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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4년 3월 18일 월요일[(자) 사순 제5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4년 3월 18일 월요일[(자) 사순 제5주간 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시편 56(55),2 참조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를 짓밟는 사람들이 온종일 몰아치며 억누르나이다.

본기도

하느님,
헤아릴 수 없는 은총으로 온갖 복을 내려 주시니
저희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시작하여
하늘 나라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3,1-9.15-17.19-30.33-62
그 무렵 1 바빌론에 요야킴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2 그는 수산나라고 하는 힐키야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3 수산나의 부모는 의로운 이들로서 그 딸을 모세의 율법에 따라 교육시켰다.
4 한편 요야킴은 아주 부유한 사람으로서 넓은 정원이 그의 집에 맞붙어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큰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늘 그를 찾아오곤 하였다.
5 그런데 그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바빌론에서, 백성의 지도자로 여겨지는 재판관인 원로들에게서 죄악이 나왔다.”
6 그들이 줄곧 요야킴의 집에 있었으므로,
소송거리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리로 그들을 찾아갔다.
7 한낮에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수산나는 남편의 정원에 들어가 거닐곤 하였다.
8 그렇게 그곳에 들어가 거니는 수산나를 매일 눈여겨본 그 두 원로는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게 되었다.
9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린 채,
의로운 판결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15 그들이 알맞은 날을 엿보고 있을 때,
수산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녀 둘만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이 무더웠으므로 그곳에서 목욕을 하려고 하였다.
16 거기에는 숨어서 수산나를 엿보는 그 두 원로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17 수산나는 하녀들에게,
“내가 목욕을 하게 올리브 기름과 물분을 가져오고
정원 문들을 닫아걸어라.” 하고 말하였다.
19 하녀들이 나가자마자 두 원로는 일어나서 수산나에게 달려가 20 말하였다.
“자, 정원 문들은 잠겼고 우리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소.
우리는 당신을 간절히 원하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함께 잡시다.
21 그러지 않으면, 어떤 젊은이가 당신과 함께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당신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소.”
22 수산나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는 꼼짝 못할 곤경에 빠졌소. 그렇게 하면 그것은 나에게 죽음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오.
23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편이 더 낫소.”
24 그러고 나서 수산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두 원로도 수산나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더니,
25 그 가운데 하나가 달려가서 정원 문들을 열어젖혔다.
26 집에 있던 사람들이 정원에서 나는 고함 소리를 듣고,
옆문으로 뛰어들어 가 수산나에게 일어난 일을 보았다.
27 원로들이 저희 쪽의 이야기를 하자 하인들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수산나를 두고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28 다음 날, 수산나의 남편 요야킴의 집으로 백성이 모여들 때,
그 두 원로는 수산나를 죽이겠다는 악한 생각을 가득 품고서 그리로 갔다.
29 그들이 백성 앞에서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요야킴의 아내, 힐키야의 딸 수산나를 데려오게 하시오.”
그러자 백성이 사람을 보냈다.
30 수산나는 부모와 자녀들과 모든 친척과 함께 나왔다.
33 그러자 수산나 곁에 있던 이들과 그를 보는 이들이 모두 울었다.
34 그 두 원로는 일어나 백성 한가운데에서 수산나의 머리에 자기들의 손을 얹었다.
35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6 그 두 원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단둘이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이 여자가 여종 둘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가더니,
정원 문들을 닫아걸고서는 여종들을 내보냈소.
37 그때에 숨어 있던 젊은이 하나가 이 여자에게 가더니 함께 누웠소.
38 정원 구석에 있던 우리는 그 죄악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들에게 달려갔소.
39 그리고 둘이서 정을 통하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자가 우리보다 힘이 세어 붙잡을 수는 없었소.
그래서 그자는 문을 열고 달아나 버렸소.
40 그 대신 이 여자를 붙들고 그 젊은이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41 이 여자는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하지 않았소. 이것이 우리의 증언이오.”
그들이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이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들을 믿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3,41ㄹ-62
그 무렵 회중은 41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3ㄱ.3ㄴㄷ-4.5.6(◎ 4ㄱㄴㄷ)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 환호송

에제 33,11 참조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참회와 재계를 통하여 깨끗해진 마음으로
이 거룩한 제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수난 감사송 1 : 십자가의 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성자의 수난으로
온 세상이 주님의 위대하심을 찬미하게 되었으니
십자가의 무궁한 힘으로
성자의 권능과 세상 심판이 드러났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영성체송

