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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3월9일 [(자) 사순 제1주간 목요일]매일미사 묵상 / 복숭아나무(서왕모) 4장


[매묵]2017년 3월9일 [(자) 사순 제1주간 목요일]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주님, 주님 없이는 저희가 있을 수 없사오니, 저희에게 성령의 힘을 주시어, 언제나 올바른 것을 생각하고 힘껏 실천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의 주님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와 달라며 기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 에스테르기의 말씀입니다. 4,17⑫.17⑭-17⑯.17㉓-17㉕
복음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7-12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구원의 보증으로 저희에게 주신 이 성체가, 현재와 미래의 천상 영약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예수님 당대 유다교에서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너도 남에게 하지 마라.’라는 계명이 널리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더 적극적인 형태로 이끄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기존 계명은 ‘악을 소극적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은 남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있지요. 반면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은 ‘악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남이 나에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은 나도 남에게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는 법이 요구하는 자세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기를 원하는 대로, 내가 먼저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닙니까?
우리 역시 적극적으로 사랑의 계명, 황금률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남에게 용서받고 싶은 만큼 용서해 주고, 다른 이의 칭찬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칭찬해야 합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바라는 대로 남을 돕고, 남으로부터 이해받기를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려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오해를 겪겠습니까? 사랑을 실천할 힘과 방법을 주시도록 주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하느님은 한결같이 신실하시고 좋으신 분입니다. 
“하느님 그대의 자랑이듯이, 그대 하느님의 자랑이어라.”

바로 오늘 제1독서의 에스텔이 이런 기도의 모범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자의 순수하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 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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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백절불굴의 자세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영적탄력이라 칭하곤 합니다. 믿음의 탄력, 희망의 탄력, 사랑의 탄력입니다. 
기도든 삶이든 참으로 마음의 탄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응답이 응답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기 위해서 입니다. 항구하고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결국 우리의 원의願意도 정화淨化되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내 뜻대로 기도가 아니라 결국은 하느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기도할 때는, 
‘주님, 이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그러나 제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느님뜻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 주님께서는 먼저, 기도로 ‘청하라’고 하십니다. 입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청하라’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해결사가 되지 말고, 구원자이신 주님께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희망하고 열망하라는 말씀입니다.결국, 귀먹은 이가 들을 수 있기를 청하듯, 눈먼 이가 볼 수 있기를 청하듯, 자신의 처지를 알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청하기를 바라십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청하기도 전에 다 아시지만, 우리가 그 필요를 깨달아 알고 절실하기를 바라시며, 또한 그것을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 의탁하기를 바라십니다.
 
다음에는, 몸으로 ‘찾아라.’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아담아 ,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내가 나를 찾아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 있노라’ 하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가슴으로 “두드려라”고 하십니다.

"두드린다.”는 것은 가슴에 타오르는 한결같은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마음의 문을 열고 두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당신께서 마음을 열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이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하십니다.
 
 이토록, 주님께서는 우리가 입(말)과 몸(행동)과 가슴(마음)으로 희망과 믿음과 사랑으로 “아버지를 향하여” 있고 “아버지를 매달려” 있기를 바라십니다. 곧 말로 희망하는 바를 청하고, 행동으로 믿는 바를 찾으며,마음으로 사랑하는 바를 두드리라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가 아니시면, 그 누구도 우리를 구할 자도, 열 자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두드리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이영근 신부)


3.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7,7~12)

하느님께서 두 천사가 가져온 기도 바구니와 감사 바구니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문은 아무리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쉽게 열리지 않는다. 두드리고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두드리고 구함을 그쳐서는 아니 된다. 세속적인 몸으로는 천국의 문을 통과할 수가 없다.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야 천국에서 살 수 있다.”
 
변화의 고통과 어리둥절함을 겪고 감내한 사람만이 경이로운 체험을 맛볼 수 있다. 경이로움을 체험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보라. 외아들 예수도 내게 이렇게 기도하였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소서.’ 예수는 이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도하였다. 그 까닭은 육신을 입은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탄단다. 예수도 그런 기도를 통해 아빠와의 관계를 한순간이라도 잊지 않으려 한 것이다.”
 
