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5-월-아침묵상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 사이에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에, 묵은 누룩을 치우고 새 반죽이 되어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으로 축제를 지내자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냐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다(복음).
제1독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5,1-8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완고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온유하심과 자비하심에 시선을 고정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율법의 모독자’로 고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당신께서 율법의 주인이심을 당당하게 피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정에 얽매어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법률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드러내고 인간의 구원에 봉사하는 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잘린 포도나무 가지처럼 말라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5,6). 말라서 오그라든 포도나무 가지와 오그라든 손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결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잘린 가지처럼, 오그라든 손처럼 병들게 됩니다. 그들은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되어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옹졸해진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 능력, 직책, 힘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다른 어떤 법과 질서보다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리는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닫고,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영원한 곳을 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합당한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해서 조바심이 납니다. 조바심은 우리를 막 몰아칩니다. 사실 조바심은 우리의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보다 더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욕심입니다. ‘남보다 더 잘’은 우리의 일상 삶뿐 아니라 영성 삶에서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옵니다. 사실 이것은 수도자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유혹입니다. ’더 잘, 더 잘, 더 잘’이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남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자식을 둔 부모는 더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비교를 멈추고 조바심을 내려놓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영적 공간’을 권고하십니다. 여기서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때가 되면, 주님이 계획하신 때가 되면, 될 것임을 신뢰하는 믿음도 필요합니다.(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3. 율법의 정신을 망각한 채 문자에 갇힌 오그라든 마음을 지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관점에서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서는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오그라들어 경직된 사고의 틀과 규범의 절대화라는 문제 외에도 ‘의도적 합리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오직 자신들만을 율법이나 하느님을 바라보는 관점, 종교제도 등 모든 것의 중심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의식의 동기가 되어 그들에게는 다른 생각이나 신학, 예언자나 메시아는 모두 적이 됩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분의 복음선포 행위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의도적 합리화’의 의식과 행동을 버리지 못한 채 복음을 산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도 오그라든 의식,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고와 행동, 관계의 패스트푸드를 버리고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살아내는 행복한 날이길 소망합니다. 오그라든 의식은 적대감과 분노(6,11)를 일으킬 뿐이니 스스로 자기 영혼을 망가뜨리지 말아야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4. 우리가 굳이 죄를 짓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위해 죄를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그 죄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다만 죄를 지었을 때 사탄의 손아귀에 있음을 인식하고 그 자유를 빼앗겨 죄의 감옥에 갇힌 자신의 상태를 보아야합니다. 그래야 돌아갈 힘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죄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만큼 더 겸손해져서 죄를 짓지 않음이 참 행복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5. 신앙은 이 세상의 욕망들을 하나하나 끊어나가는 과정입니다. 욕망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어서 한쪽을 더 욕망하면 다른 쪽은 덜 욕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치지 않으면 다다를(미칠) 수 없다’고 하며 어떤 일에서 성공하고 싶거든 그 일에 온통 몰두해야만 함을 가르칩니다. 몰두하지 못했기에 성공할 수 없었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고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성공하고 싶었다면 몰두 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몰두란 말은 다른 것은 버리고 오직 그 생각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는 광고 천재가 아니라 천재가 되기 위해 다른 모든 생각들을 끊었던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것에 미칠 수 있어야 세상에서도 정상에 오르는데 우리가 구원받는 일에 있어서는 얼마만큼 주님께 몰입해서 살아가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는 길도 우리 모든 애정을 버리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는 곳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9월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 능력, 직책, 힘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다른 어떤 법과 질서보다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리는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닫고,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러나 우리의 머리는 영원한 곳을 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머물지 않는 사람은 잘린 포도나무 가지처럼 말라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5,6).
말라서 오그라든 포도나무 가지와 오그라든 손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결합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잘린 가지처럼, 오그라든 손처럼 병들게 됩니다.
그들은 악의와 사악이라는 묵은 누룩이 되어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옹졸해진 우리 마음을 치유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 아멘 -
- 2016년 9월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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