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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이훈범의 생각지도]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2015.1.19.월)/을사늑약문 등 5장

 

[이훈범의 생각지도]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5.01.17 00:30 / 수정 2015.01.17 00:31

 

 

간신(奸臣)의 사회적 함의는 문자 그대로 간사함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마음이 바르지 않다’고 사전은 푼다. 삐뚠 마음 나쁜 꾀의 품새가 따로 있지 않을진대 드라마나 영화 속 간신들은 정말 간신처럼 생겼다. 사악한 눈빛과 음흉한 미소, 비열한 몸짓으로 간신의 모습을 정형화한다.

 그 때문에 늘 속는다. 현실에 분명 간신이 존재하거늘 우리 눈이 알아채지 못한단 말이다. 그렇다.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국가대표 간신 이완용도 간신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시문과 서예를 즐기는 점잖은 조선 선비 모습이었다. 중국 최고의 간신 진회도 그렇다. 악비의 묘 앞에 꿇고 있는 동상조차 20년 재상의 유능한 관리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도 여러 모습의 신하들이 있다. “보기 드물게 사심 없다”는 비서실장이 있고, “수사 덕에 비리 의혹을 떨쳤다”는 ‘문고리’ 비서관들이 있다. “실세는커녕 관계도 없다”는 옛 비서가 있는가 하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렸다”는 비서관과 행정관도 있다. 거기 더해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던진 비서관도 있으며 여당 대표에게 이를 갈다 잘린 행정관도 있다.

 이들 중 누가 간신인지 정하는 건 섣부르다. 간신처럼 생긴 사람도 없거니와 구중궁궐 속사정을 낱낱이 알 수도 없는 까닭이다. 주군도 속는 게 권력의 속성이니 대통령의 평가에 흔들릴 필요는 없겠다. 다툼이 있으니 잘못이 있을 테고 길든 짧든 역사가 진실을 말해줄 터다.

 그래도 궁금하니 나름 잣대를 대볼 순 있겠다. 명쾌한 기준만 있다면 말이다. 순자(荀子)가 길을 일러준다.

 순자는 신하의 길(臣道)을 다섯 가지로 나눈다. 명령을 따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걸 순(順)이라 한다. 현군 아래 현신 있는 이상적인 경우다. 올바른 지시를 잘 따르니 순조롭지 않을 리 없다. 명령을 거스르며 군주를 이롭게 하는 게 충(忠)이다. 무조건 따른다고 충성이 아니란 얘기다. 명령을 따르는데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첨(諂)이다. 아첨의 적극적 해석이다. 군주의 잘못에 눈감는 것도 아첨인 거다. 명령을 거슬러 군주를 이롭지 못하게 하면 그건 찬(簒)이다. 이건 찬탈, 즉 반역이니 설명이 필요 없다.

 누가 봐도 대통령이 이롭게 된 상황이 아니니 첫째와 둘째는 아니다. 그렇다면 첨 아니면 찬이다. 따로 구분할 것도 없이 순자 기준으론 다 간신들이란 말이다.

 하긴 권력자한테 바른 소리 하는 게 어디 쉽겠나. 작은 기업에서조차 사장 앞에서 “그게 아니고요”란 말이 쉽지 않은데 하물며 통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야…. 고양이 목 방울은커녕 제 목이 걱정인 거다. 그래서 간신인 줄도 모르고 간신이 되는 거다.

 간신들이 있다면 모두 군주 책임인 게 그 때문이다. 직언을 들을 준비가 안 된 군주 곁에 꼬이는 게 간신 아닌가. 순자는 “군주의 치욕을 막고 나라의 이익이 된다면 능히 군주의 명을 거역하고 필요하다면 군주의 권한까지 대신 행사하는 게 보필”이라고까지 말한다. 그걸 가능케 하는 ‘군주의 길(君道)’이 있다. “밝은 군주는 함께하길 좋아하고 어두운 군주는 혼자 하길 좋아하며, 밝은 군주는 이런 신하를 포상하고 어두운 군주는 처벌한다.”

 권력자가 일부러 쓴소리 통로를 터놔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못한 어두운 군주 앞에서 신하들은 첨 아니면 찬, 아니면 다섯째의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군주의 명예나 치욕, 그리고 나라의 흥망엔 관심 없이 구차하게 영합해서 녹봉이나 받는 것을 국적(國賊)이라 한다.”

 이런 간신 아닌 간신들로 넘쳐날 때 군주의 치욕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의 잠자리가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순자 말이 그거다. “이것은 신하 된 자를 논한 것으로 나라의 길하고 흉함과 군주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알게 하는 최상의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요점)

현실에 분명 간신이 존재하거늘 우리 눈이 알아채지 못한단 말이다. 그렇다.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국가대표 간신 이완용도 간신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시문과 서예를 즐기는 점잖은 조선 선비 모습이었다. 중국 최고의 간신 진회도 그렇다. 악비의 묘 앞에 꿇고 있는 동상조차 20년 재상의 유능한 관리 얼굴을 하고 있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세월호 이후의 세상