요한 8,10-11 참조
여인아,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주님,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으리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이 성체로 힘을 얻고 죄를 용서받았으니
언제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백성을 위한 기도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주님께 간청하는 백성을 죄에서 구하시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거룩히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진설명: 너희&nbsp;가운데&nbsp;죄&nbsp;없는&nbsp;자가&nbsp;먼저&nbsp;저&nbsp;여자에게&nbsp;돌을&nbsp;던져라.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요리(料理)’라는 말의 뜻은 헤아려 다스린다.’라고 합니다. 요리사, 주방장, 쉐프는 헤아려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음식을 만드는데서 저는 요리할 줄 모르는 편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사골 육수에 꽁치 통조림을 넣고, 거기에 소시지 볶음을 넣었습니다. 어묵과 떡국 떡도 넣어서 끓였습니다. 헤아림이 없어서인지 맛이 신묘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꽁치 통조림에는 묶은 김치가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사골 육수에는 담백한 재료가 좋다고 합니다. 재능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니 앞으로도 음식을 요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끔씩 정성과 맛이 깃들여 요리된 반찬과 국을 주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합니다. 쉬운 것부터 하나 둘 배워나가면 저도 음식 재료를 헤아려서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아침은 헤아려 다스리기 쉽습니다. 떡과 계란 그리고 우유와 과일 한 쪽이면 진수성찬입니다.

 

대한민국은 총선을 앞둔 선거의 계절입니다. 정당은 공천이라는 요리를 잘 해야 합니다. 능력과 인품을 겸비한 후보를 선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과 현실에 다가온 위기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선거는 어쩌면 잔인한 요리인 것 같습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서 여러 후보가 준비하지만 결국 선택되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선택된 정당의 후보들 중에서도 오직 한 사람만이 당선되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은 투표라는 요리를 잘 해야 합니다. 옥석(玉石)을 가릴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 왜곡된 정보와 진실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무조건 비난하는 후보,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 비리와 부패에 연루된 후보를 요리에서 배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준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참여와 요리 능력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몸은 비록 멀리 타국에 있지만 2024년 총선이라는 요리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성찬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문제를 요리하는 것은 종교입니다. 인간은 유한하면서 무한을 생각합니다. 죽어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면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습니다. ‘(why)'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유교는 우환(憂患)’을 요리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천명을 따른다면 우환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서삼경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으로 우환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불교는 고통(苦痛)을 요리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채우지 못하는 고통, 거짓된 자아에 흔들리는 고통을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깨달음으로 집착이라는 업보를 끊어버리면서 고통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두려움(恐怖)’을 요리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두려움은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의탁할 때 사라진다고 합니다. 풍랑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물속에 빠져드는 베드로에게 왜 두려워하느냐?’라고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평화와 성령을 주십니다. 인의예지와 깨달음 그리고 믿음은 인류가 삶의 문제를 헤아려 다스리는 요리입니다. 물론 저는 그리스도교에 의지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정한 여인을 데리고 온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은 율법에 따라서 부정한 여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부정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정한 여인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라고 천대받고 무시 받았던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했던 바오로 사도에게 이방인의 선교를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죽어야 했던 여인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리고 씻어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벗었던 수산나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죽어야 할 운명에서 용서받고 다시 태어났던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더 큰 은총을 받았을까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리면서 사순시기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8,1-11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려온 한 가련한 여인, 죽느냐 사느냐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반응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과연 뭘 쓰셨을까요?

 

많은 성경학자들과 교부들이 여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셨습니다.

대체로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이름, 악한 고발자들의 죄목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귀신도 모른다는 것, 하느님 아버지도 모른다는 것, 오직 예수님만 아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적대자들에게 맞서지 않으십니다.

방어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가만히 계십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뭔가를 쓰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김 빼기 작전이었습니다. 뭔가 대판 싸워야 되는데, 자신들이 짠 작전이

팍팍 진척될 것인데, 예수님은 완전히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시며 완전히 그들을 무시해버립니다.

 

갑자기 김이 빠질 데로 다 빠져버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순간 엄청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고,

동시에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위기관리능력이 참으로 뛰어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맥 빠지고 허탈해진 적대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결정타 한방을 더 날리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 말씀 끝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떠나가고, 결국 텅 빈 성전 마당에는 예수님과 그 여자 단둘만 남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그 순간에 대해서 아주 아름다운 주석 하나를 남기셨습니다.

 

“모두가 다 빠져나가고 오직 둘만 남았다.

우리를 대표하는‘비참한 여인’과 ‘하느님의 자비’ 둘만 남았다.”

 

하느님의 우리 인간을 향한 이 어처구니없는 사랑,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 기막힌 사랑으로 인해

그 여인은 지금 눈보다 더 깨끗하게 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여자의 상태를 가리켜 교회 전승은 ‘순결한 창녀’라고 했습니다.

