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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1월 29일 월요일[(녹) 연중 제4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1월 29일 월요일[(녹) 연중 제4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106(105),47
주 하느님, 저희를 구하소서. 민족들에게서 저희를 모아들이소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고, 당신을 찬양하여 영광으로 삼으오리다.

본기도

자비로우신 주 하느님,
저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공경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압살롬에게서 달아납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5,13-14.30; 16,5-13ㄱ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길을 걸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2-3.4-5.6-8ㄱㄴ(◎ 8ㄱㄴ 참조)
◎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 주님, 저를 괴롭히는 자들 어찌 이리 많사옵니까? 저를 거슬러 일어나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하느님이 저런 자를 구원하실까 보냐?” 저를 빈정대는 자들 많기도 하옵니다. ◎
○ 주님, 당신은 저의 방패, 저의 영광, 제 머리를 들어 높이는 분이시옵니다. 제가 큰 소리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시나이다. ◎
○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기에, 누워 잠들어도 나는 깨어나니, 나를 둘러싼 수많은 무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일어나소서,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

복음 환호송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의 제대에 예물을 올리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저희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1(30),17-18 참조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제가 당신을 불렀으니,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또는>
마태 5,3.5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하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4주간 월요일

 

페이스 북에서 가끔 좋은 글을 보여 주곤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굳이 복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썩은 과일은 스스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생각하니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불난 곳에 기름을 부으면 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르기 마련입니다.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와 아내가 켜놓은 컴퓨터에서 아내의 메일을 보았습니다. 아내는 혼자서 출장 간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메일에는 누군가와 같이 출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내는 사실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남편은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면서 잘 지내다가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곧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고 남편에게 돌아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저도 화를 참지 못하고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적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흥분을 멈추고 지내면 곧 해결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은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사람을 탓하고, 벌준다고 해결 될 일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을 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전쟁도 아니고, 사랑하는 아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다윗의 마음은 칼로 찌르듯이 아팠을 것입니다. 아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결국 아들이 죽게 될 것이고, 아들이 이기면 또 다른 가족들이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을 아셨고, 다윗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현실에서는 쉽게 실천할 수 없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늘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은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활은 깨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깨어지지 않는 달걀은 결코 병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는 언제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일 뿐입니다.

 

우리의 몸은 언젠가 늙고, 병들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살아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죽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으면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 마치 무덤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영을 내보내고 성령이 함께 하면 주님과 함께 있지 않아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의 한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며칠 지나면 방 안에 먼지가 쌓이듯이 우리가 성령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도 더러운 영들이 들어옵니다. ‘시기, 질투, 분노, 미움, 교만, 게으름, 욕망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몸은 살아 있어도 무덤과 같은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 2.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연중 제4주간 월요일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는 이방인들 가운데 게라사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게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더러운 영을 추방하는 능력을 발휘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습니다.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다 보니 공동묘지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그래서 악령의 이름이 특별하게도 군대였습니다.
    너무 폭력적이다 보니 발에 족쇄를 채우고, 손은 쇠사슬로 묶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돌로 제 몸을 치는 자해행위뿐이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공동체가 주님 부재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부재하실 때, 즉시 그 자리에는 악한 영이 자리를그 순간 우리의 현실, 우리 공동체의 현실은 얼마나 음산하고 비참한지 모릅니다.
    주님의 현존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다 보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별것 아닌 일에 핏대를 올리고 폭력이 난무합니다.극한 분열과 대립으로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주님께서 악령 들린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 한 마디로 그에게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 내어주십니다.
    음산하고 칙칙한 죽음의 분위기에서 화사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즉시 반전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 주님 부재 상태에서 주님 현존 상태로!
  •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첫 이방인지역 나들이인데, 게라사인 지역에서 더러운 영을 쫒아내시는 장면입니다.

거센 돌풍을 잠재우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호수를 건너왔지만, 또 다른 거센 돌풍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모세가 갈대바다를 건너왔지만 여전히 사막에서 또 다른 거센 돌풍을 마주했듯이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바다에 부는 돌풍이 아니라, 인간에게 부는 거센 돌풍을 잠재우십니다. 

곧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족쇄나 쇠사슬로 묶어둘 수 없을 만큼 거센 돌풍에 휘둘려 밤낮으로 소리 지르며 무덤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습니다.(마르 5,2) 
그러나 이제 그에게서 영들의 군대가 나가고, 그는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마르 5,15) 있었습니다.

