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4-수-성 십자가 현양 축일 아침묵상]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노력으로 찾게 되었다.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그 뒤로 십자가 경배는 널리 전파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9월 14일로 이 축일이 고정되었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하자 주님께서 불 뱀을 보내시어 백성이 물려 죽는다. 모세가 간청하자 하느님께서는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쳐다보면 살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 21,4ㄴ-9<또는 필리 2,6-11>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7
오늘의 묵상
창세기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를 불순종의 죄로 유인한 동물로 묘사됩니다. 민수기에서 뱀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게 하는 동물로 등장합니다. 하느님을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 뱀은 죽음을 불러오지만, 모세가 만든 구리 뱀은 그들에게 생명을 찾아 줍니다. 그 구리 뱀은 기둥 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예표된 것처럼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우리는 입당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니,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구원과 자유를 얻었네.”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생긴 십자가의 예수님 상처가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드러내고,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하느님의 지혜가 되고 있으며 그 고통은 하느님의 영광과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상처와 아픔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치유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림도 조각도 내 영혼의 갈망을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팔을 벌리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만이 채워 줍니다.”
우리가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따라나설 때, 그분께서 아버지께 드린 한없는 신뢰가 우리의 것이 될 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며 우리 안에 십자가의 생명과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기둥 위에 달린 불 뱀은 그대로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입니다.
불평하다 불 뱀에 물려 죽어가다 기둥 위에 달린 불 뱀을 보고 살아난 이들은 새삼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며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의 표징은, 영원한 회개의 표징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표현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주님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파멸하셨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회복해 주셨으며,
이의 영원한 사랑의 표지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수직면은 하느님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수평면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사람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의 이웃들이 참된 위로와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있다면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가볍게 만들기 보다는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이제 예수님께서는 구리 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들어 올려지신’ 당신을 바라보라고 초대하십니다(요한 3,14). 그분 친히 자발적으로 죽음의 길을 가신 까닭은 어둠 속을 걸어가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날의 삶에서 다가오는 불 뱀들 가운데서 살아나려면 그것을 직면하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결단이 요청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복락과 자신의 안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어야 하는 ‘십자가의 역설’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회와 교회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제도 안에 굳게 뿌리박고 탄탄한 재정 위에서 다른 이들에게 희생을 권유하는 장치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제도라는 틀과 하느님의 이름으로 주어진 권한, 선교나 사목을 명목으로 다지는 안정적인 재정 이런 보호 장치에 기대는 한 우리는 십자가의 역설을 살 수 없지 않을까요? 개인이든 교회든 낮추고 비우고 작아지는 그 한없는 ‘약함의 선택’을 통해 십자가를 현양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세상이 주는 힘에 기대지 말고, 이기심과 불평불만, 시기 질투, 증오와 냉대, 차별과 배척, 무시와 회피, 불의와 같은 ‘불 뱀’들을 직면하며, 그것을 통해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임으로써 주님의 십자가를 현양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9월14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
오늘의 복음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기둥 위에 달린 불 뱀은 그대로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입니다.
불평하다 불 뱀에 물려 죽어가다 기둥 위에 달린 불 뱀을 보고 살아난 이들은 새삼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며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의 표징은, 영원한 회개의 표징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표현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주님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파멸하셨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회복해 주셨으며,
이의 영원한 사랑의 표지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수직면은 하느님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수평면은 사람과 사람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사람과 일치를 이루게 하는 ‘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십자가 현양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의 삶을 바라보면서 나의 이웃들이 참된 위로와 영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 2016년 9월14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성 십자가 현양축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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