순결한 창녀, 이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향해, 또 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겠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무언인가 쓰셨다고 복음사가는 전하고 있는데 사실 땅바닥은 여인의 가슴이었습니다.

그 땅바닥은 죄와 타락과 방황으로 얼룩진 여인의 마음이자 우리 각자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땅바닥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 마음 하나하나에 당신 손가락이 아프도록

꾹꾹 눌러 또 다른 한 말씀을 새겨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죄가 많다 할지라도,

너희들이 아무리 부족해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고발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11,7)

혹시 가슴에 돌덩이 한 두 개 정도 품고 살아가지는 않나요? 

차마 던지지는 못하고 가슴에 품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돌덩이 말입니다.

‘화’라는 돌덩이, 상처와 미움의 돌덩이, 원망과 심판의 돌덩이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스스로 들게 된 돌덩이든, 타인들이 들려주어서 들게 된 돌덩이든, 사실 그 돌덩이는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짓누르고 있고 자신을 무겁게 할 뿐입니다. 

그런데 고발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나이 많은 자들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돌을 손에 든 채로 갔는지, 땅에 내려놓고 갔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차마 지금은 던지지 못하고 나중에 적절한 시기에 더 큰 돌로 더 세게 내리치려고 그냥 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그들은 여인을 구실로 삼아, 이미 예수님에게도 여인에게도 ‘돌’을 던진 이들입니다.

단지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였을 뿐입니다.

죄송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용서해달라고 말하지도 않고, 단지 떠나갔을 뿐입니다.

 

아마 그들을 또 다시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밀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는 예수님이 말씀에 그들은 ‘나이 많은 이’부터 돌아갔지만, 진정으로 회개한 이들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단지 심판하지 않고 돌을 던지지 않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돌 맞은 이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고, 쓰러진 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신의 죄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용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를 위하여 그에게 선을 베푸는 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지은 여인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돌 맞은 그의 상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며, 또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의 표시입니다.

곧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도와주고 기도해주고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

우리 주님께서는 죄인은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새롭게 살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7)

 

주님!

제 가슴에 돌덩이를 품고 살아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돌덩이로 오히려 저 자신이 짓눌려 있지 않게 하소서.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고 만지작거리게 하소서.

위하는 마음을 품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위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2024.3.17.사순 제5주일                                                      예레31,31-34 히브5,7-9 요한12,20-33




                                                 “보라, 예수님을!”
              -새계약의 예수님, 순종과 섬김의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
                                            “보고 배워 닮아갑시다!”


“들어라”만 중요한 말마디가 아니라, “보라” 역시 참 중요한 말마디입니다.
잘 들어라 있는 두 귀요, 잘 보라 있는 두 눈입니다. 무엇을 봐야 합니까?
믿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봐야 할 분은 예수님입니다.
모두가 눈여겨 잘 보라고 제대 뒤 중앙에 높이 걸려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 살림 운동에 전념하는 정성헌 선생의 귀띔 40가지중 맨먼저 나오는 충고가
“보고 싶은 사람이 돼라”입니다.
과연 보고 싶은 분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을 보고 싶어 하는 분은 있으십니까?
아마 제가 제일 많이 보는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 얼굴일 것입니다.
날마다 교황님 홈페이지를 볼 때 마다 예수님을 뵙듯 만나는 교황님 얼굴입니다. 


또 수도원에 정주하면서 참 좋아하는 장면이 셋입니다.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었을 때, 또 집무실문을 열었을 때 활짝 열려 한눈 가득 들어오는 하늘과 산
그리고 아름다운 수도원 전경에 마음도 환해지고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또 하나는 성전에서 공동전례기도시 한눈 가득 들어오는 늘 봐도 늘 새로운 형제들 얼굴입니다.
특히 지금도 자비의 집 숙소문을, 집무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전개되는 풍경과 더불어 생각나는
"당신이 그리울 때" 라는 시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구름, 빛나는 별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1998.11.22.


무려 26년전 1998년 여기서 썼던 시입니다.
물론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 얼굴, 예수님 얼굴입니다.
늘 곁에 있어도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주님 얼굴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 42장 앞부분 두 구절입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건만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시편42,2-3)


믿는 영혼들 누구나의 갈망이 이런 하느님의 얼굴을, 예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며
바로 이런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날 위기의 시대라 칭하며 혹자는 셋을 꼽습니다.
“1.기후위기, 2.인공지능, 3.쓰레기”로 모두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합니다.
날로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되는 기후요, 곳곳에 넘처나는 쓰레기들이요, 날로 들어나는 스마트폰 중독자들이
현재의 추세입니다. 


