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7-수-아침묵상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으니 미혼자들은 지금 있는 그대로, 아내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처럼 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하고 참된 행복을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0-26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행복과 네 가지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썩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가난과 굶주림, 슬픔과 박해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유함과 풍족함, 웃음과 칭찬은 잠시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된 행복이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에서 나온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바오로 사도는 환난과 역경, 굶주림과 헐벗음, 죽음의 칼날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의 여덟 가지 복을 네 가지로 함축시켜 말하면서, 동시에 네 가지의 불행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 것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가 칭찬하고 좋게 말해주면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꾸중하고 나쁘게 말해주면 우울해하고 불행해 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우리는 눈치보고 비위맞추며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타인의 말 한마디에 우지좌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눈이 하늘을 보고 있지 않는 까닭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고’(마태 6,33) 이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오손 도손 재미나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것도, 그저 열심히 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것만도 아닌 것입니다.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미움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 속에서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과 슬픔 안에서 사랑하고, 그것을 통하여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되 당신이 하신 것처럼,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18)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곧고 좁은 길을 걷는 이들이 모든 사람에게 칭송과 존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둠의 유혹과 은총에 대한 저항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만 듣는 사람이 아니라,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행복해야 할 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말이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는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2)
2.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미움을 사고 쫓겨나고 모욕을 당하고 누명을 쓴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하시고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르고 웃고 칭찬 받는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하시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부유한 사람은 부 때문에 위험합니다. 그들은 자기 삶의 확고한 기반을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에게서 얻으려 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행복하다.’, ‘불행하다’를 말하지 말고 “우리 마음에 열성을 기르고 믿는 바에 관심을 일깨우며 천상사물을 갈망하십시오. 어떠한 불행 중이라도 천상 것을 추구하는 이 행복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성 대그레고리오 교황). (반영억 라파엘 신부)
3. 하느님의 위대한 권능이 결정적으로 드러날 미래의 종말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현실을 직시하며 굳세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현재의 온갖 근심걱정에 파묻혀 자포자기하거나 일시적 기쁨에 취하여
그것이 전부인양 살아가지 말라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깨어 맑고 밝게, 기쁘게 온갖 환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 바로 종말 축복의 자유요 행복이요 기쁨이요 희망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바오로 사도는 권고합니다.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0-31)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이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지금 여기서’ 은총을 내려주시는 주님께 시선과 마음을 고정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겠지요. 이 세상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존재는 하느님 밖에 없고, 그분을 통해서 그분 안에서만 모든 것이 영원한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주님, 덧없는 현세의 것들에서 거짓 행복을 찾곤 하는 어리석은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시 창조의 새 영을 호흡하며 당신께 대한 목마름을 키우며, 그 타는 목마름으로 함께 연대하여 가난과 고통과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행복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5.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순간을 감사드리고, 그 시간에 충실한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하느님나라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니듯이 행복은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행복 역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우리가 늘 추구하지만 그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마음은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욕심, 욕망, 출세, 성공,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불꽃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모든 것을 불태우려 합니다. 하지만 그 끝은 ‘허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것은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 같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016년 9월7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 미움을 사고 쫓겨나고 모욕을 당하고 누명을 쓴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하시고
오히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르고 웃고 칭찬 받는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하시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 것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가 칭찬하고 좋게 말해주면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꾸중하고 나쁘게 말해주면 우울해하고 불행해 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우리는 눈치보고 비위맞추며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타인의 말 한마디에 우지좌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눈이 하늘을 보고 있지 않는 까닭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고’(마태 6,33) 이루고자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저 오손 도손 재미나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것도, 그저 열심히 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것만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미움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 속에서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고통과 슬픔 안에서 사랑하고, 그것을 통하여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사랑하되 당신이 하신 것처럼,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18)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루카 6,22)
바오로 사도는 권고합니다.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7,30-31)
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순간을 감사드리고, 그 시간에 충실한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하느님나라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아니듯이 행복은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행복 역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것은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과 같습니다.
시련 속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고통의 한 가운데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아멘.
- 2016년 9월7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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