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5-월-아침묵상 성모승천대축일]
▦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영혼과 육신을 함께 천상 영광에 불러들이신 하느님을 찬양합시다.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는 우리의 희망이요 위안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명하고 충실히 살아 하늘에 오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우리도 그분과 같은 영광을 얻어 누릴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하느님 성전이 열리고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용이 삼키려는 가운데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하느님께로 들어 올려지는 표징을 본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이라며,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 문안하자 엘리사벳이 칭송하고 마리아가 화답한다(복음).
제1독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제2독서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7ㄱ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성모 승천 대축일의 의미는 인간의 삶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성모님처럼 하느님과 일치되리라고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초월적 생명을 얻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의 노래’에서 알 수 있지요. 그 내용은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비천한 이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완전히 무력하기에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울러 명예가 높고 가진 것이 많다 해도 어디까지나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비천한 사람에 속합니다. 결국, 마리아의 노래는 주님의 자비가 세상의 모든 차별을 없애 주신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세상의 억압과 차별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면 하느님께서 나의 삶 안에 늘 계시다는 것을 느껴야만 합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그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순간마저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쁠 때나 힘들고 절망에 빠졌을 때마저도 하느님의 숨결을 느껴야 하지요. 이런 과정에서 참된 행복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런 자세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가장 긴밀하게 동참하셨으며, 그 결과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광을 입으신 것입니다.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마리아는 주님을 주인으로 철저히 인정하면서 “주님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1,48)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교만의 끈을 내려놓고 오직 하느님을 갈망하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겸손을 지니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성모님은 거룩한 수용의 자세를 지니셨습니다. 사랑의 침묵 가운데 예수님을 동행하며 죽기까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지요.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말없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굽힘없이’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까지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겨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진정한 구원과 해방의 역사는, 비천하고 가난하고 배고프고 수고하고 힘겹게 일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실현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자신을 사랑의 도구로 뽑아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가난한 마리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51절)을 펼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셨습니다. 성모님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보잘것없는 사람 그리고 배고픈 사람을 들어높이시고, 교만한 자와 권세 있는 자, 부요한 자를 내치셨음을 찬미하면서 자신의 가난한 마음을 표현하셨지요.
성모찬가는 하느님 자비의 노래요, 가난하고 억압받고 가련한 우리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가난한 모든 이들을 위로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납니다. 이 찬가는 진실하고 겸손한 삶이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자비의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걸어갈 때 영원생명에 이를 수 있음을 보증해주는 대헌장인 셈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성모님의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내 의지를 소유하려 하지 말고 튀고 싶고 올라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때에야 주님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과 형제들과 화해할 수 있고 하느님께 갈 수 있겠지요. 참 행복은 내가 드러날 때가 아니라 나를 도구삼아 하느님께서 자비를 드러내실 때에 주어집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성모님은 ‘신앙의 여인’이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성모님의 굳센 믿음은 신앙인이라면 따라야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늘 ‘믿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병도 치유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 가나안 여인의 믿음, 하혈하던 여인의 믿음, 소경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도 믿으셨기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모님은 ‘사랑의 여인’이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신 분은 성모님이셨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이야기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청을 들어 주셨습니다. 혼인잔치는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성모님께서는 주리는 이들, 가난한 이들, 미천한 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의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에서 알 수 있지요. 그 내용은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비천한 이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완전히 무력하기에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주님의 자비가 세상의 모든 차별을 없애 주신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세상의 억압과 차별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면 하느님께서 나의 삶 안에 늘 계시다는 것을 느껴야만 합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그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순간마저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쁠 때나 힘들고 절망에 빠졌을 때마저도 하느님의 숨결을 느껴야 하지요.
이런 과정에서 참된 행복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런 자세로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가장 긴밀하게 동참하셨으며, 그 결과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광을 입으신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의 도구로 뽑아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가난한 마리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51절)을 펼치실 수 있도록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셨습니다.
성모님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
당신을 두려워하는 사람과 보잘것없는 사람 그리고 배고픈 사람을 들어높이시고,
교만한 자와 권세 있는 자, 부요한 자를 내치셨음을 찬미하면서 자신의 가난한 마음을 표현하셨지요.
우리도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성모님의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내 의지를 소유하려 하지 말고 튀고 싶고 올라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때에야 주님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과 형제들과 화해할 수 있고 하느님께 갈 수 있겠지요.
참 행복은 내가 드러날 때가 아니라 나를 도구삼아 하느님께서 자비를 드러내실 때에 주어집니다.
아멘.
- 2016년 8월15일 월요일...성모승천대축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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