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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심화반

[문예심화반 제13강 글짓기 영화 <사일런스> 관람 후기](2017.4.5.수)/해미성지 진둠범 등 4장


[문예심화반 제13강 글짓기 영화 <사일런스> 관람 후기]

 

일본 작가 엔도 슈샤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일런스>를 며칠 전에 관람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시나리오 각색만 15, 제작 30여년이 걸려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이 김이 펄펄 나는 유황이 나오는 온천 지대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기리시탄(카톨릭) 신자들을 구멍 뚫린 국자로 끓는 물을 끼얹는 장면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이 잔인하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난다. 동서양 모두 옛날에는 지배자가 피지배자인 약한 백성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현대에 살고 있는 사실에 감사하다. 기독교의 가치관은 종말론이다. 종말로 갈수록 사람들의 평균 영성이 높아지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많아진다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영성이 발달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뜻에 좀 더 가까이 갈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영화 사일런스에는 세 부류의 신부님 모습이 등장한다. 배교하여 개종한 페레이라 신부(리암니슨 분), 순교한 가르페 신부(아담 드라이버 분), 배교는 했으나 개종은 하지 않은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 분)가 있다.


선불교로 개종하여 부인을 두고 신은 없다고 공언을 한 예수회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고 그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포르투갈에서 일본으로 두 신부가 간다. 제자인 로드리게스 신부와 가르페 신부이다. 마카오에서 일본인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 분)가 이들 신부의 길안내를 맡게 된다. 신부 일행은 배를 타고 나가사키의 기리시탄을 믿는 신도들 마을에 제대로 도착했다. 신도들은 두 신부를 극진히 모시며 은신처에서 절대 나오지 말 것을 당부한다. 두 신부는 은신처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신도들의 고해성사를 받는다.


기치지로는 마카오로 가기 전에 기리시탄 신도였는데, 처형될 위기에서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였다며 용서를 구한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기치지로의 고해성사를 받는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은신처에 숨어있기가 답답하고 지루해서 두 신부는 밖에 나와서 일광욕을 하다가 기리시탄이 아닌 사람들 눈에 띄어 발각이 된다. 두 신부를 잡으러온 이노우에 수령(잇세이 오가타 분)은 신부를 내놓지 않으면 마을 사람 4명을 처형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회의를 연 마을 사람들은 신부를 고발하지 않기로 하고 처형당할 사람 4명을 선정한다. 이중에 기치지로도 뽑히게 된다.


두 신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믿음을 이어가는 일본 신자들에게 큰 감명을 받는다.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신도들은 "저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을 향한 제 사랑은 굳건합니다."라며 오로지 신앙심으로 박해의 순간을 견뎌내는 이들의 모습은 두 젊은 사제에게 신과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마을의 신도 4사람이 잡힌다. 이노우에 수령은 후미에(예수님 성화가 그려진 동판)를 발로 밟아 배교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4명 모두 후미에를 밟는다. 그러나 마음이 바뀐 수령은 후미에를 밟는 행위로 배교를 인정 못하겠다며 십자가고상에 침을 뱉으라고 다시 명령한다. 기치지로는 침을 뱉어 살아남는다. 3명의 마을사람들은 침을 뱉지 못하여 바닷가 밀물이 들어오는 곳에 십자가에 매달리는 처형을 받는다. 밀물에 몸이 잠기어 서서히 죽게 되는 형벌이다. 3명 중 1명은 3일 만에 죽었다. 십자가에서 그들이 죽어가는 동안 두 신부와 마을 사람 모두 숨죽여 침묵한다. 하느님도 침묵한다. 자연도 일상 그대로 침묵한다. 영상이 장중하고 묵직하고 조용하다. 침묵하는 하느님은 과연 계시는가. 영화의 제목 <사일런스>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온 세계가 고요하다.


기치지로는 자기만 살아남은 배교행위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또 다시 고해성사를 청한다. 이후에 기치지로는 로드리게스 신부를 은전 300냥에 팔아넘기는 유다의 행위를 한다. 포승줄에 묶여 관헌에게 끌려가는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자기를 용서하라며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수시로 배교하고 수시로 회개하는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 분)의 캐릭터가 연구 대상이다.


