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17년 3월20일[(백)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다윗 가문의 요셉은 갈릴래아의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3,55; 1,19 참조). 그는 같은 나자렛에 살고 있던 마리아와 약혼했는데,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며 고뇌하지만,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로써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어 예수님과 성모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며 거룩한 교회의 보호자이기도 한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이다.
▦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모시고 공경하는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명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예수님을 기르는 일에 헌신하신 의로우신 성 요셉을 기리고, 그분의 믿음과 덕을 본받기로 다짐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요셉에게 어린 시절의 구세주를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의 구원 계획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나탄을 통해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왕좌를 이을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한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약속대로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의로운 사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예수님을 태어나게 한다(복음).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루카 1,32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4-5ㄴ.12-14ㄱ.16
제2독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4,13.16-18.22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6.18-21.24ㄱ<또는 루카 2,41-51ㄱ>
영성체 후 묵상
▦ 요셉 성인의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다가 선종하고 마침내 부활하는 은혜를 전구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우리 주 예수님을 기르신 아버지시요,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며,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께 간절히 청하오니,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또한 죽을 때에 저희를 지켜 주소서.”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요셉 성인이 어떠한 분이신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약혼자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하자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단호하게 법정에 세웁니까? 율법 학자들에게 고발하여 돌로 치게 합니까? 그저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이런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주님의 계획을 전해 줍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에 요셉은 전적으로 순명합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웠고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의 전형이지요. 그러기에 하느님 말씀을 이 세상에 실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요셉은 가장 겸손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늘 예수님과 성모님의 뒤에서 말없이 헌신하였지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의 남편으로서 동정을 지키며 얼마나 힘든 길을 걸었겠습니까?
그러기에 요셉은 믿는 이의 가장 뛰어난 표본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많이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늘 이를 신앙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오늘 복음에서 보면 요셉은 이제 또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의로운 삶’을 뛰어넘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에서 가브리엘 천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역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유명한 겟세마니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나사렛 성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놓고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신앙은 은총을 주며, 그 은총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때가 많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삶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왜 공부를 하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는 세상입니다. 돈이 삶의 중심이 되는 세상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서 양심을 팔고, 사람을 속이고, 소중한 것들을 멀리합니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면서 나의 삶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 요셉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조재형 신부)
2. 마태오 복음서에는 양부 요셉 성인께서 네 번 꿈을 꾼 것으로 나옵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나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을 때, 포악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작정했을 때, 또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주님과 함께 하려는 그는 꿈을 통해 길을 찾아내었습니다. 꿈은 아무나 꾸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함이 만들어 줍니다. 요셉 성인은 마치 다른 것은 하나도 필요 없다는 식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 성인은 이로써 자신과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출애굽을 실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 성인은 시골 마을 소박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가족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소박한 이 가정을 통하여 말씀은 혈육을 취하고 무럭무럭 자랄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을 다윗가문에 묶어 주었으며 이로써 예수님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다윗의 후손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바로 이런 소박함을 찾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물질도 아니며, 하느님을 찬양한답시고 드러내는 자신의 교만도 아닙니다. 그저 ‘주 바라기’만을 힘쓰는 소박함입니다. ‘주 바라기’의 삶은 침묵 속에서 의로움을 발견합니다. 그 분 얼굴 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의 두 눈을 결코 주님으로부터 떼지 못합니다. 이 땅위에 그의 발자국 흔적이 비록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일지라도 그의 두 눈은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윤경재 요셉)
3. 복음에 기록된 요셉 성인은 먼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다(마태 1,19). 여기서 법이란 율법을 말하므로 요셉은 하느님의 법을 충실히 지키며 사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으며(마태 5,17-18), 율법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고(마태 22,37-39), 사랑을 새 계명으로 주셨다(요한 13,34).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법에 충실한 사람임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법대로 사는 요셉은 마음속에 사랑을 간직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율법에 얽매여 법조문을 글자 그대로 지키기 위하여 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행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꿈을 통해 많은 계시를 내리시기도 하지만, 이를 알아듣고, 믿고 따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자신이 편하고 이롭다고 생각하는 편으로 행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계시를 듣고도 이를 무시하거나 등한시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을 따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하곤 한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성인은 꿈에 받은 계시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꿈에 받은 계시에 따라 예수님과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했으며, 또한 자기 나라로 돌아왔다. 그는 이처럼 계시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성인은 소명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을 때, 성인은 이 소명에 충실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 마리아를 충실히 보호했다.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갔을 때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자, 성인은 외양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는 것을 묵묵히 도왔다.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하였으며, 해마다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다니면서 예수님이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앙심을 가지도록 이끌어주셨다. 이처럼 성인은 아기 예수님이 구세주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당신의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겸손한 삶을 살았다.
