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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10일 주일[(자) 사순 제4주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10일 주일[(자) 사순 제4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파스카 성야에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세례 준비로 둘째 수련식을 이 주일에 거행한다. 이 수련식에서는 고유 기도문과 고유 전구를 사용한다.>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진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끝없이 방황하는 이들을 회개하도록 부르시고, 성자의 십자가로 악의 상처를 낫게 하십니다. 우리는 은총으로 새로운 영을 받아 주님의 영원한 사랑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입당송

이사 66,10-11 참조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본기도

하느님,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오묘하게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열렬한 믿음과 정성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와 해방으로 주님의 분노와 자비가 드러난다.>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36,14-16.19-23
그 무렵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7(136),1-2.3.4-5.6(◎ 6ㄴㄹ)
◎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리라.
○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비파를 걸었노라. ◎
○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하는구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을러대는구나. “시온의 노래를 불러라. 우리에게 한 가락 불러 보아라.” ◎
○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주님의 노래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굳어 버리리라. ◎
○ 내가 만일 예루살렘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를 가장 큰 기쁨으로 삼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리라. ◎

제2독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여러분은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2,4-10
형제 여러분, 4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요한 3,16 참조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사순 시기를 지내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선과 단식을 실천하며, 회개의 때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2. 세계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세계의 지도자들을 주님의 정의로 이끌어 주시어,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좇으며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해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하소서.

3.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자이신 주님,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돌보아 주시어, 그들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없애 주시고,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도 살펴 주시어 마음의 평화를 주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이신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에 은총을 주시어,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삼가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며 주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기쁜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올바른 마음으로 천상 영약인 성체를 기리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 제사를 정성껏 드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사순 감사송 2 : 참회>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마음을 다시 깨끗하게 하시려고
구원과 은총의 시기를 특별히 마련하시어
그릇된 욕망에서 벗어나 덧없는 일을 피하고
영원한 구원을 향하여 힘쓰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22(121),3-4 참조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나이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나이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나이다. 주님, 당신 이름 찬양하러 올라가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이는 예수님을 멀리하지만,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고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비추시니
은총의 빛으로 저희 마음도 밝혀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
주님께 탄원하는 이들을 지켜 주시고
약한 이들의 힘을 북돋아 주시며
세상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언제나 주님 빛으로 이끄시고
온갖 악에서 인자로이 구해 주시어
모두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사진설명: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4주일

 

짧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있습니다. “Life is not about waiting to pass the storm. It i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참 멋진 말입니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우에서라도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는 지점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전환점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전환점입니다. 바오로는 이제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환점(turning poin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전환점의 사례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아담입니다.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은 뱀으로 변한 사탄을 만났습니다. 하느님과 같아지고 싶었던 교만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금지했던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했던 것처럼 죄가 있는 곳에는 은총도 함께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늘 전환점을 마련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땅에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십니다. 양을 치던 모세는 이제 새로운 사명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탈출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마지막 재앙이 파스카입니다. 이집트의 모든 맏배가 죽는 재앙을 내리시는데 집 앞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맏배는 죽음을 면하였습니다.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파스카란 넘어간다. 건너가다, 지나간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파스카를 예수님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의 파스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른다면 우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신약의 파스카입니다.

 

저의 삶에도 몇 번의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1986 1월 저는 군에 입대했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데 인사 담당 장교가 저를 불렀습니다. 제가 신학생인 것을 알았고, 인사 담당 장교의 아들도 신학생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성당 군종병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제 앞에는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성당에서 근무하니 매일 기도할 수 있고, 미사에 빠질 염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료들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고 하는 강원도로 갔는데 저는 경기도 용인으로 갔습니다. 꽃길만 같았던 성당 생활은 3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잔디밭에 영양제를 주라고 했는데 대충 주었습니다. 성당 의자를 닦으라고 했는데 대충 닦았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신부님께서 용산으로 출장 가면서 제게 부대로 들어가서 지내라고 했는데 제가 그것을 어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성당 군종병 생활을 마치고 인사처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부끄럽고, 속이 상한 일이었지만 돌아보면 제게는 참 잘된 일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을 차리고, 남은 군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순 제4주일은 장미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선포됩니다.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칙령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키루스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도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 내 삶에 있었던 전환점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셨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지금 지치고 힘든 이웃에게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사순 제4주일: 나해

복음: 요한 3,14-21

 

예수님의 관심은 심판이나 단죄가 아니라 우리를 향한 용서와 자비, 구원과 영생에 맞춰져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오늘따라 왜 이리 눈물겹고 은혜롭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길 돌아보면 어찌 그리 굽이굽이 수치스러운 죄와 타락과 방황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이런 나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엄청나게 큰 보속과 무시무시한 처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제 생각은 사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던 하느님 상은 피도 눈물도 없는 심판관으로서의 모습이 우세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우상숭배 앞에 크게 진노하시며 벌주시는 심판과 단죄의 하느님이

그리도 두려웠습니다.

