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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0506 오늘 시와 글]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1945~)/글: 예수는 왜 어린이를 품에 안았는가(도올 김용옥)

※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755〉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1945~)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1978년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작과 비평사)

  *돌이켜보면 1970년대에는 급속한 경제개발과 함께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창 진행되며, 많은 이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집중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배움이나 별다른 기술 없이 도시로 몰려온 대부분은 산업화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반복되는 삶을 사는 단순한 도시 노동자로 전락한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이 詩는 그 때인 1970년대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내고 흐르는 강물에 삽을 씻으며 인생을 성찰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고달픈 삶을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임을 수용하는 체념적인 태도를 차분하고 절제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라 하겠습니다.
   한편 노동자가 하루 일을 마치고, 강가에서 삽을 씻으며 늘 배고프고 서글픈 현실에 대해 자조(自嘲)하는 내용의 이 詩가, 그 당시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식인들에게 큰 공감을 준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하겠지요.
   지금 와서 이 작품을 다시 읽어봐도, 가난한 노동자의 서글픔이 마음에 와 닿는 듯 호소력이 있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Choi.

 

 

예수는 왜 어린이를 품에 안았는가

내(예수)가 어린이를 품에 안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혁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새로운 질서를 의미합니다.
새로운 질서는 현세를 지배하는 '가치관의 전도'를 요구합니다.
이 전도의 상징이 나에게는 어린이였습니다. 
순결한 어린이를 영접하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나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영접하는 것은
곧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 도올 김용옥의 《나는 예수입니다》 중에서 -

* 맞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를 품은 것은 혁명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는 가치관의 전도에서,
가치관의 전도는 생각의 전환에서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가진 순결함을 회복할 수는 있습니다.
그 순결한 어린이를 품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일이며 혁명의 시작입니다.

**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어린아이의 순결한 마음을 갖는 것은
극과 극의 가치를 동시에 가질 것을 요구하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주문입니다만,
온전한 인간이 되려면 그 어려운 도전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일 듯요.
그렇게 사는 삶만이 의미가 있는 듯요.
평안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