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1-목-아침묵상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 짐을 꾸려 떠나라고 이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시며 큰 빚을 탕감받고도 작은 빚을 진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악한 종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1-12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19,1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매우 고약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왕에게 하소연하여 엄청난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자신의 동료에게는 모질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탕감받은 돈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액수를 빚진 동료를 매정하게 감옥에 가두었지요.
어쩌면 이런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에게는 너그럽지만, 다른 이에게는 모질게 대하는 경우가 없는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은 늘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서도, 막상 다른 이가 조금만 서운하게 대하면 큰 모독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자신은 남에게 늘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이 조그만 상처라도 받으면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굿뉴스-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성녀 클라라는 이렇게 영혼의 거울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거울에 비추어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숙고하며, 자신의 전 인격을 변형시키는 관상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녀는 가난하신 예수그리스도께 집중함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며,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오시어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관상함으로써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겠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에 쏠려있는 눈길을 거두어 성녀 클라라와 더불어 '영원의 거울' 앞에 나를 두고, 사랑 안에 머물러 나를 바라보며, 사랑으로 변모되길 간절히 청하는 오늘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오늘은 클라라 성녀 기념일입니다. 클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의 모범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부와 쾌락을 즐기던 프란치스코가 갑자가 돌변하여 거지의 삶을 살아가고 고행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프란치스코처럼 예표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다보면 그 삶을 쫓는 몇몇이 생겨납니다. 프란치스코의 삶을 보고 당시 귀족집안의 귀한 딸이었던 클라라 성녀도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삶을 선택합니다. 돈과 명예와 미래만이 아니라 가족까지도 버려야했습니다. 그런데 이 클라라 성녀가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동정녀들의 예표가 되어 커다란 수도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삶으로 구별되지 않으면 절대 예표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표의 삶이 아니라면 또한 참 예표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도 아닙니다. 예언자직무로 불림받은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처럼, 노아처럼, 에제키엘처럼, 프란치스코처럼, 클라라 성녀처럼 이 세상에서 구별되고 이 세상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신부)
3. 용서를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루가복음 15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돌아온 아들’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용서해 주었고, 아들을 위해 잔치를 마련하였습니다. 복음은 돌아온 동생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큰 아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자기에게 잘못한 것도 아닌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권한인 ‘용서’에 대해서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몫이고, 정의는 인간의 몫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정의가 바로서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먼저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사랑이, 용서가, 자비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표어가 있었습니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자!’(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4. 우리 역시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쿨하게 이렇게 외쳐보면 어떨까요? “So What?” (그래서 뭐 어쨌다고?) (빠다킹 신부)
5. 하느님의 자비와 너그러움은 끝이 없습니다.
일흔일곱번 용서하라는 말씀은 끝없는 용서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밥멋듯이, 숨쉬듯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내가 '살기위해서' 용서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은총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용서하는 사람입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아시시의 귀족 집안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 프란치스코님에게서 수도복을 받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여자 수도회 설립의 기초가 되어
엄격하고 가난한 클라라 수녀회를 설립하신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님이시여
교회 안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신심 단체나 소공동체를 통하여
서로의 영성을 성장시키는 유익한 만남을 이룰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하느님의 자비와 너그러움은 끝이 없습니다.
일흔일곱번 용서하라는 말씀은 끝없는 용서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밥먹듯이, 숨쉬듯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내가 '살기위해서' 용서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은총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용서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바랍니다!’
오프라 윈플리처럼,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쿨하게 이렇게 외쳐보면 어떨까요?
“So What?” (그래서 뭐 어쨌다고?)
자비는 하느님의 몫이고, 정의는 인간의 몫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정의가 바로서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먼저 자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사랑이, 용서가, 자비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아멘.
- 2016년 8월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수산나 -
촉새 1
촉새 2
촉새 3
촉새 4
촉새 5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8-13-토-아침묵상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큰오색딱따구리 5장 (0) | 2016.08.13 |
---|---|
[2016-08-12 아침묵상 복음 <부부의 정체성>] / 콩새 4장 (0) | 2016.08.12 |
[2016-08-10-수- 아침묵상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청호반새 5장 (0) | 2016.08.10 |
2016-08-09-화-아침묵상 복음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청둥오리 5장 (0) | 2016.08.09 |
2016-08-08-월-아침묵상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참새6장 (0) | 2016.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