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7일 수요일 [(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매일미사 묵상
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 무렵 로마인 가문에서 태어나 트레비리(지금의 독일 트리어)에서 자랐다. 일찍부터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로마에서 공직 생활도 하였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가 된 암브로시오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그리스도교를 옹호하였다. 그는 특히 전례와 성직의 개혁을 꾸준히 실행하는 한편, 황제의 간섭을 물리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암브로시오 주교의 훌륭한 성품과 탁월한 강론은 마니교의 이단에 깊이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교회로 이끌기도 하였다. 397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예로니모 성인과 아우구스티노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회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암브로시오 주교를 가톨릭 신앙의 스승으로 세우시어, 사도의 용기를 보여 주게 하셨으니, 교회 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시어, 용감하고 지혜롭게 교회를 이끌어 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이시며,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라고 하시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25-31
복음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사의 신비로운 힘으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복된 암브로시오의 가르침을 따라 구원의 길을 힘차게 걸어, 마침내 영원한 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멍에와 짐은 바로 율법의 멍에와 짐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이 설정한 하느님에 대해 확신에 찬 나머지, “하느님의 뜻은 이렇다. 하느님을 이렇게 공경해야 한다.”라며 수많은 율법 조항을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 사람들은 그 많은 율법의 세세한 규정을 지키려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유혹과 오류는 스스로 규정한 하느님의 모습과 신앙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만든 틀 안에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느님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걸핏하면 하느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다른 이에게 내가 설정한 신앙의 길만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참된 신앙의 길이라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설정해 놓은 틀에서 상대방이 벗어나면 용납하지 않습니다.
과거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과중하게 지었던 율법의 멍에를 벗겨 주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멍에를 만들고, 이를 스스로 짊어지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씌우고 있지나 않은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교구장님께서는 성탄선물과 함께 덕담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교구장님께서 들려주신 덕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존경입니다. 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존경하면 신부님들도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번의 군대 생활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이 있으면 사목이 힘들어 질 거라고 하셨습니다.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 짜증을 내면 건강에도 좋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 존경의 마음을 지니면 상대방도 나를 존경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헌신입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었지만 섬기로 오셨던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삶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주님께서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도 헌신이지만 작은 일을 함에도 배려가 있다면 그것도 헌신입니다.
세 번째는 인내입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하였습니다. 태산이 높아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다는 시가 있습니다. 벼는 뜨거운 여름의 햇빛을 받아야 알곡이 익어갑니다. 인자무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성실무적이라는 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번째는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는 ‘겸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악한 세력은 ‘교만’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마련입니다. ‘나는 그래도 된다는 교만한 마음’이 ‘국정농단’이라는 혼란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삶의 기준을 ‘하느님의 영광’으로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은총이요,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십자가도, 부활의 영광도 다 축복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죽음을 넘어서지 않는 부활은 없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이렇게 노래를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제가 피정지도 때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삶은 선물입니까? 짐입니까?”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선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짐처럼 생각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주님을 닮아 온유와 겸손의 삶이 깊어갈 때 삶은 선물로 변모되어 갈 것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삶이 온유와 겸손, 기쁨과 평화의 삶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계십니다. 글자 속에 파묻혀 죽은 하느님을 찾으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노예처럼 만들어 버렸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과는 달리 하느님을 우리에게 아빠, 아버지로 소개해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벗이라고 하시며,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주시고 계십니다.(강병규 야고보 신부님)
4.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40,28)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40,31)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11,28-2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의미로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11,30)고 하셨을까요?
‘멍에’는 종교적 가르침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곤 하는데,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법’(예레 2,20; 호세 10,11)과 오경의 계명들(사도 15,10)이나 거룩한 삶을 위한 하느님의 권고(집회51,26)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613가지로 세분하고 그것을 어김없이 정확히 지키도록 가르쳤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멍에는 바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율법해석과 그것을 실천하는 태도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율법을 세분함으로써 그 본질이요 혼인 사랑을 망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태도에서도 엄격하게 정확하게 지키도록 요구함으로써 자유로운 사랑의 삶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을 배워(11,29) 우리 삶에 필요한 법과 제도에 사랑의 혼을 불어넣고, 주님 사랑의 법을 형식과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편안하고 자유로운 가운데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실천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5. 멍에는 소등에 얹어서 소가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게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농기구입니다. 그 멍에는 유다인들에게는 모세 율법을 상징하는 용어였습니다. 유다인들은 금령 365가지와 명령 248가지 도합 613가지나 되는 율법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율법이란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미를 잃고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변했습니다. 막상 지키기 어려운 백성들에겐 멍에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의식만 심어주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변한 모세 율법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재해석 하시고 단 하나만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마태 7,12)
이 황금률을 지키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되므로 마음의 안식뿐만이 아니라 전인적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멍에의 무게가 아닙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과 차별받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13가지나 되는 율법이 과중하고 때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면서도 함부로 이의를 달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율법은 더욱 많아지고 모호해져 본래 정신이 퇴색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권력이나 세력을 지닌 부류가 율법을 멋대로 재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윤경재 요셉)
6.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마태11,28). 하시며 산상 설교를 통해 참된 행복과 율법(마태5장-7장)을 철저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법에 사람을 맞추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위한 법을 확인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1요한5,3). 사랑의 법을 제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도 고달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삶을 봉헌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면 내적인 평화와 기쁨,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사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13,8).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13,10). 주님의 계명을 준수하고 계명의 의미를 살려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예수님의 멍에는 위로의 원천이 되고 인간적인 욕심을 포기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맑아서 눈에 빛을 주네”(시편19,8-9). 고달픈 삶의 여정 안에서도 주님의 멍에를,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짐을 기꺼이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2016년 12월7일 수요일 [(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오늘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멍에와 짐은 바로 율법의 멍에와 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과중하게 지었던 율법의 멍에를 벗겨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마태11,28). 하시며
산상 설교를 통해 참된 행복과 율법(마태5장-7장)을 철저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법에 사람을 맞추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위한 법을 확인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1요한5,3).
사랑의 법을 제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의 삶을 봉헌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실천하면 내적인 평화와 기쁨,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사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13,8).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13,10).
“주님의 가르침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게 하고 주님의 법은 참되어 어수룩한 이를 슬기롭게 하네.
주님의 규정은 올발라서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맑아서 눈에 빛을 주네”(시편19,8-9).
고달픈 삶의 여정 안에서도 주님의 멍에를,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짐을 기꺼이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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