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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2월27일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매일미사 묵상/장수만리화 5장


[매묵]2017년 2월27일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리라며,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용서는 얼마가 크신가!” 하고 경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 온 이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이르신다(복음).

제1독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와 하느님의 심판을 깨달아라.>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17,24-29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7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돈 많은 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살아가는 데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정 수준까지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돈이 인간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절대적 빈곤을 겪고 있는 이들이 노력만 하면 필요한 돈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넘치게 많은 부를 누리는 이들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면서도 연민과 자비의 정신으로 자신의 부를 나눌 수 있다면,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 재산이 많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율법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재산의 유혹에도 율법의 덕행을 지키는 이 부자를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사랑스럽게 보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추구하는 ‘영원한 생명’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일깨우시고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넉넉하기에 율법도 지킬 수 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부자에게 이 말씀은 좌절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도 지상의 부유함의 일부로 믿고 싶었던 부자에게는 따를 수 없는 요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부자로 사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이어야 합니다. 부의 축적은 결코 나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계 속에서 서로의 희생과 배려로 얻어진 재산이 자신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천박한 부자가 많아지는 한 사회는 건강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늘 우리에게 도전이자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인가 봅니다. ‘천박한 부자’로 살기보다 가난하지만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잊지 맙시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집회서 저자는 이렇게 말씀을 전하며 위로와 힘을 주고 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인내심을 잃어버린 자들은
위로하신다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집회 17,24-26)

2.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계실 때, 어떤 부자가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10,17)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평범한 길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한 길입니다.

부자의 몸짓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소유했는데, 뜻밖에도 ‘달려와’ ‘무릎을 꿇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그는 달려올 만큼 간절했기에 무릎을 꿇으며 최대한 존경심을 드러냈습니다. 얼핏보면 재물에 대한 욕망을 키우며 그 맛에 젖어 살아온 그가, 영원한 생명을 위해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만 드러냈을 뿐, 결국 하느님 나라와는 동떨어진 ‘소유의 나라’로 되돌아가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걸림돌은, 어려서부터 율법의 계명을 다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자만이었습니다(10,19-20).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그리스도는 알아뵙지 못한 채, 행동으로 의롭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 부자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위해 오셨고, 의롭게 하는 믿음 없이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가짜 신앙고백을 합니다(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그분께서는 그에게,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10,18) 하십니다. 그가 예수님의 육화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선하신 분’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호칭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가짜 믿음을 거부하신 셈입니다.

이렇듯 하느님 나라는, 자신의 잣대로 원의를 드러냄으로써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모든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그분을 ‘선하신 분’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부자처럼 호의를 베풀 듯 주님을 찾거나,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좋은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완전한 선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2월27일 [(녹)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망만 드러냈을 뿐, 결국 하느님 나라와는 동떨어진 ‘소유의 나라’로 되돌아가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걸림돌은, 어려서부터 율법의 계명을 다 지켜왔다고 생각하는 자만이었습니다(10,19-20).

‘천박한 부자’로 살기보다 가난하지만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잊지 맙시다.
아멘...수산나 -



장수만리화 1


장수만리화 2


장수만리화 3


장수만리화 4


장수만리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