스마트폰을 볼 것이 아니라, 특히 신자들은 하느님을 뵙듯, 예수님을 뵙듯, 눈을 들어 하늘을 자연을
무엇보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는 눈의 훈련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을 볼수록 시력은 나빠질 것이고 예수님을 볼수록 시력은 좋아질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내가 형성됩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 예루살렘 축제때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 몇이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청합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정말 영성생활에 참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전체를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뵙는 것 역시 능력이요, 똑같은 눈이 아니라 영적 시력의 차이도 클 것입니다.
노화와 더불어 육안의 시력은 약해져도 영안(靈眼)의 시력은, 심안(心眼)의 시력은 날로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날로 깊어지는 자비와 지혜, 온유와 겸손, 찬미와 감사의 영안(靈眼)이요,
이런 눈으로 평생 깊이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할 예수님입니다.
분별의 지혜도 이런 눈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이 예수님입니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평생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하는 예수님이요
날마다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으라고 매일미사가 있습니다. 


첫째, 새계약의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합니다.
제1독서 예레미야서의 말씀이 참 고맙고 은혜롭습니다.
하느님은 신실하신 분이며 변함없이 당신 약속에 충실하십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한 새계약의 약속이 마침내 예수님을 실현되었습니다.
새계약의 이 은혜로운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계약을 맺겠다...내가 맺어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의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새계약은 예수님을 통해,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구원의 행복은 없습니다.
주님의 법은 우리 마음에 새겨지고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됨을
확인하는 새계약의 미사은총입니다. 


둘째, 순종과 섬김의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합니다.
값싼 구원은 없습니다. 값싼 새계약의 축복은 없습니다.
새계약이 실현되기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뇌와 시련과 고난, 죽음과 부활의 일련의 과정을
깊이 들여다 봐야 합니다.
순종과 섬김으로 요약되는 히브리서의 예수님의 평생 삶의 묘사가 큰 깨우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새삼 우리의 현세 삶은 고난을 겪음으로 순종을 배워가는 순종의 학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일상의 모든 고난을 순종을 배우는 계기로 삼을 때, 오히려 전화위복의 축복이요
주님을 닮아가는 영적성장과 성숙에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어 요한복음은 우리 모두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배우도록 격려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완전히 죽어 무(無)로 없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내적변형을 이뤄주는 죽음입니다.
뿌리가 나고 싹이 트고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의 수확이니 그대로 새생명의 부활 축복으로 이어지는
죽음입니다.
죽음의 상징하는바 섬김의 사랑, 섬김의 비움입니다.
주님은 섬김과 추종을 명쾌하게 요약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섬김과 추종이 하나입니다.
새삼 우리 삶은 예수님을 따라 닮아가는 순종의 여정이자, 섬김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순종과 섬김의 롤모델인 예수님을 보고 배워 따라 닮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이
참 자랑스럽고 영광스럽습니다.


셋째,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의 영광스런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보고 배워 닮아가야 할 분은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자 기쁨이 되고 끊임없이 샘솟는
내적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은 순종의 여정에 항구함으로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다음 예수님의 고백과 기도가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주님은 부활 영광의 승리로 끝나는 죽음임을 예고합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고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우리의 삶이자 죽음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자 죽음이겠는지요!


곧장 부활의 영광이 뒤따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단히 당신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으로 이끄시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보고 배워 닮아가는 파스카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아멘. 

3/18(월) 사순제5주간 월요일, 되새김 구절

 

1. 억울한 누명을 벗었던 수산나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죽어야 할 운명에서 용서받고 다시 태어났던 여인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누가 더 큰 은총을 받았을까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리면서 사순시기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조재형 신부)

 

2.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땅바닥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들 마음 하나하나에 당신 손가락이 아프도록

꾹꾹 눌러 또 다른 한 말씀을 새겨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들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죄가 많다 할지라도,

너희들이 아무리 부족해도,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을 사랑한단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7)

 

주님!

제 가슴에 돌덩이를 품고 살아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돌덩이로 오히려 저 자신이 짓눌려 있지 않게 하소서.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고 만지작거리게 하소서.

위하는 마음을 품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위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완전히 죽어 무(無)로 없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내적변형을 이뤄주는 죽음입니다.
뿌리가 나고 싹이 트고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의 수확이니 그대로 새생명의 부활 축복으로 이어지는
죽음입니다.(이수철 신부)

 

3/18(월) 사순제5주간 월요일, 450(제80)일 기도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7)

 

주님!

제 가슴에 돌덩이를 품고 살아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돌덩이로 오히려 저 자신이 짓눌려 있지 않게 하소서.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고 만지작거리게 하소서.

위하는 마음을 품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위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 2024년 3월18일(월) 15시10분...수산나 -