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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08-29-월-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 개오동나무 5장


[2016-08-29-월-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이러한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의 아내 헤로디아의 간계로 순교하였다(마르 6,17-29 참조).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한 것은 4세기 무렵 그의 유해가 있던 사마리아의 지하 경당에서 비롯되었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시며,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동생의 아내와 혼인한 헤로데는 자기 생일에 춤을 추어 손님들을 즐겁게 한 헤로디아의 딸의 청을 받아들여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 오게 한다(복음).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1,17-19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통해 몇 가지 부류의 사람을 만납니다. 정의를 외치는 세례자 요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미워 요한을 죽이려는 헤로디아, 그리고 무엇이 옳은 줄 알면서도 헛된 약속과 체면 때문에 불의를 택하고 마는 헤로데입니다.
헤로디아는 남편의 형인 헤로데와 결혼했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비난한 요한을 죽이려고 어린 딸을 이용하지 않습니까? 더 큰 문제는 헤로데에게 있습니다. 복음을 보면 그는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고, 그 약속이 부당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요한의 목을 베도록 명하고 맙니다.
반면 요한은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을 기꺼이 내놓지 않았습니까? 약속이란 중요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지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내용이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면, 즉시 그 약속을 철회해야만 하지 않습니까? 나의 아집이나 체면 때문에 그 부당한 약속에 연연한다면, 또 다른 불의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고, 그런 만큼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미리 준비한 분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영광보다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사신 분이지요.
우리도 주님의 도구가 되도록 비록 작은 일이라도 실천 가능한 것을 한 가지씩 결심했으면 합니다.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수난도 우리는 한 개인의 억울한 죽음으로 보기 보다는 하느님께서 이루고하 하는 구원의 역사로 보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수난은 바로 예수님의 수난을 미리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건강하고, 부유하고,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질병도, 가난도, 단명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바로 그런 길을 걸어갔습니다. 많은 성인들은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수난 중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요한은 들꿀을 먹으며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고행과 극기의 삶을 살았으며, 결국 ‘주님의 길’을 준비하러 왔던 그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는 겸손과 희생을 통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일상의 고통을 사랑으로 겪어냄으로써 주님을 증거해야겠습니다.

끝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정치와 종교의 충돌,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신앙의 진리가 충돌할 때 나의 ‘신앙고백의 자리’는 어디인가에 대한 거룩한 고민이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세례자 요한이 목숨을 바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듯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들에게 처절한 투신이 요구됨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 ‘거룩한 결단’을 하고, 겸손과 희생, 주님과 동료 인간을 위한 처절한 투신을 통해 주님께 한걸음 다가가도록 힘써야겠습니다.(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3. 세례자 요한의 의로운 죽음을 통해 인간 군상들의 정체가 환히 폭로됩니다. 

우유부단한 헤로데, 악의 화신 같은 헤로디아, 생각없이 헤로디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그녀의 딸 등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어둠의 존재들입니다. 한 사람 세례자 요한만이 어둠을 환히 비추는 빛입니다. 

존재 자체로 이들을 심판하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인간 눈에는 불행하고 무의미한 죽음이겠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천상탄일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 사명을 주실 때, 당신의 현존을 약속하시며 ‘함께 계시는 하느님’(임마누엘)이 되어 주십니다. 


예레미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느님은 세상 만물 하나하나의 주인이신 동시에 세상 전체의 전능하신 주님이시며, 

개개인의 주인이신 동시에 세상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끊임없는 하느님과의 소통인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시야를 지닌 예언자들임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의 시야를 닮게 하시며, 우리들 통해 이웃을 위한 ‘새로운 세상 하나’ 열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8월29일 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오늘의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수난
우리는 한 개인의 억울한 죽음으로 보기 보다는 하느님께서 이루고하 하는 구원의 역사로 보기도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수난은 바로 예수님의 수난을 미리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유부단한 헤로데, 악의 화신 같은 헤로디아, 생각없이 헤로디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그녀의 딸 등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어둠의 존재들입니다. 한 사람 세례자 요한만이 어둠을 환히 비추는 빛입니다. 

존재 자체로 이들을 심판하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인간 눈에는 불행하고 무의미한 죽음이겠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천상탄일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요한은 들꿀을 먹으며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고행과 극기의 삶을 살았으며,

 결국 ‘주님의 길’을 준비하러 왔던 그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는 겸손과 희생을 통하여 수난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일상의 고통을 사랑으로 겪어냄으로써 주님을 증거해야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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