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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정민의 世說新語[296] 용서성학 (傭書成學)(2015.1.7.수)/ 홍성사랑 국화축제장 등 6장

 

 정민의 世說新語 [296] 용서성학 (傭書成學)
입력 : 2015.01.07 03:05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이덕무(李德懋)가 이서구(李書九)에게 쓴 편지에 "옛날에 용서(傭書)로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길래 내가 너무 부지런하다고 비웃은 적이 있었소. 이제 갑자기 내가 그 꼴이라 거의 눈이 침침하고 손에 굳은살이 박일 지경이구려. 아! 사람이 진실로 스스로를 요량하지 못하는 법이오"라고 쓴 것을 보았다.

이때 용서는 책을 빌려 읽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남을 위해 책을 베껴 써주는 것을 말한다. 용(傭)은 품팔이의 뜻이다. 이덕무가 이서구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 "그대가 내게 장서(藏書)를 맡겨 베껴 쓰고 교정 보고 평점까지 맡기려 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소"라고 쓴 것을 보면 그가 젊은 시절 용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갔던 딱한 형편이 짐작된다. 이런 내용도 있다. "새해인데 사람은 점점 묵어지니 군자는 마땅히 명덕(明德)에 힘써야 할 것이오. 창문의 해가 따스해 벼루의 얼음이 녹으니(窗日暄而硏氷釋) 예전 일과를 되찾고자 하오. '전당시(全唐詩)'를 차례로 보내주면 좋겠소." 글씨 쓸 거리를 달라는 얘기다. 벼루의 얼음 녹는 소리가 눈물겹다.

이덕무의 손자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중 '초서변증설(鈔書辨證說)'에서 이렇게 썼다. "내 할아버지 되시는 청장공(靑莊公·이덕무의 호)께서는 직접 책 몇 천 권을 베껴 쓰셨다. 파리 대가리만 한 가느다란 해서로 육서(六書)의 서법에 따라 써서 한 글자도 속된 모양새가 없었다. 정조 임금 시절 왕명을 받들어 책을 편집할 때 내부(內府)에 남은 조부의 필적 또한 백여 책 분량이 더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베껴 쓰기 시작한 이래로 이처럼 대단한 예는 없었다." 갑자기 규장각 책장 어딘가에 끼어 있을 이덕무가 베껴 쓴 책이 궁금해진다.

용서 도중 자신을 위해 한 부씩 더 옮겨 적어 가며 이덕무는 공부했다. 겨울엔 동상으로 열 손가락 끝이 밤톨만 하게 부어 올라서도 벼루의 얼음을 호호 녹여가며 계속 베껴 썼다. 용서성학(傭書成學)! 그는 베껴 쓰기로 학문을 이루어 남이 넘보지 못할 우뚝한 금자탑을 세웠다. 새해에는 자꾸 투덜거리지 말아야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이덕무(1741∼1793). 실학자.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 아정(雅亭) · 청장관(靑莊館) · 영처(嬰處) · 동방일사(東方一士) ·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이성호(李聖浩)의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서자였기 때문에 관직에 크게 오르지는 못했지만 박학다재한 학문, 뛰어난 서체와 문장, 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다. 1778년 심염조(沈念祖)를 수행하고 북경(北京)에 가서 청(淸)의 학자들과 교유했고 이 때 서학(西學)을 깊이 연구하여 서학의 윤리 · 종교적인 이적 측면(理的側面)은 배격하고 과학기술적인 기적 측면(器的側面)을 수용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고 귀국 후 이를 바탕으로 북학(北學)을 제창하였다. 1779년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이 되어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九) 등과 함께 4검서관으로 명성을 떨쳤고 그 후 1791년 적성현감(積城縣監) 재직 중 사망하였다. 홍대용(洪大容),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북학파(北學派)의 학풍을 정립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용서성학 (傭書成學)]

 

"용서성학(傭書成學)!  이덕무(李德懋)는 베껴 쓰기로 학문을 이루어 남이 넘보지 못할 우뚝한 금자탑을 세웠다."...이 글을 읽으니 반갑다...ㅎㅎ...

"베껴 쓰기로 학문을 이루어 남이 넘보지 못할 우뚝한 금자탑을 세웠다니 어 어찌 반갑지 않을손가!"...ㅎㅎ...

 

이덕무의 손자 이규경(李圭景)은 "내 할아버지 되시는 청장공(靑莊公·이덕무의 호)께서는 직접 책 몇 천 권을 파리 대가리만 한 가느다란 해서로 육서(六書)의 서법에 따라 써서 한 글자도 속된 모양새가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다...ㅎㅎ...정말이지 대~단하신 분이다...ㅎㅎ...

 

나도 요즘 베껴쓰기가 한~창이다...ㅎㅎ...

매일 아침 카톨릭 굿뉴스에 들어가 '매일미사와 우리들의 묵상'에서 그 날의 독서와 복음에 대한 묵상글을 읽고...

인터넷 시대이므로...조선시대 처럼 글자 하나 하나를 베끼지는 않지만...

여러번 읽어 요점을 추려 복사하고...추려낸 복사글에서 그날의 복음에 맞추어 기도문을 작성하고 있기 때문이다...ㅎㅎ...

 

옛날에 단순하게  성경을 필사할 때 보다...

'우리들의 묵상'에서 그날의 독서와 복음에 대하여...

여러 신부님들의 묵상글을 읽고 요점을 추리므로...성경 말씀에 대한 다각도의 이해가 가능하므로....

성경 읽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다...ㅎㅎ...

 

솔직히 말해...예전에 '성경필사'를 할 때는 지루하여...도중하차 할 때가 많았다...ㅎㅎ...

그런데, 요즘 굿뉴스에 들어가 '매일미사-우리들의 묵상' 일기와 기도문 작성 등은...

2012년 3월1일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약 2달 모자란 3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했으므로...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이다...ㅎㅎ...

 

대학 다닐 때는 성경읽기 모임인 '다락방'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그 때만해도 완전 초보 수준이라...모르는 것 투성으로...예수님이 건방지고 당돌하고 이해불가(?) 남자였다...ㅋㅋ...

그 때 동아리 토론 시간에 던진 질문은...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유치찬란(?) 일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ㅋㅋ...

 

3년 가까운 세월을 '굿뉴스-매일미사-우리들의 묵상'을 읽다보니...

세상에 속한 영이 아닌...하느님으로 부터 오는 영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제3의 눈이 생겨서인지...

과거의 나의 행위가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ㅠㅠ...  

일 위주, 성과 위주, 상을 받고 인정 받기 위한 일처리 등...

왜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는지...참~ 여유없이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ㅠㅠ...

 

어제 평화방송에서 황창연 신부의 [죽음껴안기 4부] 강론을 들었다...

죽어서 천국에 가지고 가는 물건은 '집, 재물, 자식 등'이 아니라...'선행, 추억, 믿음'이라고 한다...ㅎㅎ...

하느님 앞에 가지고 갈 선물 보따리를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많~이 만들어야 겠다...ㅎㅎ...

 

이덕무(李德懋) 처럼..."용서성학(傭書成學)으로 일가견을 이루어...굳건한 믿음을 가져야겠다...ㅎㅎ...

 

- 2015년 1월7일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오후 2시30분.... 수산나 -

 

 

 홍주읍성...

 

홍주읍성...홍화문(남문) 1

 

 

홍주읍성...홍화문(남문)2

 

홍성사랑 국화축제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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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사랑 국화축제장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