[중앙일보] 입력 2015.01.19 00:05 / 수정 2015.01.19 12:27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를 덮쳤다면 2015년은 가슴을 내려앉게 하는 강력 사건으로 시작되고 있다. 양양 방화 살인, 안산 인질극, 인천 어린이집 폭행, 아현동 주택가 살인. 맥락 없는 사건들로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①“나도 피해자다. 막내딸 죽을 때 경찰이 나를 흥분시켰다.” 안산 인질극 범인 김상훈은 경찰서 앞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②“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폭행은 아니었다.” 어린이집 교사 양모씨는 자신이 아이를 쓰러뜨리는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③“그 여자가 (뇌성마비인) 내 아들을 두고 욕설을 했다.” 빚 1800만원 때문에 이웃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살해한 양양 방화범 이모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같이 자신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이고 뭔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이 스스로를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을 감독했던 의사들도 자신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충실했다고 확신했다.(『타고난 거짓말쟁이들』) 하지만 확신하는 것과 그 확신을 입 밖에 꺼내는 것엔 차이가 있다. 김상훈과 양씨와 이씨처럼 범인들이 연이어 뒤틀린 속마음을 발설한 적은 많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세태를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자기기만쯤은 멋지게 해낼 수 있어야 먹이사슬의 위쪽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데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검사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검찰 조사실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말 담대하다던데요. 그 정도는 돼야 대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자녀의 성공을 원하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도 스스로를 속이는 능력에 가깝다. 자기소개서는 ‘내가 아닌 나’를 거리낌 없이 적어 낼 줄 알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봉사도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활동이어야 한다. 술자리에서 “계층 상승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개탄하면서도 내 스펙이 아들딸에게 세습되는 건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거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는 이 사회에서 갑(甲)으로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뉴스를 틀어보라. 궁중(宮中) 깊은 곳에 권력투쟁의 돌풍이 스쳐갔다. 그 결과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란 소중한 공적 자산이 소모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오히려 국민들 앞에서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된다”고 훈계했다. 그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청와대 행정관의 ‘K, Y 배후설’이 불거졌다. 그런데도 부끄럽다고,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이런 일들이 지난해 세월호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업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국가의 무능과 자본의 탐욕을 자각하고, 반성하고, 개혁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계기를 날려버렸다. 바닷속 객실에 갇혔던 아이들을 ‘사고 희생자’의 틀에 또 한 번 가뒀고, 세월호를 사회 갈등의 먹잇감으로 던졌다.

 2015년의 사건들은 세월호와 인과(因果)의 끈으로 묶여 있진 않더라도 최소한 겹쳐져 있다. 부끄러움의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항용 나타나는 현상이요, 징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자기기만의 시스템을 더 높이 쌓아올리는 것인지 모른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서정시를 쓸 수 있느냐”는 철학자의 물음은 세월호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하루하루 비관론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세월호를 다시 대면하고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언저리를 맴돌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권석천 사회2부장

 

(요점)

더 심각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자기기만쯤은 멋지게 해낼 수 있어야 먹이사슬의 위쪽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데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검사는 ‘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검찰 조사실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말 담대하다던데요. 그 정도는 돼야 대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자녀의 성공을 원하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도 스스로를 속이는 능력에 가깝다. 자기소개서는 ‘내가 아닌 나’를 거리낌 없이 적어 낼 줄 알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봉사도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활동이어야 한다. 술자리에서 “계층 상승 사다리가 사라졌다”고 개탄하면서도 내 스펙이 아들딸에게 세습되는 건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거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는 이 사회에서 갑(甲)으로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 속 간신들은 정말 간신처럼 생겼다. 사악한 눈빛과 음흉한 미소, 비열한 몸짓으로 간신의 모습을 정형화한다. 그 때문에 늘 속는다.
현실에 분명 간신이 존재하거늘 우리 눈이 알아채지 못한단 말이다. 그렇다. 간신은 간신처럼 생기지 않았다. 국가대표 간신 이완용도 간신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시문과 서예를 즐기는 점잖은 조선 선비 모습이었다. 중국 최고의 간신 진회도 그렇다. 악비의 묘 앞에 꿇고 있는 동상조차 20년 재상의 유능한 관리 얼굴을 하고 있다.....ㅠㅠ...

 

간신은 간신의 얼굴을 하고 존재했으면 좋겠다.....

요즘 사회가 너무나 어수선하다...

 

서초동 아파트에 사는 가장이 부인 딸들, 3모녀를 수면제를 먹여서 살해했다...너무나 평범한 내 아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ㅠㅠ...

강원도 양양에서 3모자에게 수면제를 먹이고...방화로 숨지게 한 여자도...살인을 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할 그런 내 주변의 평범한 딸들 같은 그런 모습이다...ㅠㅠ...

안산 인질범 김상훈은 이혼한 전 부인이 만나주지 않는다고...그녀의 작은 딸을 살해했다..ㅠㅠ...

작은 딸을 살해하기 전, 큰딸과 딸들의 아빠 동거녀 앞에서 작은 딸을 성추행하기도 했다고 한다...ㅠㅠㅠ...

그러면서, 자기를 개무시했다고...자기가 피해자라고 당당하게 소리친다...ㅠㅠ...

멀쩡하게, 분명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ㅠㅠ...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지경에 이른 것 같다...

하느님이 준 생명을 어찌 사람이 제멋대로 살해할 수 있는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무조건 마음을 열어...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려하다가는 큰~ 코 다치겠다...

비록 얼굴은 사람얼굴이지만...개만도 못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다...ㅠㅠ...

 

 

- 2015년 1월17일 토요일...오후 6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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