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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2016-08-30-화-아침묵상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개옻나무 3장


[2016-08-30-화-아침묵상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기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다가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치유하시자 모두가 놀란다(복음).       


제1독서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2,10ㄴ-16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마귀마저 굴복시키십니다.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지니신 권위는 메시아로서의 권위이지요. 이 세상 모든 생명과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으로서의 권위입니다. 그러기에 마귀 들린 사람까지도 다 치유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도 참된 권위를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좋은 방법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지요. 적은 분량이라도 날마다 꾸준히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면 어느새 우리는 하느님 말씀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참된 권위로 무장되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럴 때 그 어떠한 악의 세력도 우리 안에 침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을 쓴 이븐 알렉산더는 신경외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단언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마치 텔레비전이 방송국에서 보내주는 화면을 보여주듯이, 우리의 몸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진화의 과정에서 아름답게 만들어진 우리의 몸도 하느님과 연결되어야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사랑, 희망,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크게 4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연의 힘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풍랑을 잠재우기도 하십니다. 자연을 제어하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힘을 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가장 많이 보여 주신 치유기적입니다. 예전에는 치유란 나쁜 영을 제어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소경, 앉은뱅이, 중풍병자, 나병환자, 열병환자, 하혈하는 여인 등을 치유하였습니다. 이 또한 신적인 능력으로 생각되는 힘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는 기적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빵의 기적입니다. 물고기를 많이 잡게도 하셨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도자는 백성들을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힘을 보여주셨습니다.

네 번째는 소생기적입니다. 나자로의 소생, 죽은 소녀의 소생입니다. 이와 같은 기적의 힘이 예수님 권능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기적은 현대 자본의 힘으로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공학, 유전공학과 같은 학문은 자연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권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도 그렇습니다. 놀라운 기적, 치유, 눈부신 발전은 신앙이 드러나는 열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 본질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며,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나의 말과 행동, 생각과 의식 또한 마귀의 영과 같은 상태일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에서 멀어져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처신하고 말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사는 모습, 다른 이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사는 모습, 생명을 거스르는 말과 행동들, 정의롭지 못한 처신, 진리를 거스르는 언행 등은 마귀의 영의 작용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귀의 영을 내쫓으신 이적은 하느님 안에서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고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라는 초대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매순간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과의 깊은 인격적 관계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이 사회에 만연한 마귀의 영에 맞서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도록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3.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영이 미리 우리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느님의 영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이미 성령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의 영이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영도 나오고 사람의 영도 나오며 세상의 영도 등장합니다. 각기 어떤 영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속한 영역도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영을 지닌 사람들은 세상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똥파리에게는 똥이 최고의 가치고 애벌레에게는 먹을 수 있는 잎이, 그리고 꿀벌에게는 꿀이 최고의 가치인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말은 성령께서 일러주신 것들이라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애벌레에게 꽃을 가져다주며 안에 좋은 것이 있다고 말해봐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알아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알아들을 귀가 바로 당신의 영적 가르침을 알아듣게 만들어주는 성령님인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누구에게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 나비가 애벌레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판단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은 성령께서 넣어주시는 새로운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님을 어떻게 먼저 받아들여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위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기도와 희생을 통해 성령을 모시면 됩니다. 영은 육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영은 세상의 영과 반대되기 때문에 먼저 육체적 욕망을 끊고 세상의 애착을 끊어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아니면 습득될 수 없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래서 그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고통과 멸시만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바꾸어 넣어주시는데 그런 고통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영을 지니고 있어야만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알아보고 밀리어네어가 될 수 있기에 이 세상에서 기도와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8월30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텔레비전이 방송국에서 보내주는 화면을 보여주듯이,

우리의 몸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권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고,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 본질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며,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 생각과 의식 또한 마귀의 영과 같은 상태일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에서 멀어져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처신하고 말하는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사는 모습, 다른 이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사는 모습,

생명을 거스르는 말과 행동들, 정의롭지 못한 처신, 진리를 거스르는 언행 등은

 마귀의 영의 작용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은 성령께서 넣어주시는 새로운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님을 어떻게 먼저 받아들여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될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기도와 희생을 통해 성령을 모시면 됩니다.

영은 육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영은 세상의 영과 반대되기 때문에 먼저 육체적 욕망을 끊고 세상의 애착을 끊어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아니면 습득될 수 없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어 넣어주시는데 그런 고통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영을 지니고 있어야만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알아볼 수 있기에 이 세상에서 기도와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아멘. -


- 2016년 8월30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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