오늘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면서, 요셉 성인의 삶을 묵상하자.
하느님의 법에 충실하여 마음속에 사랑을 가득 담고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하느님께 대한 깊은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 묵묵히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면서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키워준 신앙인,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신앙인이 곧 요셉 성인이었음을 생각하자.
우리 가정의 자녀가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되고, 또 하나의 구세주가 될 수 있도록 성인을 본받고, 성인처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자.(경규봉 가브리엘 신부님)
4. 어떤 사람은 가족, 어떤 사람은 명예, 어떤 사람은 꿈, 어떤 사람은 성공 등 매우 다양합니다. 이럴 때면 주님께서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그런 것들이 주님께 대한 사랑을 갉아먹는다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라라랜드’란 영화에서 다루는 내용은 ‘사랑이냐, 꿈이냐’란 주제입니다.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두 사람 다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째즈카페를 차리는 것이고 한 사람은 배우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꿈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룬 장소에서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며 영화는 끝납니다. 둘이 헤어지게 된 이유는 한 사람이 상대자가 자신의 꿈을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것 같은 서운함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상대의 꿈을 밀어주지만 결국 그것이 완전히 결별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저는 그래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완전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 꿈이 자신과 하나가 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다는 사람은 자신의 걸림돌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돈이 있으면 이웃을 더 도와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돈을 좋아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이 좋은 것이지 남편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돈을 더 이상 벌어주지 못할 때, 혹은 병원에 입원해서 돈만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아내는 힘들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에서 거지의 구걸을 받았습니다. 돈을 주고 싶어 주머니를 찾았으나 그날따라 동전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는 거지에게 미안한 말을 전했습니다.
“형제여, 마침 한 푼도 가진 것이 없으니 정말 미안하오.”
그러나 거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돈이 문제입니까?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훨씬 값진 것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형제’라고 불러 주셨으니까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이 여인은 삶에 지쳐있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물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하시자 그런 물이라도 있으면 달라고 합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자신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줄 많은 물을 찾았지만 갈증만 더 심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성령님을 주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대답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던 대답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려는 순수한 사랑,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그 성령님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 여인은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누구도 자신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 말씀은 “네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남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한 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과 한 몸이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으면 자살을 해 버립니다. 자신을 잃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과 하나인 사람에겐 참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순수한 사랑이신 성령님을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 대한 애정을 끊는 것이 참 예배의 시작인 것입니다.
성모님은 카나의 혼인잔치 때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포도주를 만들어달라고 청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무언가를 청한다면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감소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청하면서 동시에 “당신만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돈을 청하면서 “주님만을 사랑해요.”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포도주가 없구나!”라고 사실만을 전달하십니다. 나머지는 예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온전히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미 그만큼 예수님에게서 시선이 떠나있는 것입니다. 바라보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와는 아담을 바라보지 않고 선악과를 바라보았고, 아담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와를 바라보았습니다. 순결한 사랑을 위해 사마리아 여인처럼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좋아하고 애정이 가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인 성령님을 충만히 부어주실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7년 3월20일[(백)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오늘의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요셉은 하느님의 법을 따른 의로운 사람...
요셉은 꿈(4번)을 꾸고 그 꿈의 지시에 순명한 사람...
예수님과 성모님을 지킨 소명에 충실한 사람 ...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한 사람....
오늘 성 요셉 대축일을 지내면서, 요셉 성인의 삶을 묵상합니다.
아멘...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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