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4-일-아침묵상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말씀의 초대
대신들이 예레미야 예언자를 사형시키라고 하여 치드키야 임금은 그를 저수 동굴에 가두었으나 에벳 멜렉의 청을 받아들여 꺼내게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자고 권고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시며, 한 집안 식구들이 서로 갈라져 맞서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예레 15,10).>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8,4-6.8-10
제2독서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1-4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 체계나 정치 사회적 관습을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그 뜻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지며, 불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인지, 분별해 내야만 합니다. 지혜롭게 판단하지 못할 때, 또 다른 불화가 그리스도 때문에 생길 것입니다.
<굿뉴스-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하느님을 거스르는 세상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고 질깁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불, 말씀의 불, 성령의 불로 태워 정화시켜나가야 합니다. 그 길이 험하고 늘 수난과 박해를 당하고 반대에 직면한다 하여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야겠습니다.”(히브 12,1-2)
우리 모두 이 땅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루어지도록 나 스스로가 사랑의 불, 성령의 불, 말씀의 불이 되어 하느님을 거스르는 불의와 거짓, 차별과 배척, 편견과 선입견, 돈의 우상을 태워버리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나 예수님처럼 분열과 혼란과 고난이 따르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하느님을 선택하고, 그분의 정의와 사랑과 선을 선택해야겠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신앙의 회색분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
2. 오늘 제1독서에서 사람들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잡아 죽이려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루살렘은 곧 망할 것이니 대비하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셨습니다. 거지와 창녀들과 문둥병자들과 어울리시며 돈 있고 권력 있는 이들의 적이 되셨습니다. 비전을 가지고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이들의 힘을 빼셨습니다. 그러니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우물에 빠진 예레미야는 다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시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성령의 불에 타버린 이들 속에 부활의 생명력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신부)
3. 한 체로키 인디언이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는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도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 체하고 자신의 거짓자아를 나타낸단다. 다른 놈은 선한 놈이지. 이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 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도 일어난단다.”
손자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체로키 노인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요셉신부)
4. 사제는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등대지기’와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때로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악을 뜻하는 Devil과 거룩함을 뜻하는 Divine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두 개의 깃발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깃발에 설 것인가, 악의 깃발에 설 것인가를 늘 식별해야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악한 것들이 화려해 보이고, 편안해 보이고,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악의 깃발아래 서 있곤 합니다. 악의 깃발에는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참된 구원을 주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희생, 양보, 헌신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스도의 깃발에 서지 못하곤 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늘은 연중 제20주일,
오늘의 복음은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사상 체계나 정치 사회적 관습을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많은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그 뜻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지며, 불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그분의 뜻에 맞는 것인지, 분별해 내야만 합니다.
지혜롭게 판단하지 못할 때, 또 다른 불화가 그리스도 때문에 생길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나 예수님처럼 분열과 혼란과 고난이 따르더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하느님을 선택하고,
그분의 정의와 사랑과 선을 선택해야겠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신앙의 회색분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2016년 8월14일 연중 제20주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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