 

‘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은 더러운 영에 들렸던 왜곡된 인간성을 버리고, 이제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다.”(갈라 3,27)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정신이 들었다’는 것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와 같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루카 15,17-20)는 것,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되었다.’(에페 4,21-24)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마귀를 내쫓는 이 이야기는 병을 고치는 다른 이야기들의 범위를 넘어서, 사탄의 왕국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돼지 떼들의 익사는 이 고장에 대한 마귀들의 권세가 끝났음을, 곧 그곳이 더러움에서 해방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어둠은 빛을 반기기보다 오히려 배척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렸던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마르 5,19)

이렇게 그는 첫 ‘이방인 선교사’로 파견됩니다. 

‘자비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마르 5,20)

오늘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알려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먼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푸신 일'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주님께서 하신 일과 자비를 베풀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죽은 이들의 무덤 가운데가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의 사랑 가운데 앉아 있어야 할 일입니다.

제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먼저 베풀어지고 선사되는 하느님의 사랑’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르 5,17)

 

주님!

어둠을 몰아내소서.

제 안에 돼지 떼가 판치지 않게 하소서.

저는 본래부터 주님의 거처이니, 제 안에 빛을 밝히소서.

오늘도 죽은 이들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신 당신의 사랑 가운데 살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4주일 (해외원조주일)

 

-“찾으라, 들어라, 섬겨라”-

 

어제 한낮은 겨울 한복판인데도 봄빛 완연한 참 따뜻하고 부드러운 날이었습니다. 수도원 하늘길을 사진에 담아 다음 “봄길”이란 시와 더불어 많은 지인들과 나눴고 행복했습니다.

 

“한겨울

 봄꿈을 꾸고 나니

 봄길이

 열렸어요

 봄향기 맡으며

 봄님과 함께

 봄빛받으며

 봄길을 걷습니다”-2024.1.27.

 

봄님이 상징하는 바 바로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파스카 예수님입니다.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으로 온전하고 건강한 삶으로 이끄시는 파스카 예수님입니다. 이어 지인들의 반갑고 따뜻한 답글도 마음을 환히 밝혔습니다. 몇편을 나눕니다.

 

“신부님 시는 항상 따스하게 마음에 깊이 새겨집니다. 저의 큰 아이도 항상 이때쯤 봄냄새가 난다는 말을 해요. 사진에서도 분명 겨울인데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에게도 점점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향기가 풍겨나오기 시작하면 좋겠어요.”

“와아 벌써 봄빛이 느껴지네요. 아무리 어려워도 얼어붙은 겨울은 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돌아오네요.”

“선생님!! 시를 읽으니 벌써 봄이 온듯합니다.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하늘길도 봄준비에 들어간 것 같네요. 평화로워보이는 수도원 풍경 감사합니다!!”

“아, 너무 감동이네요. 지금 막 상담마치면서 다음 상담까지 잠시 힐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시는 희망을 갖게 하네요. 따뜻함이 있어 치유가 되고 평화가 오네요. 신부님의 연인이자 절친이신 예수님과 언제나처럼 함께 하시네요.”

 

모두가 봄님 예수님을 찾고 기다리는 마음임을 느낍니다. 어제 카톨릭 신문의 “너무나 자비로운 하느님” 칼럼에서 교황님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만났습니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 그 기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지옥이 텅 비어 있기를 희망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14일, 이탈리아에서 주일마다 방영되는 채널9TV 토크쇼 ‘케 템포 케파(Che Tempo Che Fa;날씨는 어떤가요)’에서 한 말이다. 교황의 이말에 스튜디오는 환호로 가득 찼고, 340만명에 달하는 시청자들 여시 뜨거운 감동에 사로잡혔다.-

 

얼마나 멋진 말씀에 장면인지 저도 감동했습니다. 바로 우리 하느님은,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주님은 텅 빈 지옥을 바라십니다. 오늘은 주일이면서 해외 원조 주일이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이기도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이면 생각나는 예화가 있습니다. 동료수사가 경당에서 십자가의 주님과 성인이 나눈 대화를 듣고 전한 것입니다.

 

“토마스, 너는 나에 관해 참 말 잘했다. 무슨 상급이 좋겠니?”

“주님! 당신아닌 어떤 것도 원치 않습니다(Nothing but yourself, Lord!)”

 

예수님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다는 고백입니다. 이보다 더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은, 온전하고 건강한,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에게 물어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요즘 희망이자 길이자 빛이신 주님을 잃고 방황하는 병든 이들이 참 많습니다. 

 

거칠고 험한 생존경쟁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 각자도생의 광야여정을 살아갈 때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 되지만 잘못 세상 것들에 유혹, 중독되어 잘못 미치면 괴물도 폐인도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상징하는 바, 잘못 미친 괴물이나 폐인입니다. 참으로 온전하고 건강한 전인적 삶을 위한 유일한 답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이요 그 구체적 처방을 나눕니다.

