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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3월17일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매일미사 묵상/남천 4장


[매묵]2017년 3월17일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를 거룩한 참회 생활로 깨끗하게 하시어, 다가오는 축제를 성실한 마음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위기에 놓였으나 르우벤과 유다의 제안으로 목숨을 건지고, 이스마엘인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끌려간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소출을 받으러 온 포도밭 주인의 아들을 죽여 버린 악한 소작인들의 비유를 드시어,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일깨우신다(복음).

제1독서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7,3-4.12-13ㄷ.17ㄹ-28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3-43.45-46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영원한 구원의 보증인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주님의 뜻을 성실히 실천하여, 약속하신 구원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아버지에게 가장 사랑받는 요셉을 질투한 다른 형들이 그를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져 놓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미디안 상인들이 요셉을 끌어내어 이집트로 가는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지요. 그 후 이집트에서 재상이 된 요셉은 흉년이 들어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온 형들을 끝내 용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세 50,20).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던 형들을 용서함으로써,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습니다. 우리도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따라서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에게서 용서받지 못하고 있는가?’ 이 점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오늘 복음을 보면 포도원 주인, 곧 주님께서는 도조를 받아 오라고 종들을, 곧 예언자들을 계속 보내셨지요. 그런데도 소작인들은 포도원 주인을 그때마다 배반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느님을 고의로 배반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고의로 하느님 계명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이것이 대죄이지요. 이런 고의적인 죄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느님이시기에 우리 의무에 더 충실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일에 대한 결과를 보고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은전 스무 닢에 팔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은전 서른 닢에 팔렸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집트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였고, 가족들에게 편안한 집과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용서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요셉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잘못한 모든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지 200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할까요? 예수님을 유혹했던 악의 세력인 사탄을 닮아야 할까요?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을 닮아야 할까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 사도를 닮아야 할까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무죄하신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빌라도를 닮아야 할까요?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셨던 예수님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했던 군중을 닮아야 할까요?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들의 구원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서 예수님을 닮은 길을 걸어갔던 요셉을 닮아야 합니다.(조재형 신부)


2. 모든 사람을 다 아시는 예수님, (요한 2,24 참조)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도드리오니

저희가 마음속으로 분별이 일어나고 판단이 일어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즉시 아무 생각 아무 분별 하지 않고 기도해 드리게 해주시고 사랑만 하게 해주소서.



3.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이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창세50,19-21ㄱ)


요셉의 시야가 참으로 깊고 넓으며 멀리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봅니다. 

하느님의 시야를 지녔던 요셉은 그대로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겸손한 하느님 꿈의 사람 ‘신神의 한 수手’ 같은 요셉입니다.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즉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이란 고사성어가 그대로 적용되는 요셉의 생애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제1독서에서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질투하여 죽일 음모를 꾸밉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살려낼 생각으로 구덩이에 던져 목숨만은 살려두자고 합니다. 구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은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려가 이집트에서 고통과 수난의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의 도움으로 기근을 해결하게 되지요. 주님께서는 시기 질투로 꼬이고 더렵혀진 관계를 창조의 순간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아벨로부터 요셉,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는 불의와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이며, 다른 이들의 방해와 핍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인간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인간들의 계획은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악조차도 선으로 바꾸시며,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불순한 태도와 왜곡된 사랑을 통해서도 당신의 창조를 이어가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 포도밭을 믿고 맡기시며, 누구든 일하도록 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악과 불의, 교만과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또한 하느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탐하는 탐욕과 질투, 불의와 차별, 무관심이야말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임을 명심하여, 하느님의 포도밭을 성실히 가꾸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3월17일 [(자)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은전 스무 닢에 팔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은전 서른 닢에 팔렸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히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집트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아벨로부터 요셉,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는 불의와 폭력으로 점철된 역사이며, 다른 이들의 방해와 핍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인간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인간들의 계획은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악조차도 선으로 바꾸시며, 우리의 자기중심적인 불순한 태도와 왜곡된 사랑을 통해서도 당신의 창조를 이어가십니다.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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