인터넷에서 <사일런스> 영화에 대한 여러 칼럼을 읽었다. 기치지로와 같은 캐릭터가 앞으로 현대 사회에서 살아갈 인간상이라고 표현한 글이 있다. 순교의 역사를 자랑으로 알고 있는 나의 기존 관념에 새로운 충격을 주는 글이다. 이념이나 사상, 종교에 목숨 거는 시대가 이미 지나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다가온다. 전 세계가 하나로 되어가는 세상에서 국가와 사회, 단체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전체주의 문화보다는 비록 작고 가난하고 병들어서 사람 구실을 못 할 것 같아 보이는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그 개인의 권리와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고 배려하는 인권주의 문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 분)는 사람이 아닌 키가 큰 한 마리의 원숭이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천방지축 이리 저리 날뛰는 짐승의 모습이다. 비천하고 비루한 모습의 기치지로이지만 그래도 하느님과 관계를 끊지 않고 이어가고 있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끝없이 날뛰며 죄를 짓는 기치지로와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침묵하시며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 분)는 이노우에 수령(잇세이 오가타 분)의 집요하고 잔혹하며 다양한 배교의 유혹을 받는다. 로드리게스 신부가 보는 앞에서 기리시탄 신도의 목을 댕강 잘라 땅바닥에 뒹굴게 하고,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귀 뒤에 구멍을 뚫어 피가 흐르게 하면서 밤새도록 그들의 신음과 고통의 소리를 듣게 한다. 신부가 배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 몇 명이 죽는다고 수령은 협박한다. 예수회의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리암니슨 분)를 만나게 하여 설득도 한다. 스승 페레이라는 로드리게스에게 "저들에게 고통을 줄 권리가 있나? 그 고통은 신이 아니라 자네만 끝낼 수 있네."라며 배교할 것을 권한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신도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신이 아니라 자신임을 알게 된 그는 종교적인 신념과 인간적인 도의 사이에서 근원적인 갈등에 놓이게 된다. 이노우에 수령은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을 사람처럼 단아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렇게 사람을 죽인다. 일본 막부의 공고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리시탄을 불순 세력으로 판단하여 살인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절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가르페 신부(아담 드라이버 분)는 순교한다. 가르페 신부와 함께 잡힌 신도들. 이들의 처형 장면을 로드리게스 신부가 보도록 계략을 꾸몄다. 멀찌감치 떨어진 천막에서 모든 광경을 볼 수밖에 없는 로드리게스 신부이다. 사람을 짚으로 둘둘 말아 배에 싣고 가서 짚에 불을 지른 후 바다에 던지고 창으로 찔러 죽인다. 밧줄에 묶인 가르페 신부는 이 살해 장면을 보고 흥분하여 절규하면서 배가 떠있는 바다로 들어가다 창에 찔려서 죽게 된다. 순교가 가능해진 것이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관헌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으므로 순교가 불가능했다. 영화의 말미에 로드리게스 신부는 결국 배교를 한다. 어느 누가 배교한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영화 사일런스를 관람하고 친구와 토론 중에 네가 만약 영화 속의 한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이겠느냐는 질문이 들어 왔다. 평신도라면 다수가 선택한 순교할 가능성이 있고, 신부라면 로드리게스 신부처럼 배교할 가능성이 있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 친구의 말인즉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어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신부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이러하리라 예상하지만 그 순간의 이끌림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결론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단죄할 수 있겠는가.


최진석 교수의 노자 인문학 강의가 생각난다.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이념과 잣대로 가치를 매기는 순간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 미인대회의 기준이 생기는 순간 그 기준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미 폭력이 가해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노자가 말하는 비우고 가볍게 살라는 말은 결국 그런 내 안의 외부로부터의 가치와 기준들을 하나씩 약화시키라는 말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을 무너뜨리라는 말과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란체스코 교황님 강론에서 성인도 하루에 일곱 번씩 죄를 짓는다고 한다. 죄에 흐를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인정하여 언제든지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서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져야하리라. 아무리 비루하고 비천한 기치지로와 같은 우리 모습일지라도 우리가 돌아오기만 하면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랑 하실 테니까 말이다.

 

- 2017329일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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