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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08-24-수-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아침묵상]/갈퀴망종화<물레나물과 5장


[2016-08-24-수-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아침묵상]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천사의 인도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도성 예루살렘을 본다. 그 도성의 성벽 열두 초석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며 거짓이 없다고 하시며,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되리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 초석들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9ㄴ-14

복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하자, 그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당시 업신여김을 받던 나자렛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처럼 지역 차별이라는 하나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의 참모습을 아신 예수님께서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자신을 인정해 주자 나타나엘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는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을 버린 것입니다.

그는 즉시 고백하지요.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나타나엘의 열린 마음을 본받아 내가 가진 습관이나 태도, 가치관이 잘못되었으면, 이를 즉시 고치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주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은 언제 읽어도 신선한 충격입니다.

-예수님;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내적 변화입니다. 

주님을 만남과 동시에 참 나를 만났고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 본 나타나엘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우리 삶을 불교 용어를 차용해 ‘개안開眼의 여정’이라 부르곤 합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주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평생동안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어 나타나엘이 언젠가 천상의 복된 비밀까지 보게 될 것을 예언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눈이 열리면, 

이 거룩한 미사 중 제대 위를 오르내리는 하느님의 천사들을 보게 될 것이란 예언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요한 사도 역시 성령에 사로잡혀 영의 눈이 활짝 열리는 순간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봅니다. 


말그대로 신비체험의 선물입니다. 

이런 내밀한 주님의 신비체험의 선물이 내적변화와 내적치유에로 이끌어 주며 우리 모두 주님을 닮게 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세상 물질과 눈에 보이는 것들에 걸려 넘어져 영혼의 어두운 터널 속을 헤매곤 하는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조차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있지요. 그런 상태에서 자신도 하느님도 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있기 전, 영원으로부터 계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늘 곁에 함께 계십니다. 내가 찾기도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으로 찾고 계십니다. 내 뜻대로 살아갈 때에도 애태우는 사랑의 마음으로 회개하여 당신의 자비 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삶의 순간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차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도 나타나엘처럼 나를 향한 하느님의 갈망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열망하는 영적 가난함과 순수함을 지녔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늘 그분께 초점을 맞추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집중하여 그분의 뜻을 실행하여야겠지요.

나타나엘과 같은 그런 영적 수용의 태도와 감수성, 하느님을 향한 진실함과 성실함을 지닐 때 ‘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되겠지요.‘(1,55) 곧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표징과 부활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삶을 통해 하느님과 세상을, 갈등과 화해의 늪을, 미움과 사랑의 골을, 불신과 믿음의 틈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야겠습니다(1,51 참조).
오늘도 각별한 사랑으로 나를 불러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나타나엘처럼 신실한 마음과 영적 열망으로 주님을 찾고, 알아보며 그분을 추종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3. 어떻게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 한 마디로 신앙이 생길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해답은 예수님께서 바르톨로메오가 오는 것을 보시고 하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는 말 안에 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하느님의 백성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의 백성의 요건이 거짓이 없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거짓말은 믿음을 빼앗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믿지 못하게 만들고 타인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가 무화과나무아래 있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나무가 이 거짓이 없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서 주님께 나서기 두렵게 되자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몸을 가립니다. 죄가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을 하는 것입니다. 위선이고 거짓입니다. 아마도 바르톨로메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묵상하던 것이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살 수 없게 된 이들의 특징은 솔직하지 못해서 자신을 가리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해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백성은 하느님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 아무 것도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에서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착한 거짓말, 나쁜 거짓말 가릴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거짓말입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과 싸워 이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다면 주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거짓말을 한 번 하느니 천 번 죽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익이 크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절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입에서 거짓이 나가지 않도록 합시다.(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8월23일 수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오늘의 복음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나타니엘...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내적 변화입니다. 

주님을 만남과 동시에 참 나를 만났고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 본 나타나엘입니다. 

삶는 한 번으로 끝나는 주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평생동안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 눈이 열려가는 개안의 여정입니다. 


삶의 순간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차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도 나타나엘처럼 나를 향한 하느님의 갈망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열망하는 영적 가난함과 순수함을 지녔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늘 그분께 초점을 맞추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집중하여 그분의 뜻을 실행하여야겠지요.


에덴동산에 살 수 없게 된 이들의 특징은 솔직하지 못해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리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나타니엘이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거짓이 없는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해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백성은 하느님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 아무 것도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에서 솔직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착한 거짓말, 나쁜 거짓말 가릴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거짓말입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과 싸워 이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다면 주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거짓말을 한 번 하느니 천 번 죽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이익이 크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절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입에서 거짓이 나가지 않도록 합시다.

아멘.


- 2016년 8월23일 수요일...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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