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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0503 시]신록 新綠 (1915~2000)

[2021년 5월3일(월) 오늘의 시]

 

 

※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752〉

■ 신록 新綠 (1915~2000)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 1968년 시집 <동천> (민중서관)


  *며칠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럽던 하늘이 맑게 개인 후 눈부신 햇살이 비추자 더욱 화사하고 싱그러운 5월 초순의 신록이 우리를 상쾌하게 만드는 요즘입니다. 어제는 유난히 청명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나날이 푸름이 짙어지고 있는 주변의 정경이,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젊어지며 힘을 솟구치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이 詩는 꽃이 지고 신록이 돋는 찬란한 계절인 봄이 다시 돌아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느끼는 마음속의 깊은 정회(情懷)에 대해 노래한 작품입니다.
   시인은 화창한 봄날의 약동하는 찬란한 신록과 서럽게 떨어지는 붉은 꽃잎 앞에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렬한 사랑을 하고픈 심정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예전 혼자만이 가슴에 곡 간직하고 있던 아쉽고 절절했던 사랑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좀 더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해보자면, 신록 아래 꽃이 서럽게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랑의 본질이 죽음과 이별에 귀착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Choi.

 

대도사 전통찻집에서 바라다 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