정해진 율법 조항에 의거해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나 악행의 경중에 따라 처벌하시는 징벌의 하느님 얼굴을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딴 판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공생활 기간 내내 입에 달고 다니신 말씀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심판이 아니라 구원!”

 

뜻밖에도 이 땅에 강림하신 메시아는 심판자나 처벌자의 모습이 아니라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때로 더없이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여행길의 절친한 동반자로, 끝도 없이 기다리고 용서하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심판하실 권한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권한은 전혀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용서와 자비, 희생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인류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앞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을 향해 기쁜 얼굴로 다가서는 이들에게는 모두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 끝끝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멀리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빛을 등진 사람들은 스스로를 단죄와 심판의 도마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 때문이라는 사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요.

오늘도 제 삶 안에 길게 드리워진 짙은 죄의 뿌리를 슬픈 얼굴로 바라봅니다.

밥 먹듯이 지어온 숱한 죄와 과오 속에 살아온 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금 희망을 갖습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빛 같을지라도 죄질이나 죄 값은 뒷전이신 예수님, 오직 우리들의 해방, 구원,

영원한 생명에만 관심이 지극하신 자비의 예수님 때문에 오늘 다시 한 번 힘차게 일어서야겠습니다.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는 모두 구원될 것입니다.

우리 죄가 크지만 하느님 자비는 더욱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단죄하고 속박하지 않는 한 결국 우리는 무상으로 베푸시는

하느님 은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사순 제4주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오늘은 사순 4주일로, '기쁨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입당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으로 기뻐 뛰며 흡족해 하리라.”

그리고 제1독서에서 역대기 저자는 주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고 성전은 파괴되고 이방인의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 유배를 끝내주시는 기쁨을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실현한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실현한 부활을 함께 노래하며, 우리를 기쁨에로 초대합니다. 

복음은 ‘복음’에 관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말해줍니다.

흔히 말하는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 혹은 '작은 복음서'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는 이 한 마디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

여기에는 하느님의 외아들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 사명의 기원과 본질이 '하느님의 사랑'임을 천명합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나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말해줍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사랑한 나머지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아먹은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셨다면, 굳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박이나 번개, 천재지변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려고 다름 아닌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세상과 모든 사람들은 거부하고 배척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닙니다.

더구나 파괴해야 할 그 무엇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은 존중하고 수락해야 할 선물이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는 축복의 자리요 대상입니다.

 

그런데도 혹 우리는 세상을 마치 마귀처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미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속정신'과 ‘어둠’입니다.

그것은 맘몬을 앞세우고 굴러가는 물신주의나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복음 정신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사는 이타적인 '사랑'이 세상을 성화시킬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어 심판이 아니라 구원하시고자 하시건만, ‘이미’ 심판을 받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까닭입니다’(요한 3,19 참조).

곧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이미’ 심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요한 3,18)

그렇습니다. 

세상에 빛은 이미 왔고,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구원의 삶과 사랑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장님이 빛이 비추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눈이 감겨있어 빛을 보고 못한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피앗’의 응답이 구원을 불러옵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요한 3,21)

 

그러니 시편(36,11)의 말씀처럼, 빛으로 빛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빛이 오면 어둠은 물려갈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어둠을 볼 수 있음은 이미 빛이 비추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어둠인 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둠을 바라보기보다 어둠을 비추어주는 빛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일입니다.

사실 어둠은 어둠을 보며 어둠으로 이끌지만, 빛은 빛을 보며 빛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렇습니다. 

빛은 이미 세상에 왔고, 우리는 빛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며 기뻐합니다.

 

오늘도 하느님 사랑의 빛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요한 3,16)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신 사랑의 멍에를 지고 거부되고 배척받을지라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게 하소서!

이해받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사랑으로 져줄 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눈감을 줄을 알고, 죄 없으면서도 뒤집어쓸 줄을 알며, 약해져 꺾일 줄 알고, 낮아져 밟힐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9.사순 제3주간 토요일                                                              호세6,1-6 루카18,9-14

 

                                      주님께서 원하시는 의롭고 겸손한 기도와 삶

                                                 -회개와 겸손, 진실과 사랑-

 

“주님,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9,147;117,2)

 

“나는 착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요한10,11ㄱ)

교황청 설교가의 세 번째 사순강론 주제 성구입니다.

이어지는 구절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10,11ㄴ)는 주님 말씀이 깊은

위로와 평화, 치유를 줍니다.

착한목자대신 어진목자로 쓰면 더 좋겠습니다.

 

강론을 듣는 분들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아 있는 흰 교황복을 입은 교황님의 겸손한 모습도 좋았습니다.

