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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월 26일 금요일[(백)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월 26일 금요일[(백)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티모테오 성인과 티토 성인은 바오로 사도의 제자며 선교 활동의 협력자들이었다. 티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티토는 크레타 교회를 맡아 돌보았다.
바오로 사도의 그의 서간 여러 곳에서 이들을 칭찬하고 있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 그리고 ‘티토에게 보낸 서간’에는 목자들과 신자들에게 지침이 되는 권고가 많이 담겨 있다.

입당송

시편 96(95),3-4 참조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사도의 지혜와 용기를 주셨으니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현세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다가
마침내 천상 고향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5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1,1-5
1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의 믿음을 돕고
신앙에 따른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것으로,
2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에 약속하신 것입니다.
3 사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복음 선포를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드러내셨습니다.
나는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선포의 임무를 맡았습니다.
4 이러한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5 그대를 크레타에 남겨 둔 까닭은, 내가 그대에게 지시한 대로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96(95),1-2ㄱ.2ㄴ-3.7-8ㄱ.10(◎ 3 참조)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을 전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 주님께 드려라, 뭇 민족의 가문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복음 환호송

루카 4,18
◎ 알렐루야.
○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 알렐루야.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티모테오와 티토를 기리며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 마음을 깨끗이 씻어 주시어
저희가 주님께 맞갖은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마르 16,15; 마태 28,20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거룩하신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복된 티모테오와 티토가 열성으로 전파하고 굳게 지킨 믿음을
저희가 더욱 풍성히 가꾸어 나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오늘의 묵상

1. 2024년 01월 26일 금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소유를 요구하십니다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까지도 지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가진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은 공생활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제자들이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일 안에서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예수님께서는 성령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가지지 마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 마음은 그 하나를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두 개세 개…… 가진 것이 점점 늘어나면우리 마음도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명확합니다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 하느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복잡한 마음갈라진 마음갈등을 겪고 있는 마음 안에 놓여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미 세례와 견진 성사를 통하여 티모테오처럼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믿으십시오.

성령의 인도와 함께 가족과 이웃들에게 평화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서 보내신 일꾼이 되는 오늘 하루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1/26(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 11 24일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하였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등불과 같습니다.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첫걸음의 시작은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든 고향과 친족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이 첫걸음은 이웃을 향해서 내 딛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아픈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웃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첫걸음은 공동체를 향해서 내딛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나의 형제요, 어머니냐?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나의 형제요, 어머니다.”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이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 율법학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강도당한 이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공동체를 향해서 내딛는 첫걸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인간을 넘어 함께 살아가야 할 모든 생명, 어머니인 지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도 주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공동체를 향해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가 내딛는 첫걸음에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는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입니다. 공간에 대한 소유가 시간과 전진에 대한 관심을 압도할 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공간에 대한 소유가 시간과 전진에 대한 관심을 압도할 때 전쟁과 폭력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창고에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기뻐하는 부자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다고 하셨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부자가 하늘나라에게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종교의 가르침은 공간보다 시간을 우선시 합니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고통 중에 있는 중생들에게 집착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욕망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해탈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공간과 소유가 차지할 자리가 없습니다. 공자도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 공자의 이 말로부터,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시간이 공간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공간에 대한 집착보다 시간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요한 사도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백번 묻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낮다고 합니다.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행하는 것이 더 낮다고 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참된 양심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교회 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 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갇혀버리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수 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서 먼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소명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세 번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비그리스도인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었을 때, 유대 군중에게 자신의 소명을 밝히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맹렬히 박해하던 자신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교의 선교사가 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유대인이며 바리사이의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에 대한 열성으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골수분자였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자신의 의지나 타인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나자렛 예수님과의 초자연적인 만남을 통해서였음을 말합니다.

