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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아침묵상 복음 <<세리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2016.7.1.금)/되지빠귀 5장


[아침묵상 복음 <세리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를 “나를 따라라.” 하시며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마태오는 가난한 백성들의 세금을 걷어 로마에 상납하며 부를 축적하는 공공연한 죄인이요 파렴치한인데도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죄인들을 불러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나누십니다. 이런 모습을 바리사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바리사이들이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느님의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침묵하시는지, 왜 정의롭지 못하신지, 왜 못된 사람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선한 사람이 재앙을 당하게 하시는지 인간의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심판자로만 받아들이면, 그분은 두려운 존재일 뿐이며, 우리가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이유도 그분의 징벌을 피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기준으로 이웃을 판단합니다. 마치 스스로가 하느님인 것처럼, 이웃이 완벽하지 못하면 그를 판단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가치가 없다고 단죄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모습은, 하느님의 방식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심판이 아니라 자비라는 것입니다. 죄인이었던 마태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죄인들도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그분의 식탁에 앉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완벽한 바리사이들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굿뉴스-우리들의 묵상 '울림이 있는 글>


1. 자비는 노력과 희생의 결과일게다. 참을줄 알아야만 자비를 베풀게다. 비웃음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참된 자비가 없다....사실 하잖은이는 이 세상에 없다. 내가 그렇게 여기면 그 역시 나를 그렇게 대할테니까....하느님의 모습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하느님께서 왜 못된 이에게 벌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지를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나. 사실 부족한 이를 챙겨주는 이가 정녕 자비로운 이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챙겨주는 이가 진정한 자비로운 자다....이 주님 자비는 우리의 일상에서 다양하게 다가온다. 이에 대한 진정한 우리 응답은 참 행복으로 이끌리라.(박윤식)


2. '부르심과 응답-나를 따라라'...

늘 그 자리의 정주의 삶 중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는 아름다운 환대 영성 입니다.


독일 도나우강 연안에 위치한 레겐스부르크 고도...2,000년 역사의 고도...고딕 양식의 상트 페퍼 대성당이 유명합니다.

상트 페퍼 대성당은 도시화재로 기존의 돔이 무너져 1273년~1872년, 600년이 걸려 지은 대성전이다.

레겐스부르크 고도에는 수백년 건물이 즐비한 도시로 살아있는 전통과 역사가 숨쉬고있다.

한국의 단절된 역사와 전통이, 보고 배울 역사와 전통이 전무한 한국과 대조되었습니다.


도나우강 협곡에 위치한 벨덴부르크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617년 경에 세운 1,400년 역사의 바로크 양식의 최고봉 수도원 입니다.

"가슴이 떨릴 때 여행해야지 다리가 떨릴 때는 너무 늦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부르심'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을 멀리할 수가 없습니다.

소위 '천국팔언'이 나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범사에 감사하라) / 미안합니다(겸손을 지향하는 특별한 말) / 훌~륭하십니다(자꾸 격려하면 힘이 나요)/괜찮습니다(관용)

자~알 하셨습니다(이해) / 수고하셨습니다(위로) / 행복합니다(축복 인정) / 사랑합니다(애덕)


'천국팔언'을 하는 사람에게는 "당신 멋져! 당신 멋져!"를 날립니다.

'당당하게/신나게/멋들어지게/져주면서 사는 이'란 의미입니다.


김웅열 신부~ 90년대 10년동안 중국선교를 나갔습니다. 당시의 선교는 관광하러 나가서 몰래몰래 피정을 다녔어요...

중국의 성 종교국장과 카톨릭회장 사이가 좋으면 내가 피정을 시켜도 종교국장이 모른척 할 수가 있고, 사이가 안 좋을 때는 당장 끌려나가요.

4년동안 조선족 피정, 4년동안 한족, 중국사람들 피정을 시켰습니다.


'소팔가자'~ 천주교 신자 8집이 시작했다고 마을이름이 '팔가자'입니다.

