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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월 27일 토요일[(녹) 연중 제3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월 27일 토요일[(녹) 연중 제3주간 토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2,1-7ㄷ.10-17
그 무렵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1(50),12-13.14-15.16-17(◎ 12ㄱ)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소서.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
○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죽음의 형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제 혀가 당신 의로움에 환호하오리다.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

복음 환호송

요한 3,16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매주 수요일에 직원회의가 있습니다. 보통은 업무보고를 하고, 저의 일정을 이야기하면서 회의는 30분 안에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가끔 현안에 대한 토론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매년 조금씩이라도 급여를 인상해야 하는데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급여를 삭감하였고, 대신에 근무시간을 단축했습니다. 편집기의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신문제작에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아직 새 편집기를 구매할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회계업무 간소화를 위해서 퀵북(Quick Books)'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토론을 토론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서로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것을 존중하면 되는데 성격상 그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못하는 엄마의 심정 같기도 합니다. 저도 어릴 때 어머니에게 원하는 것들을 말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음에 해 줄게라고 하시기도 하고, 있는 것 일단 사용하라고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야속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문사에 애정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직원들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2024년에도 신문홍보과 광고를 통해서 신문자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것이 저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기업은 주로 가족들이 경영권을 승계하지만 미국의 대기업은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을 것 같습니다. 전문경영인은 경험도 많고, 잘못되었을 경우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검증된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면 기업은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사도들이 이끌었습니다. 사도들의 열정과 헌신은 교회를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박해라는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교회에 제자가 아닌 전문가가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그리스어에 능통하였습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로마에서 공부하였고, 로마의 시민권도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의 율법은 물론 그리스의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의 판단에 교회는 유대의 율법과 전통을 위협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교회를 박해하는 편에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초대교회는 그를 교회의 지도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열정과 헌신으로 교회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아시아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학과 교리는 교회 조직의 토대가 되었고, 그가 보낸 서간은 지역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전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다는 부활의 믿음입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이었고, 그의 죽음은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표징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는 믿음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사도 바오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언자 나탄은 다윗 왕은 잘못을 예리하게 지적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자신이 권력을 이용해서 충실한 부하를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이 나탄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았다면 다윗 왕은 잊혀진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나탄의 이야기를 경청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판결을 받아들였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거듭 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풍랑을 만나 두려웠습니다. 호수에 빠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늘 풍랑이 불기 마련입니다. ‘교만, 나태, 시기, 탐욕, 인색, 탐식, 욕정의 바람입니다. 그 바람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불렀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 시작은 바오로 사도가 회심했던 것처럼, 다윗 왕인 회개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부르면,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리면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저는 악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당신께 돌아오리이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복음마르 4,35-41

 

세상만사를 섭리하시고 보살피시는 우리 주님이심을 굳게 믿고 거듭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가끔 우리 인생 여정에도 거센 돌풍이 일 때가 있습니다.

때로 그 돌풍은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처럼 강력한 타격을 우리에게 끼칩니다.

그로 인한 끔찍한 고통과 상처가 우리 공동체 안으로, 우리 가정 안으로, 내 영혼 안으로 밀려 들어와

우리를 큰 슬픔과 근심에 잠기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고 답답한 일은 우리의 구세주요 의지처이신 주님께서 그토록 힘겨운 순간

도무지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칩니다.

 

“대체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이 계신다면 어찌 우리에게 이토록 혹독한 고통을 겪게 하십니까?”

 

넘실거리는 파도로 인해 배 안으로 물이 가득 들이차게 되자,

잔뜩 겁에 질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외칩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생사의 주관자, 만물의 창조주,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 승선해 계시는데도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 품안에 푹 안겨서 더 이상 행복할수 없는 상황인데, 매일 주님을 모시고,

그분과 접촉하며, 그분이 내 안에 거처하시고 현존하시는데도, 대체 주님은 어디 계시나?

대체 뭐하시나? 라고 울부짖습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우리네 인생 여정뿐 아니라 우주 만물, 삼라만상을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매일 밀려오는 근심 걱정들, 의혹과 불안함을 그때그때 자비하신 주님 손길에 맡겨드려야겠습니다.

세상만사를 섭리하시고 보살피시는 우리 주님이심을 굳게 믿고 거듭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전삼용 요셉신부 강론

 

1/25(금)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복음을 전하면 어째서 죄에서도 벗어날까?

오늘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주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편지를 쓴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많이 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할 때 내용입니다. 특별히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는 말씀은 큰 울림을 줍니다. “수확할 것이 많다. 근데 일꾼은 적다. 너는 뭐하고 있니? 빨리 일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시는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죄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묵상해보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죄에서 벗어나는 것, 에덴동산에서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선악과를 먹지 않게 되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주님의 일을 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래도 선악과가 탐스러워 보였을까요? 어쩌면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기에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요?

