물머리 3....떠드렁산...

양평읍 오빈리와 양근리 사이 강가에 조그마한 바위섬이 있는데 일명 떠드렁산이라 한다.

용문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하나가 덕평리를 지나 오빈리와 양근리를 경계지으며 강가로 뻗어나왔는데 마치 물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형국이다. 위쪽은 바위산이고 그 아래로 모래가 쌓여 크기는 작지만, 제법 섬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떠드렁산 방향으로 돌아 국도가 나있어서 매일 보고 다녔는데 몇해 전 중간을 관통하여 길을 곧장 뚫으며 섬 같은 동산 하나를 더 만들어 놓았다

바로 그 떠드렁산이 인조반정의 주역 이괄의 부친(이육)의 묘가 있었다는 곳이다.

 

 양수리 두물머리 4

 

 양수리 두물머리 5

 

 양수리 두물머리 6

 

 양수리 두물머리 7...두강승유도

 

 양수리 두물머리 8...이정표

 

 양수리 두물머리 9...느티나무

 

 양수리 두물머리 10...돛단배 조형물

 

 양수리 두물머리 11...느티나무

 

 양수리 두물머리 12...연밭길

 

 양수리 두물머리 13...연밭길

 

양수리 두물머리 14...연밭길 매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