 

첫째, “찾아라!”

생명과 빛인, 희망이자 길이신 주님을 간절히 항구히 찾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찾는 갈망이 있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을 만날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입니다. 오늘 회당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님을 찾았으며 어둠의 더러운 영도 빛이신 주님 앞에 도저히 숨을수 없자 뛰쳐나와 자수하여 광명을 찾아 주님을 고백하지만 주님은 일언지하에 그를 쫓아내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은 다음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갑니다. 말씀을 통한 영적승리를 상징합니다. 어제 복음에서 주님께서 바람과 호수의 풍랑을 잔잔케 하신 일화도 생각납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사람들의 이구동성의 반응을 통해 더러운 영들의 퇴치에 주님과의 만남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그러니 주님을 찾아 만날 때, 주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더러운 영들은 달아나고 주변의 더러운 영들 역시 감히 우리에게 범접하지 못합니다. 유비무환, 늘 주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함께 살 때 비로소 온전하고 건강하고 거룩한 삶입니다. 잘못미쳐, 더러운 영에 들려 괴물이나 폐인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둘째, “들어라!”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침묵중에 주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는 경청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요 빛입니다. 영혼도 주님의 말씀을 만나야 살아납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의 말씀에 몹시 놀랐다 합니다. 제1독서 신명기는 시공을 초월한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늘 귀기울여 듣고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오늘 화답송 후렴도 이와 일치합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셋째, “섬겨라!”

혼자 살던, 부부가 함께 살던 상관없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독신의 삶을 통해 주님의 일을 걱정하며 주님만을 기쁘게 하고 주님만을 섬기며 갈림없는 마음으로 품위 있는 삶을 살라고 하지만, 누구든 참으로 주님을 섬기며 주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부부공동체나 수도공동체도 품위를 유지하며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독신만이 아니라 부부 성인도 얼마든 가능합니다. 

 

1인 가구 형제자매들은 세상 안에서 교회공동체에 속한 주님의 은수자로 살고 2인 부부와 자녀들의 공동체라면 남편은 원장, 아내는 부원장, 나머지 자녀들은 수도형제들처럼 살아가면 얼마나 멋진 가정 수도공동체 같겠는지요. 혼자든 함께든 마음 갈리지 않고 주님을 섬기듯 서로 섬기며 주님 중심의 품위 있고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될 수 있는 한 서로 건드리지 말고 그냥 놔두는, 묵묵히 바라보고 지켜보는 참으로 성숙된 거룩한 무관심의 사랑이 긴요합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서로 배려하고 섬기고 존중하며 품위 있게 주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7,35).

 

온전하고 건강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험하고 거친 광야 인생 여정,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요 잘못 미치면 세상 것들에 중독되어 더러운 영이 들린 폐인이나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세 말마디를 명심하며 한결같이 주님 중심의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1.찾으라!

2.들어라!

3.섬겨라!

 

형제들과 함께 주님을 찾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의 온전하고 건강하고 거룩한 주님 중심의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1/29(월)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영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며칠 지나면 방 안에 먼지가 쌓이듯이 우리가 성령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에도 더러운 영들이 들어옵니다. ‘시기, 질투, 분노, 미움, 교만, 게으름, 욕망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사로잡히면 우리의 몸은 살아 있어도 무덤과 같은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2. 주님께서 악령 들린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 한 마디로 그에게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 내어주십니다.
음산하고 칙칙한 죽음의 분위기에서 화사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즉시 반전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 주님 부재 상태에서 주님 현존 상태로!(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그들은 그분을 보고 저희 고장에서 떠나가 주십사고 청하였다.'

(마르 5,17)

 

주님!

어둠을 몰아내소서.

제 안에 돼지 떼가 판치지 않게 하소서.

저는 본래부터 주님의 거처이니, 제 안에 빛을 밝히소서.

오늘도 죽은 이들의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신 당신의 사랑 가운데 살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성 토마스 아퀴나스 축일이면 생각나는 예화가 있습니다. 동료수사가 경당에서 십자가의 주님과 성인이 나눈 대화를 듣고 전한 것입니다.

 

“토마스, 너는 나에 관해 참 말 잘했다. 무슨 상급이 좋겠니?”

“주님! 당신아닌 어떤 것도 원치 않습니다(Nothing but yourself, Lord!)”(이수철 신부)

 

1/29(월)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401(제31)일 기도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주님께서 악령 들린 사람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 한 마디로 그에게서 더러운 영들을 쫓아 내어주십니다.
음산하고 칙칙한 죽음의 분위기에서 화사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즉시 반전되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부단히 건너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 주님 부재 상태에서 주님 현존 상태로!

- 2024년 1월29일(월) 9시...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