죄는 행복해 보이니 짓게 됩니다. 만약 남편이 뭐 외도를 했다. 그래서 또 여자분이 굉장히 힘들어서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시는 분이 계셔요. 그런 분을 볼 때는 남자도 문제가 있지만 암 걸리는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그렇게 바람피우는 일이 행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가 더 고통스러울 수 있거든요. 어떤 분은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이 처음에는 아주 미워 보였다가 나중에는 성체조배를 1년 동안 하고 났더니, 남편이 불쌍해 보이더래요. 죄짓는 게 더 이상 행복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신 거죠.

우리의 선택은 항상 뭐가 더 행복인가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달려있습니다. 뱀이라고 하는 것은 내 안에서 죄를 더 행복하게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를 유혹하지 마! 나는 죄를 끊을래. 나는 유혹을 안 받을래. 나는 사탄에게서 벗어날래.” 하더라도 더 큰 행복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찾지 못하면 절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더 큰 기쁜 맛이 있어야 합니다.

초신자의 시선이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자매가 심한 우울증에 걸렸어요. 엄마랑 둘이 사는데 뭔가 대인관계가 안 되는 거죠. 친구들한테 왕따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점점 더 학교에 안 나가고 싶어지고 집에만 머물고 성적 떨어지고 대학도 들어갈 수 없게 되고 심지어 혼자 계신 어머니가 암에 걸리신 거예요. 그러니까 고통을 더 이상 감내를 할 수 없는 거죠. 개신교에 다니긴 했는데 기도들 했대요. 울기도 하고. 그런데 이 현실로 돌아오면 또 똑같은 거예요.

내가 정말 외로울 때 내 그 불안함과 외로움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거는 내 나 자신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정말 고마운 거죠. 고마우면 나 자신의 말을 따라주게 되는데 자아는 뱀이잖아요. 그러니까 뱀이 원하는 게 뭐겠어요. 나의 멸망인 거죠. 자기처럼 땅으로 끌어 내리기를 원하는 거죠. 안에서 자꾸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냐면 “죽어. 살면 뭐 해?”

정말 죽는 게 전혀 두렵지 않았대요. 그만큼 삶이 힘들었던 거죠. 근데 이게 뭐예요? 유혹인 거잖아요. 뛰어내리는 게 더 맛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바닥이 뱀이 우글거리는 땅이 쑥 꺼지면서 지옥이 보이는 거죠. 그냥 바닥이었으면 바로 뛰어내렸을 텐데 죽음이 끝이 아닌 영원한 고통의 시작임을 보고서는 이 지상에 다시 천국으로 느껴졌대요. 알고 봤더니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매일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딸은 이제 이전의 자신이 아니라 남을 구하려는 어머니와 같은 삶이 더 큰 행복임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방법은 죄가 덜 행복하게 보이게 만들고 사실은 더 고통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행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얻는 평화와 행복이 훨씬 크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거죠.

내가 그분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못하면 그 행복도 맛볼 수 없고 그러면 그 행복을 잃게 만드는 죄의 고통도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죄를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 죄를 고통 중의 고통으로 느끼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이란 나에게 은혜를 주신 분의 밭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추수꾼이 되는 일입니다.

이소라 씨하고 얼마 전에 신동엽 씨하고 23년 만에 만났습니다. 이소라 씨가 유튜브를 하나 개설을 한 거죠. 전에 한 6~7년 사귀었잖아요. 지금 신동엽 씨는 결혼도 했고 애들도 있는데, 지금 이소라 씨가 어떤 유혹의 뭐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이전 이야기들을 그냥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신동엽 씨 나름대로 해야 할 일 안에서 상대가 유혹의 대상이 아닌 일 안에 속한 대상들입니다.

주인의 밭에서 추수할 곡물에 마음을 빼앗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들이 유혹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추수하여 주인을 기쁘게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주님의 일꾼이 되면 이 세상 것들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일거리이지 유혹 거리로 보이지 않게 되어 죄도 안 짓고 좋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주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을 만큼 주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영혼은 이제 추수해야 할 곡식들로 보입니다.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1.26.금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티모1,1-8 루카10,1-9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삶의 리듬

                                                        -친교의 관상, 선교의 활동-

 

12년전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오늘날도 호소력이 있고 공감이 가는 2권의 책을 선물받았고

즉시 대략 다 읽었습니다.

한권은 <피로사회), 한권은 <시간의 향기-머무름의 기술->이란 책으로 현대사회는 물론

공동체 이해와 건설에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또 어제 받은 카톡 글도 공동체 삶에 좋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어 인용합니다.

