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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2월26일 [(녹) 연중 제8주일]매일미사 묵상/꽃개오동 4장


[매묵]2017년 2월27일 [(녹) 연중 제8주일]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8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굽어살피시며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쌓여 가는 노고와 걱정 가운데서도 탐욕과 이기심에 빠지지 말고,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를 깊이 신뢰합시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읍시다.

본기도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여인들이 제 젖먹이를 잊는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시온을 잊지 않으신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시종이고 관리인이며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말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며,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니,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14-15
제2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4,1-5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4-34

영성체 후 묵상
▦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려 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면, 이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깁시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경제적 불평등과 이민족의 지배로 인해 군중이 겪는 빈곤과 박탈감, 분노와 슬픔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군중을 예수님께서는 아주 명쾌하면서도 감동적인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먹고, 입고, 자는 일, 곧 의식주입니다.
여전히 절대적 빈곤층이 지구상에 넘치는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모질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며 걱정하는 것은, 절대적 빈곤층이 겪는 고민과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넘치는 먹거리들 가운데 골라야 하는 어려움을 느끼고,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되는 건강 관리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옷장에 가득 찬 옷들을 보면서도 ‘입을 옷이 없다.’며 한숨을 쉬고, 남들이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 연일 텔레비전에서 등장하는 멋진 남녀들의 모습을 보면 없던 걱정도 되살아납니다.
우리의 걱정거리가 정말 우리가 살고 죽는 본질적인 고민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걱정거리 이전에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된다고 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해 온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나눔을 실천해 왔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는 하느님의 말씀은, 내가 ‘더 잘 먹고, 더 잘 마시고, 더 잘 입는’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고,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나를 더 귀하게 여겨 주시고, 훨씬 더 잘 입혀 주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 내게 죄스러운 느낌이 들게 한다면, 나는 분명히 재물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갇혀,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로 살지 못하고, 내일을 미리 오늘로 앞당겨 사느라,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기 쉽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잊고 살아도, ‘내 바위, 내 구원’이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하느님 신비의 청지기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않습니다(마태 6,24). 세상과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것은 참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필요가 인간의 판단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절대 중심’, ‘존재의 근원이자 궁극적인 목적’ 자체인 까닭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인이 제 몸에서 난 아이를 가엾이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고 넓은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이사 49,15). 따라서 하느님 신비의 청지기는 그 사랑을 믿고, 세상이나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내 삶의 결정적인 길잡이로 확고히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과 성실성이 우러나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스토아학파인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지요. “인간의 가치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가에 결정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이 바로 자기 마음의 크기를 더욱 더 키워서 세상에 주님을 알리는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3. 현재가 선물입니다. 영어 ‘present’ 단어가 이를 증명합니다.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현재의 기적입니다. 

삶이 ‘사실들facts’만 있고 
하느님이, 자연이, 시가, 깊이가, 여운이, 아름다움이, 고백이, 향기가 없으면 
너무 허전하고 허무합니다. 
삶은 시입니다. 시같은 아름다운 인생, 향기로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처럼,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저는 바오로의 다음 확신에 넘치는 고백에서 그의 샘솟는 희망을 읽었습니다.
“나는 누구의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이래야 세상 칭찬에, 세상 비난에, 세상 심판에 초연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자비로운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만 주인으로 섬길 때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온갖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참 자유인이 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동전은 작지만 그것을 우리 눈에 갖다 대면 태양을 볼 수 없듯이 아무리 작은 근심이라도 거기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태양이신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난감한 상황만을 보지 말고 그 상황을 해결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주 하느님을 제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좋습니다. 주 하느님, 당신 안에 뿌리내리면!” 주님 안에 뿌리내려서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2017년 2월26일 [(녹) 연중 제8주일]
오늘의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는 하느님의 말씀은,
내가 가진 것들을 이웃과 나누고,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나를 더 귀하게 여겨 주시고,
훨씬 더 잘 입혀 주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 내게 죄스러운 느낌이 들게 한다면,

나는 분명히 재물의 풍요로움에 마음이 갇혀,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로 살지 못하고,
내일을 미리 오늘로 앞당겨 사느라,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기 쉽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잊고 살아도, ‘내 바위, 내 구원’이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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