곧 다마스쿠스로 인도되어 하나니아스로부터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때 하나니아스는 바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도 22,14-15)

이 말 속에는 신앙생활의 원리가 세 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선택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곧 바오로가 회개했기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택한 바람에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회개했기에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르심으로 우리는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분을 뵙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삶을 신앙생활의 원리로 삼아 살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를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그분이 들려주시기에 들을 수 있고, 보여주시기에 볼 수 있고, 깨우쳐주시기에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듣고 본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파견한 분에 속한 이가 우리의 신원이요, 파견한 분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요, 복음전파가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습니다. 

회심이란 단순히 죄에서 돌아선다는 의미가 아니라, ‘참된 부르심을 찾는 일’입니다. 

“성인이 성인인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직접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부르심이 하느님한테서 온 것이라고 느끼고 전적으로 응답했기 때문이다.”

(로버트 엘스버그,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마르 16,15)

 

주님!

제 자신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소서.

세상에로, 이웃형제들에게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아가게 하소서.

먼저 다가가고,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자국민이나 이주민이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사람이거나 자연이거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형제가 되게 하소서

함께 걷되 손을 잡고 걷고, 땅을 딛고 걷되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세상에 살되 세상의 힘이 아닌, 복음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22,3-16 마르16,15-18



                                                                     회심의 여정
                                               -안으로는 회심의 제자, 밖으로는 선교의 사도 -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오늘로서 1.18일부터 시작한 일치주간도 끝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양측에서 공히 참 좋아하는 성인이 바오로 사도, 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제가 프란치스코 세례명을 갖게 된 것도 예전 개종하기전 개신교에서 유일하게 알았던 성인이
프란치스코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분들의 특징은 전격적 회심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중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정말 오늘 사도행전에서 보다시피 극적입니다. 


바오로의 극적인 회심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보면 주님께서 때가 될 때까지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렸는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주님은 당신 사람으로 점찍어 놓은 사람은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성 스테파노의 거룩한 순교 장면을 시종일관 겪었던 사울이었으며 아마 주님은 이후로도
결정적인 계기를 기다렸던 듯 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목하셨던 것은 바오로 사도의 한결같은 불같은 열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 22장은 바오로 사도의 일장 연설중 자기의 전 회심과정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그가 얼마나 신자들의 박해에 극성스러웠는지 바로 그때에 주님이 개입하셨음을 고백합니다.


바오로의 회심에 앞서 주님과의 극적 만남의 장면이 너무 생생합니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바오로 사도를 비추자
그는 바닥에 엎어졌고 이어지는 주님의 개입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줄 것이다.”


이 장면은 늘 읽어도 새롭고 신바람이 납니다.
주님은 바오로가 박해하는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새삼 주님을 믿는 자들에 대한 행위는 그대로 주님께 하는 행위임을 깨닫습니다.
믿는 형제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현존이라는 놀라운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마태복음 후반부 최후심판(마태25,31-46) 이야기중 다음 대목을 연상케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아마도 바오로 사도를 회심으로 이끈 이 생생한 주님과의 만남을 바오로 사도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지요!
아마도 바오로 사도의 지칠줄 모르는 불덩이 같은 선교열정의 원동력이 되었을 체험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주님께서 사랑하는 당신의 종들을 다정히 부를 때를 연상케합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모세야, 모세야!”
얼마전의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셨을 때,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답하던
사무엘의 모습도 연상됩니다.


당신의 때가 되자 주님은 전광석화, 일사불란하게 바오로를 사로잡으니
바오로는 완전히 주님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주님은 이미 예비한 당신의 사람 하나니아스가 주변을 대변하여 주님의 뜻을 전합니다.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당신이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주님을 만나 회심과 더불어 눈을 뜨니 이젠 예전의 사울이 아닙니다.
주변은 그대로 이나 보는 내적 눈은 완전히 바뀌어졌을 사울입니다.
이제 주님의 증인으로서 새로운 선교사명이 사울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의 불이 되어 곳곳에 마침내 로마에까지 복음의 불을 붙이니 활활 타오르는 복음의 불은
미구에 전 유럽을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 바오로의 눈부신 전교활동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말그대로 오늘 다음 복음 말씀 처럼 사명을 수행한 바오로 사도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무슨 복음입니까?
바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그리스도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모두가 이런 주님과 일치되어 무지와 허무의 노예살이 어둠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감이
복음 선포의 궁극 목표입니다.