마차를 타고 옥수수밭 사이로 '소팔가자'에 들어갔는데, 끝도 안 보이는 옥수수밭 사이에 마을이 있었어요. 영화 '대지'의 그런 느낌의 마을이어요.

800년된 성당에서 종을 치니까 신자들이 꼬물꼬물 모여드는데, 순식간에 성당 마당에 900여명이 모였어요. 평일미사에 900~1,000명이 모인다고 해요.

그런데, 이곳이 김대건 신부님이 조선 땅으로 들어오기 전, 부제 때 3년을 머물던 장소예요.

최양업 신부님이 조선 땅으로 들어가기위해서 3년을 머물던 장소이기도 해요.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님 추모현양 묵상회>현수막 타이틀을 걸고 일주일 동안 통역을 써가면서 한족들에게 역사적인 피정을 시켰습니다.

그 때 '소팔가자'에 가서 놀란 것이 '대건' 이름이 그렇게 많다는 거예요. 거기 신자들은 모두 옛날에 여기 있던 조선 신학생이 사제가 되어 성인 품에 올랐다는 것을 다 알아요. 


우리 인생살이에서 우리 눈을 가리는 것이 무엇일까?

<두려움 / 불안 / 상실감 / 분노 > 입니다.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4.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장애는 참으로 심각한 병입니다. 우리 역시 겉으로는 잘 걸어다니는 정상인이지만 내적 장애를 겪는 사람은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만일 내 마음 안에 악한 기운이 자리잡고 있다면 우리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죽어버립니다. 선한 마음에 선한 생각을 씨뿌리고 가꾸고 키워가는 참 신앙인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선한 마음은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주님, 선한 마음에 신앙이 자라게 하소서.(인영균 끌레멘스 수사신부)


5. 어떤 때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오히려 더 냉정하고 가혹한 ‘낙인찍기’를 하고 있음을 보기도 합니다. 한 번 실수하면 헤어나지 못하고, 틈만 나면 그 사람의 실수나 허물을 들춰내고 어떤 책임이나 봉사에서도 배제시키는 경우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지요.

무릇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오히려 신앙공동체에서나 사회생활 중에 죄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그 공동체의 넘치는 사랑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겠지요. 회개는 가혹한 단죄나 처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의 손길 안에서 더 깊이 그리고 더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영혼의 어둠 속을 헤매는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서로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 나누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도록, 배척하고 단죄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6. 교황은 우리가 지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우고 다시 세울 수 있는세가지 단단한 토대를 제시했습니다.

 

그 첫 번째 토대는, 교황이 말하기를, “기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선택했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민족의 기억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처럼 또한 간직해야 합니다. 교황이 덧붙여 말했습니다. “엄청난 역경에 마주할 때조차도”, 교황이 강조하기를, 하느님께서 복음에 대한 당신의 진실함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피의 대가까지 치르고 하느님의 사랑이 목숨 그 자체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증언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십니다.”


믿음은 교황 성하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우는 두 번째 토대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경고했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빛을 흐릿하게 하는 위험이 존재하고 믿음을 과거에서 온 어떤 것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 작게 만들어 버리는 유혹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세 번째 토대는 교황이 덧붙이기를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일치의 다리를 만들고 우리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면서 통공의 길을 세우고 복원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프랑체스코 교황 강론)


하느님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죄인이었던 마태오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죄인들도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그분의 식탁에 앉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바리사이들보다 훨씬 더 하느님께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저 역시 영혼의 어둠 속을 헤매는 죄인임에도...

당신께서 저를 불러주심에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선택했고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저에게 살아계신 주님으로서 저의 발걸음마다 함께 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저의 발자국마다 함께 걸으셨던 당신의 발자국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그 믿음의 빛이 흐려지지 않도록...

 참고 노력하며 희생하고 인내하며 극복하고 정화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자비로운 사랑에 저의 모든 것을 맡기오니...

당신의 뜻대로 저를 이끌어주소서. 아멘.


- 2016년 7월1일 연중 제13주간 금요일...수산나 -




되지빠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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