기도 바구니가 가득 찬 것은 나와의 관계를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증거이며, 감사 바구니가 더디 찬 것은 자기 왕국을 바르게 다스릴 지혜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생명으로 이끌어줄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며 수고한 두 천사 모두에게 큰 상을 내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아버지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는 소박함의 표현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이 얼마나 거창하겠습니까?
 
집안에서 두 아이가 장난치다가 귀한 물건을 깼습니다. 한 아이는 엄마에게 용서해달라고 품에 달려들었고 한 아이는 용서를 청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머니는 귀한 물건이 깨진 것보다 자식이 용서를 청하지 않아 더욱 서운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가 계속 부모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혼자 다 해결하려 든다면 그처럼 부모에게 속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남으로 살자는 의미와 같기 때문입니다.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참으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많이 청하는 사람이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 때문에 기도에 응답이 없더라도 꾸준히 청하고 다른 것까지 청합니다. 내게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머리카락 개수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데 그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미 세세히 아시겠지. 굳이 주저리주저리 청원하며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왠지 낯간지럽고 나약한 모습만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한계 뒤에 숨으려는 비겁한 행동은 아닐까? 내가 청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을까, 맞지 않을까?

이렇게 미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자녀들은 그저 청할 뿐입니다.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그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넘기면 됩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런 소극적인 생각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서먹서먹하고 멀어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마음은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멀어지지 않으려면 청원기도든 감사기도든 가리지 않고 아버지 곁에 머무는 시간을 오래 자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윤경재 요셉)


4. 기도의 응답은 때때로 즉각 이루어 주십니다. 가르멜 산위에서 기도한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곧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천천히 적당한 때에 이루어주시기도 합니다. 다윗왕은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지만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케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이루어주지 않음으로 응답이 되게 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들어주어서 손해가 될 것은 들어주지 않음으로 해서 유익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큰 사랑으로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최선의 방법으로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고 따라서 우리는 받을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구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고마운 응답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되 내 뜻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길 바라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7,1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좋은 의향을 가지고 마음껏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반복해서 청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그분의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것입니다.”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반영억 라파엘 신부)

5.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선과 의를 위해 필요한 것을 청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일을 하며,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자기에게 닥친 죽음의 위험을 느끼고 하느님께 완전히 의지하는 기도를 드렸던 에스테르 왕비처럼 말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청하는 것이니, 내 중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을 움직이려들지 말아야겠지요. 내가 원하는 것을 내 원하는 때에 이루어주셔야만 한다는 생각은 하느님을 도구화하는 엄청난 착각이요 교만입니다. 언제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겸손한 자세로 청하고, 그 결과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청하기에 앞서 사랑에 몰두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태도가 아닐까요?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깊이 깨닫고, 나 스스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고백하며 청할 때, 주님께서는 청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며, 청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훨씬 더 많이 주시는(7,11) 주님을 믿고, 더 열심히 다른 이들과 이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거룩한 성취의 날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3월9일 [(자)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하느님의 무응답이 응답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기 위해서 입니다. 
항구하고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결국 우리의 원의願意도 정화淨化되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이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그러나 제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느님뜻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보라. 외아들 예수도 내게 이렇게 기도하였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소서.’ 예수는 이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도하였다. 그 까닭은 육신을 입은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탄단다. 예수도 그런 기도를 통해 아빠와의 관계를 한순간이라도 잊지 않으려 한 것이다.”


기도 바구니가 가득 찬 것은 나와의 관계를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증거이며, 감사 바구니가 더디 찬 것은 자기 왕국을 바르게 다스릴 지혜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생명으로 이끌어줄 것이니라.”

기도는 아버지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는 소박함의 표현입니다.
자녀들은 그저 청할 뿐입니다.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그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넘기면 됩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멀어지지 않으려면 청원기도든 감사기도든 가리지 않고 아버지 곁에 머무는 시간을 오래 자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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