 

-2500년전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 섭공이라는 제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나라에 문제가 있었으니, 백성들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들어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초조해진 섭공은 공자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날마다 백성들이 도망을 치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이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무슨 뜻입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라는 뜻입니다.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형제들의 공동체라면, 향기로운 꽃을 찾는 벌들처럼 저절로 성소자도 피정자도

손님들도 끊임없이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선적인 것이 향기나는 매력적인 좋은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Christ is password for a happy life”

(그리스도는 행복한 삶의 암호이다)

 

엊그제 강론에 인용되어 많은 분들에게 신선한 깨우침이 된 교황님의 말마디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공동체의 비밀은, 열쇠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있음을 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가 되어 가까이 함께 있는 사람들이 기쁘게 살면

멀리있는 사람들도 저절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제자들 공동체가 그러합니다.

공동체 훈련이 잘 된 그리스도 예수님의 친교 공동체는 제자 72명을 파견하므로

선교공동체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정말 좋은 공동체는 친교공동체이자 선교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어제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었고, 오늘은 바오로의 최측근 제자이자 영적 아들이자 협력자인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입니다.

성 티모테오는 터키의 에페소 교회를, 성 티토는 그리스의 크레타 교회를 맡아 돌보았던 목자입니다.

 

오늘 독서 둘을 보면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삶에 충실하며

제자들을 사랑했는지 마음에 와닿습니다.

성 티모테오에게 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전례중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한 영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내리시고,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시어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게 하시며,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를 이뤄주십니다. 티토에게 준 편지글중 일부입니다.

 

“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나 바오로가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새삼 그리스도 예수님이야 말로 은총과 자비와 평화의 영적 보물창고의 패스워드 즉 암호이자

열쇠임을 깨닫습니다.

성 바오로, 성 티모테오, 성 티토 모두가 참 좋은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 형제들임을 깨닫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모시진 못했어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서 바오로의 그리스도 예수님과 일치의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이니 바로 이점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에서 파견되는 72명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도 놀랍습니다.

얼마나 영적훈련이 잘 된 공동체의 제자들인지 짐작이 갑니다.

필요가 적을수록 진짜 부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만으로, ‘하느님의 나라’ 비전만으로 참으로 부유하고 행복한 무소유의 제자들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병자들이 있으면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여라.”

 

군더더기 없는 본질적인 사명의 나열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꿈과 그리스도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었기에 거품이나 환상이 없는

이런 단순한 본질적 깊이의 무소유의 삶입니다.

문자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지 말고 피하지도 말고,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면서

주님의 평화를 선물하면서 무소유의 영성을, 정신을 배우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우정이 날로 깊어갈수록,

우리 모두 소유에 소유되지 않고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무소유 영성의 자유로운 삶을,

지상 순례자로서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다음에는 일흔 두 제자의 귀환이 소개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의 공동체는 ‘관상의 친교’와 ‘활동의 선교’라는 공동체 삶의 리듬이,

균형과 조화가 얼마나 필수적인지 봅니다.

 

새삼 우리 성 베네딕도회 정주 수도자들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는

'친교의 장'이자 동시에 '선교의 장'임을 깨닫습니다.

친교와 선교, 관상과 활동, 기도와 일의 '삶의 리듬'은 생명의 리듬이요 어제 읽은 구절도 생각납니다.

 

“리듬이 없는 시간은 고유한 시간의 질(質)을 상실한 채 양화(量化)된 시간이다.

한마디로 ‘향기가 없는 시간’이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친교의 관상가(觀想家)로 산처럼,

또 선교의 활동가(活動家)로 강처럼, 하느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조화롭고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1/27(토)  연중 제3주간 토요일, 되새김 구절

 

1. 우리가 하느님을 부르면,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리면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조재형 신부)

 

2. 매일 밀려오는 근심 걱정들, 의혹과 불안함을 그때그때 자비하신 주님 손길에 맡겨드려야겠습니다.

세상만사를 섭리하시고 보살피시는 우리 주님이심을 굳게 믿고 거듭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야겠습니다.(양승국 신부)

 

3. 주님의 일꾼이 되면 이 세상 것들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일거리이지 유혹 거리로 보이지 않게 되어 죄도 안 짓고 좋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려면 주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을 만큼 주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전삼용 신부)

 

4.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늘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우정이 날로 깊어갈수록,

우리 모두 소유에 소유되지 않고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무소유 영성의 자유로운 삶을,

지상 순례자로서 하느님 나라 공동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

 

1/27(토)  연중 제3주간 토요일, 제399(제29)일 기도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매일 밀려오는 근심 걱정들, 의혹과 불안함을...

자비하신 주님 손길에 맡겨드리게 하소서.

 

세상만사를 섭리하시고 보살피시는 주님이심을 굳게 믿고...

거듭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게 하소서.

 

- 2024년 1월27일(토) 12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