며칠전에는 고해소 앞에서 흰 교황복을 입은채 무릎 꿇고 고백성사를 보는 모습 역시

너무 거룩하고 아름다워 스크랩하여 렘브란트의 “자비로운 아버지” 그림 위에 붙여 놓았습니다.

 

참으로 회개와 겸손, 진실과 사랑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감동을 줍니다.

새삼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 겸손하고 의로운 기도와 삶임을 깨닫습니다.

 

“장상이란 생각하지 말고 목자라 생각하십시오.”

30년전 분원장 시절, 장상 아빠스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교회나 수도회의 모든 장상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보고 배울 신망애(信望愛)의 모범이 예수님을 닮은 어진목자들입니다.

3월8-9일 양일 사이 대만의 가톨릭 대학에서는 “가톨릭과 유교와의 대화 모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톨릭과 유교는 서로 배울 것이 참 많다”라는 말마디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다산 정약용의 어록과 논어의 공자 말씀을 통해서도 참 많이 배웁니다.

 

“모두가 각자의 전장(戰場)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으니, 비록 타인에게서 지옥을 마주할지라도

그에게 친절을 베풀라.”-다산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하면 원망받는 일이 없다.”-논어

 

참으로 이런 이들이 회개와 겸손, 진실과 사랑, 자비와 지혜의 어질고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회개와 겸손으로 초대하는 제1독서 호세아를 통한 시처럼 아름다운 주님의 말씀이

참 눈물겹도록 감동스럽고 고맙고 위로가 됩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에프라임아,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같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이 거룩한 은총의 사순시기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회개와 겸손, 신의와 예지의 촉구입니다.

봄비하면 즉시 떠오르는 19년전 봄철의 자작시 “봄비”입니다.

늘 읽어도 따뜻한 위로에 미소짓게 하는 기도입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2005. 봄철

 

회개하여 겸손과 온유, 진실과 사랑에 이른 이들이 바로 봄비같은 영혼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세리와 같은 이들입니다. 세리의 회개와 겸손, 진실과 사랑의 기도가 가슴을 칩니다.

성전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바로 우리가 미사 시작전, 미사중에 자주 바치는 자비송도,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기도”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바로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정말 회개해야할 사람이 바리사이입니다.

하느님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참 무지의 바리사이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회개와 겸손의 사람, 세리와의 대조가 참 극명합니다.

성전 앞에서 꼿꼿이 서서 “오, 하느님!”으로 시작되는 대화의 기도가 아닌 자기도취의 독백이며

온통 남판단하고 자기자랑하는, 전혀 불필요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정말 낯뜨거운 부끄러운

자기과시의 내용들입니다.

이것은 정말 기도가 아닙니다.

 

회개의 기도라면 겸손하고 절실하고 절박해야 하는데 세리와는 너무나 다른 기도입니다.

스스로 의롭다 자부, 자신하는 이런 이들의 회개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너무나 자기중심으로 완고하게 굳어진 무지의 마음입니다.

봄비 은총이 참으로 절실한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무지하고 완고한 마음들입니다.

 

새삼 평상시 회개의 여정에 충실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겸손과 온유,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삶입니다.

기도와 삶 역시, 선택이자 은총입니다.

회개와 겸손의 기도와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은 회개와 겸손, 진실과 사랑,

자비와 지혜의 사람들로 변모시켜 줍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의롭고 겸손한 삶을 살라고 촉구하십니다.

쟁취(爭取)가 아닌 회개한 영혼들에게 주님으로부터 하사(下賜)되는 의로움과 겸손, 온유의 은혜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8,14). 아멘.


3/10(일) 사순제4주일, 되새김 구절

 

1. 짧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있습니다. “Life is not about waiting to pass the storm. It i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참 멋진 말입니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우에서라도 춤추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는 지점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우리 신앙인들은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 내 삶에 있었던 전환점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순간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셨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지금 지치고 힘든 이웃에게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조재형 신부)

 

2.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 때문이라는 사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요.

오늘도 제 삶 안에 길게 드리워진 짙은 죄의 뿌리를 슬픈 얼굴로 바라봅니다.

밥 먹듯이 지어온 숱한 죄와 과오 속에 살아온 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금 희망을 갖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요한 3,16)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손에 못이 박히고 가슴이 창에 찔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면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당신 사랑의 멍에를 지고 거부되고 배척받을지라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게 하소서!

이해받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를 받을지라도 사랑으로 져줄 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눈감을 줄을 알고, 죄 없으면서도 뒤집어쓸 줄을 알며, 약해져 꺾일 줄 알고, 낮아져 밟힐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주님은 우리 모두가 의롭고 겸손한 삶을 살라고 촉구하십니다.

쟁취(爭取)가 아닌 회개한 영혼들에게 주님으로부터 하사(下賜)되는 의로움과 겸손, 온유의 은혜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8,14). 아멘.

(이수철 신부)

 

3/10(일) 사순제4주일, 442(제72)일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