생명이요 빛이요 길이요 희망이요 진리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이니, 이런 파스카 예수님 아닌 복음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산불처럼 번지는 복음의 불, 사랑의 불, 말씀의 불,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의 불이요,
지금도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선교의 불, 복음의 불입니다. 


주님께 만약의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니 만약 바오로가 없었다면?
부질없는 질문이요 이미 주님께서 예비한 당신 복음의 일꾼 바오로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여기 살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 섭리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다시 산대도 이렇게 뿐이 못살 것 같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살아갈 복음 선포의 장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과 더불어 깊이 성찰해야 할 우리의 회심의 여정입니다.
바오로의 결정적 회심으로 회심은 끝났을까요?


분명히 확신하건데 아닐 것입니다.
순교의 그날까지 계속되었을 회심의 여정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 역시 똑같이 회심의 여정입니다.
우리 요셉수도원의 첫 순교자처럼 생각되는 정훈만 세례자 요한 수사가 떠난지도 11년째요,
그가 만들어 정자에 붙여놓은 “回心亭(회심정)” 명패는 여전합니다. 


죽는 그날까지 계속될 주님과 만남의 여정, 회심의 여정, 친교의 여정, 성화의 여정,
예닮의 여정중에 날로 주님을 닮아 성인이 되어 가는 우리 삶의 여정입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로 내 삶을 압축할 때 어느 시점(時點)에 와 있으며,
어느 정도의 성덕(聖德)에 도달해 있는지 가늠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회심의 여정과 함께하는 선교의 여정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은 교회의 존재이유이자 본질적 사명입니다.
선교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요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안으로는 주님과 회심의 “친교”, 밖으로는 복음 선포의 “선교”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바라시는 바, 친교와 선교, 수렴과 확산의 리듬에 따라 날로 복음화되는 세상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만남의 열매, 회심의 열매, 친교의 열매를 세상과 나누라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끝으로 우리 정주 요셉수도원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나누고 싶습니다.
바로 우리 수도원 자체가 존재론적 복음 선포의 장이요, 안으로는 관상의 제자로,
밖으로는 활동의 사도로 사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끊임없이 거행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에서의 환대를 통한 섬김과 나눔의 선교,
저는 바로 이것을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선교라 부릅니다.
이를 요약한 고백시를 나눕니다.
회심의 친교 열매는 환대의 선교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1/26(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김재덕 신부)

 

2.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공간에 대한 집착보다 시간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조재형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마르 16,15)

 

주님!

제 자신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게 하소서.

세상에로, 이웃형제들에게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아가게 하소서.

먼저 다가가고,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자국민이나 이주민이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사람이거나 자연이거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형제가 되게 하소서

함께 걷되 손을 잡고 걷고, 땅을 딛고 걷되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세상에 살되 세상의 힘이 아닌, 복음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우리 요셉수도원의 첫 순교자처럼 생각되는 정훈만 세례자 요한 수사가 떠난지도 11년째요,
그가 만들어 정자에 붙여놓은 “回心亭(회심정)” 명패는 여전합니다. 

죽는 그날까지 계속될 주님과 만남의 여정, 회심의 여정, 친교의 여정, 성화의 여정,
예닮의 여정중에 날로 주님을 닮아 성인이 되어 가는 우리 삶의 여정입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일년사계(一年四季)로 내 삶을 압축할 때 어느 시점(時點)에 와 있으며,
어느 정도의 성덕(聖德)에 도달해 있는지 가늠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수철 신부)

 

1/26(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제398(제28)일 기도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말하게 하소서.

 

- 2024년 1월27일(토) 9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