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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2월21일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매일미사 묵상/종려나무 4장


[매묵]2017년 2월21일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키고 주님을 믿으라며,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너그럽고 자비하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로 논쟁하는 것을 보시고, 첫째가 되려는 이들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며 어린이 하나를 그들 앞에 세우신다(복음).

제1독서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2,1-11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0-37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성체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니,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삶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무한 경쟁 시대에 성공은 남보다 더 성실히, 더 일찍 자신의 능력을 보일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정말 열심히 살아 가난에서, 실직에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우리 사회는 과거처럼 우직하게 열심히만 산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첫째가 되는 길만 가르쳐 온 세상에서 스스로 꼴찌가 되고, 사람들에게 종처럼 보이고, 학교에서 왕따를, 직장에서는 실직을, 상점에서는 손님들의 갑질에 무시당하는 것이 어떻게 성공한 인생이 되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걸으셔야 할 메시아의 수난을 알아듣지도 못했고,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정권을 잡으시면 어떻게 할지 자기들끼리 서열 다툼까지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내 영이 맑아져서 세상 것보다 하느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이 더 커지는 우리의 모습이 제자들에게서도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성공의 길은 역설적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어린이란 약하고, 때로 고집스럽고, 성숙하지 못해서, 요즘 같으면 키우고 싶지 않은 애물단지 같은 존재를 뜻합니다. 그래서 그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허영과 욕심,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사람들을 섬기려 할 때 진정한 자유를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집회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믿음은 꼴찌가 되어도, 남의 종이 되어도 행복이 하느님 손에 달려 있음을 굳건히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닐까요?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마르9,36-37).

‘어린이’는 순수의 상징이 아니라, 가난과 무력함의 상징입니다. 
바로 구약의 가난한 이들인 ‘아나뷤anawim’의 상징입니다. 
오늘날처럼 예수님 당시에도 어린이들은 다치기 쉽고 목소리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짜 위대함은 지극히 작은 형제자매들에 대한 따뜻한 환대에 있음을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해 설파하고 계십니다. 경천애인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명예, 권력, 재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진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시기 때문입니다.(조재형 신부)

3. 예전에 민성기 요셉 신부님께서 쓰신 묵상글 하늘로부터 키 재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동안 제가 읽었던 수많은 묵상글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글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인간은 땅에 발을 딛고 살기에 그 기준은 땅이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땅으로부터 높이를 재는 동물, 땅으로부터 키를 재는 동물이지요.” “그런데 하늘에 계시고 하늘에서 사시는 하느님은 어디서부터 키를 재실까요?” “하늘로부터 키를 재시겠지요? 하느님께서 재는 기준은 바로 하늘이며 하느님은 하늘로부터 키 재기를 시작하시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혼돈의 상태가 필요합니다. 모든 고정관념을 깨어 부수는 사람이라야 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직 인사를 드리는 두 제자 앞에 스승은 하얀 종이를 꺼내고 가운데에 점을 하나 찍었습니다. 그러고는 제자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명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한 명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떠나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공부를 더 할 것을 명령하며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공부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갖게하는 훈련이란다.”

우리는 수수께끼 같은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한계와 맞닥뜨립니다. 그 한계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쳐 본다면, 예수께서는 그 한계를 통해 우리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차원으로 이끌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신비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신비도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과연 주님의 관점이 무엇일까하고 숙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키 재기와 같은 비범한 착상을 통해 하늘 나라를 엿보는 기회를 깨닫게 해줍니다. 영으로 가난하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어린이를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윤경재 요셉)

5.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이는 세상의 논리에 따라 물질과 명예를 더 많이 얻어 성공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평가기준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두고 다른 이를 섬기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는 재물이나 권력이나 인간적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다른 이를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끝자리에 둡니다. 저 아래로 내려가 다른 이를 소중히 여기며 '떠받드는 섬김'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살아야 할 소명이자 고유한 유전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사랑 바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9,37) 예수님의 이름으로, 곧 사랑과 선으로 보잘것없고 힘없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복된 길이라는 것이지요.

허름한 말구유에서 나시어, 보잘것없는 나귀를 타시고, 가난한 이를 위해 갈릴래아를 순례하시다가 나무토막에 매달려 죽어가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바보가 되고 꼴찌가 됨으로써 참 행복에 이르는 이 엄청난 역설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세상맛에 길들여져 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이들은 하느님 사랑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을 믿고 내면을 자신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것이 교만이요 어리석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생각과 신념을 앞세우고 자신의 능력을 믿기에 하느님께서 거처하실 여백이 없습니다. 제멋대로, 제 잘난 맛에 살아가니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세상에 기대지 말고, 내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말씀과 수난의 사랑을 관상해야겠지요.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디며, 보잘것없는 이를 받아들일 때,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을 받게 될 것(집회 2,4-9)임을 믿고, 기꺼이 꼴찌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2월21일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성공의 길은 역설적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어린이란 약하고, 때로 고집스럽고, 성숙하지 못해서, 요즘 같으면 키우고 싶지 않은 애물단지 같은 존재를 뜻합니다.
그래서 그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허영과 욕심,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사람들을 섬기려 할 때 진정한 자유를 체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집회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믿음은 꼴찌가 되어도, 남의 종이 되어도 행복이 하느님 손에 달려 있음을 굳건히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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